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는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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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중
윤형중 2018년 4월17일 16:34
한국블록체인협회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자율규제 심사 계획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김화준 부회장, 전하진 자율규제위원장, 김용대 자율규제위원(카이스트 교수) 등이다. 윤형중 기자


 

블록체인의 중요한 특징은 '탈중앙화'이고 이로 인해 데이터가 훼손불가능하고, 관리가 투명해지는 효과가 있다. 반면, 암호화폐 거래소는 중앙화된 방식으로 운영된다. 모든 거래 정보가 거래소 서버에 담기고, 그 정보가 정확한지 이용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매수자가 자신의 원화 혹은 코인자산을 인출하지 않는 한, 자신의 자산은 컴퓨터 화면 상의 숫자로 기록될 뿐이다. 간혹 '거래소가 존재하지도 않는 코인을 파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의구심을 깨끗하게 털어낼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거래소가 블록체인이 지향하는 가치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건 아이러니다.

17일 블록체인협회가 오랜 만에 마련한 기자간담회는 거래소 건전화 노력의 일환이었다. 자체적으로 만든 자율규제안을 회원사들이 제대로 지키는지 5월 한 달 간 심사할 것이고, 매년 정기심사와 수시심사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자율규제안은 지난해 12월 15일 초안이 나온 이후 8차례의 회의를 통해 최종 수정된 안이라며 △ 자금세탁행위 방지(본인확인 절차, 거래기록 5년 보관 등), △ 이상거래 감지시스템 도입, △ 암호화폐 상장시 이용자 보호(백서, 해외 거래가격 등 이용자 보호에 필요한 정보 공개), △재무건전성 증명(자기자본 20억원 이상, 지배구조와 재무자료 제출 등), △ 윤리헌장 제정 의무화 등이 주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보안성 심사에 적용되는 수십가지의 점검 항목도 함께 공개했다. 전하진 자율규제위원장은 "심사에 통과하지 못한 기업은 회원자격을 박탈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장을 건전하게 만들겠다는 협회의 의지는 충분히 드러났다. 하지만 의지는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이전의 말을 지키는 데서 믿음이 생기고, 의지가 증명된다.

지난해 12월 15일 협회가 발표한 자율규제안 초안을 보면, 당시 협회는 과열된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거래소들과 협의해 ‘신규 암호화폐 상장 유보’, ‘마케팅 및 광고 중단’. ‘원화 예치금 100% 금융기관 예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 발표 이후 신규 상장 유보는 한 달도 지속되지 않았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자율규제안 초안이 발표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100개 넘는 코인이 상장된 업비트가 협회에 가입했다. 그 이후엔 거래소들이 눈치 보지 않고 상장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협회가 제지하거나 자제를 요청하는 등의 개입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장과 관련된 지적에 대해 김화준 협회 부회장은 "지난해 상장 유보는 과열된 시장이라는 '전제'가 달린 대응이었다. 올해엔 각각의 거래소들이 과열이 해소됐다고 판단해 상장 검토를 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답변했다. 거래소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했다는 의미이지만, 그 사이에 협회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거래소들이 마케팅과 광고를 재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전에 발표한 내용을 거래소들이 제대로 지키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다를까. 그 과정에서 협회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 부회장은 실효성을 담보할 몇 가지 조치를 밝혔다. 그는 "자율규제 심사를 통해 안전한 시장을 조성하면, 이에 기초해 은행에 (가상계좌 지급을) 요청할 계획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금감원장 면담 시에도 '안전성을 확보한 거래소는 정상적 영업이 타당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개별 거래소 차원에서 (이용자 보호) 보험에 가입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 협회 차원에서 보험사와 단체보험 계약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김 부회장이 밝힌 내용들이 현실화되면 '회원자격 박탈'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상장 과정을 건전화하는 것도 협회에 주어진 과제다. 특히 최근 상장하는 암호화폐들은 심한 급등락을 겪었다. 시장에서는 "몇몇 코인들은 거래소에 돈을 주고 상장했다", "상장 정보가 미리 유출돼 작전세력에 활용됐다"는 소문이 돌지만, 이런 의심을 불식할 만한 정보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빗썸에 상장된 '미스릴'은 30분 만에 가격이 100배가 넘게 뛰어다가 곧 다시 폭락했다. 김용대 자율규제위원은 "(신규상장을) 미리 공지해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공지 안 해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상장 절차를 확립하려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언급되진 않았지만 거래소가 보유한 암호화폐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빗썸은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4159억원 규모의 암호화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거래소로서는 수수료로 받은 암호화폐를 현금화해 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암호화폐를 비싸게 현금화할 유혹이 있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여건이다. 거래소가 암호화폐를 비싸게 현금화하면, 수급에 영향을 미치고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거래소들의 자체 보유분을 어떻게 관리할지 나름의 준칙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이날 전하진 위원장은 ICO와 관련해 “애매 모호한 정책을 펴는 정부를 강력히 규탄하고 싶다. 국내 기업들이 왜 (ICO를 하려고) 싱가포르로 가고, 지브롤터로 가야하느냐”고 말했다. 협회는 이미 정부의 변화를 유도해 ICO를 제한적으로 합법화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ICO 역시 모집한 자금의 집행, 프로젝트의 진행 여부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문제가 제기된다. ICO의 합법화에 있어서도 협회가 이끄는 거래소 건전화가 중요한 시험대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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