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vs 가상화폐 : 그 해묵은 논쟁에 대하여
정승원의 '울룩불룩 블록체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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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정승원 2018년 8월20일 18:25





한동안 불었던 비트코인 투기 광풍이 지나갔다. 이제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중요한 기술임을 (그러나 만능의 기술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기술임을) 인정하는 분위기이고, 코인 투자 그 자체보다 근본적인 기술 발전과 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건전한 환경 조성을 위한 법제안 마련에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코인데스크코리아에 글을 연재하기로 하고 첫글을 어떤 내용으로 쓸지 고민을 많이 했다. 바로 암호경제학/토큰 이코노미 전반에 대해 쓸지, 아니면 그 중에서도 좀 더 세부적으로 필자의 주 전공 분야인 메커니즘/마켓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요즘 논의가 많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 다룰 것인지 등.

고민끝에 결국 “암호화폐 vs 가상화폐” 어떤 용어를 써야하는지 그 해묵은 논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물론 이는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블록체인 자체의 정의, 암호경제학, 토큰 이코노미의 정의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이야기하고 그 이후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용어의 정의가 중요한 이유는  정의야 말로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이를 어떻게 정의하기에 따라 그 의미와 가능성이 너무나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블록체인 강의를 비트코인 백서강의로 시작한 것도 바로 기초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때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한 TV토론회는 비트코인 등을 ‘암호화폐’라고 부를 것인가 ‘가상화폐’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일종의 기싸움으로 시작했다. 토론의 중립성을 위해 사회자는 두 용어를 번갈아 가면서 쓰기도 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가상화폐’라는 표현을 쓰면 마치 ‘못배운 사람’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라고 불렀다고 해서 못배운 사람 취급을 하는 사람이야 말로 어찌보면 편협함에 빠져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용어야 말로 탈중앙화된 컨센서스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화해나가는

잠시 생각해보자. 아니 용어는 대체 누가 정의하는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상화폐가 내세우는 제 1가치라 할 수 있는 탈중앙화에 답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비트코인 블록체인에서 블록을 제일 처음 만들면 신규 발행되어 보상으로 지급되는 비트코인을 받게 된다. 그런데 블록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거래내역들이 올바른 것인지(이를테면 이중지불 방지)를 증명하는 것이고 이는 탈중앙화된 컨센서스 메커니즘(비트코인의 경우 작업증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용어의 정의야 말로 탈중앙화된 컨센서스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를 억지로 중앙에서 정의하면 문제가 생기는 좋은 예제가 바로 ‘자장면’ vs ‘짜장면’이다. 필자의 기억에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발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누구나 짜장면이라 부르지만 정작 표준어는 자장면이었던 시절이 있다. 2011년 8월에서야 짜장면이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대체 몇년이 걸린 것일까. 분명한 건 언어란, 특히 신조어의 경우 그 표기법 뿐만 아니라 의미도 대중의 컨센서스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암호화폐만 옳고 가상화폐는 틀렸다? 사람은 동물이 아니다?

해당 토론회에서 나온 유행어인 ‘문송’한 사람이든 '수포자'든 부분집합의 개념은 익히 알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IMF의 Discussion Note, 즉 토론집에서 제안한 정의에 따르면, 엄밀히 말해서 암호화폐는 가상화폐의 부분집합이므로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라고 부른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이는 마치 사람도 동물인 것과 마찬가지다.

“Virtual Currencies and Beyond: Initial Considerations” IMF Staff Discussion Note (2016)


 

하지만 평상시 사람을 동물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왜냐. 비록 수학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나 틀린 것은 아니지만 헷갈리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은 가졌지만 사람이 아닌 동물들은 가지지 못한 특성들에 대한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언어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사소통을 위함이 아닌가? 그러니 굳이 혼동될 여지가 있는 용어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애매한 부분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비트코인 등을 가상화폐라고 부른다고 해서 혼동이 일어날 여지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가상화폐이면서 암호화폐가 아닌 예로 전자상품권이나 게임머니 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들을 비트코인이 유행하기 전에 가상화폐라고 불렀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들을 전자상품권, 게임머니, 아니면 보다 일반적으로 사이버머니라고 불렀다. 그렇게 우리가 가상화폐란 표현을 사실상 쓰지 않다가 비트코인 붐이 일기 시작하고 나서야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라고 부르기 시작했기에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라고 부른들 혼동의 여지가 사실상 없다.

심지어 외국에서 조차 초기엔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로 주로 지칭하기도 했다. 그림에 나온 분류체계를 제시한 IMF 토론집의 제목에서도 cryptocurrencies가 아닌 virtual currencies가 들어간다. 비록 해당 보고서의 내용 자체는 그 분류에 따르면 암호화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보고서 작성 당시인 2016년에는 미국에서도 비트코인을 주로 virtual currency, 즉 가상화폐라고 부르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용어 논쟁의 발단은 수학적/언어학적 논쟁이라기 보단 해당 용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일어난 부분이 더 클 것이다. 신조어란 일종의 유행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뭔가 쿨(cool)한 느낌을 주고 싶어한다. ‘가상화폐’란 단어의 ‘가상(virtual)’이란 표현은 한글로나 영어로나 실제가 아님을 뜻하기에 비트코인이 화폐로써의 역할도 하길 바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매우 달갑지 않은 용어일 수밖에 없다. 반면 암호화폐는 어떤가. ‘암호’가 들어가니 뭔가 안전해 보이고 첨단 기술이 쓰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대세는 암호화폐

비트코인 등이 인기를 끌고 사회적 이슈가 되자 결국 이들을 한데 모아 지칭하는 용어가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암호화폐를 가상화폐의 부분집합으로 정의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 마치 사람을 동물이라고 잘 안 부르듯이 적어도 미국 등의 영어권 국가에서는 비트코인을 cryptocurrency 즉, 암호화폐라고 부르는 것이 거역할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이 현실이다.

물론 필자가 앞서 이야기 했듯이 언어는 국가마다 다른 것이다. 하지만 암호화폐와 가상화폐의 경우 사실상 두 영어 표현의 직역이기 때문에 결국 영어권의 대세를 거스르기는 힘들어졌고, 업계나 학계에서는 사실상 전세계적으로 암호화폐가 표준으로 완전히 기울었음이 분명하다. 당연히 필자 역시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쓴다.

그래도 한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암호화폐를 암호화폐가 아닌 가상화폐와 함께 언급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상화폐란 용어 역시 틀린 말은 아니란 것이다. 아마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라고 부르는 것이 틀렸다라고 말할만큼 이상하게 느껴지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어로 블록체인 용어가 나오길 기대하며

끝으로 필자가 미국과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영어권 사람들조차 ‘이모티콘’을 ‘이모지’(emoji)라고, 또 ‘종이접기’를 ‘오리가미’(origami)로 부르는데 상당히 익숙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모지는 거의 표준어 수준이다. 차라리 ‘스티커’라는 표현을 쓰면 썼지 그림형태의 것을 두고 ‘이모티콘’이란 표현은 거의 안 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일본 기업과 국가적 차원의 수많은 노력이 들어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헐리우드 영화에 뜬금없이 나오는 ‘쎈세’와 같은 일본어 한마디라던가. 반면 ‘셀카’의 경우 한국의 독보적인 셀카 기술(?)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세계적 용어가 될 수 있었을텐데 현재 영어권 표현은 셀피(Selfie)로 굳어진 상태이다.

이제는 논쟁이라고 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지만 암호냐 가상이냐 할 것이 아니라 언젠가 우리도 우리나라 고유의 표현이 세계에서도 통용되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보다 건설적일 것이다. 물론 필자가 어떤 국수주의적 사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하지만 마치 이더리움의 지분증명(Proof of Stake)의 경우 Casper protocol이라는 자체 이름으로도 많이 불리듯이 어떤 기술 이름에 한글표현이 들어간다면 멋지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훌륭한 기술력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블록체인 분야에서 앞으로 그런 경우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우리나라는 카카오톡 등이 일찍 보급되면서 그림형태의 표현도 이모티콘이라 부르는 것이 대세인데 엄밀히 말하면 영어권에서는 이모티콘은 :) 과 같은 텍스트 형태를, 이모지는 ?과 같은 그림 형태를 일컫는다. 심지어 이 그림 형태의 것들은 다국어 텍스트를 컴퓨터에 저장하는 표준 규격인 ‘유니코드’에도 포함되어 있고 이를 실제 유니코드에서도 emoji라 부른다. (https://unicode.org/emoji/charts/full-emoji-list.html) 이모지가 유니코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유니코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현재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이라면 비록 형태는 해당 플랫폼에 따라 조금씩 다르더라도 이를 볼 수 있다. 앞서 이모지를 그림이 아닌 그림’형태’라 표현한 것도 이것이 실제로는 일종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즉 실제 폰트사이즈로 크기 조절이 가능하다.

 





정승원 브리스톨 대학 경제학과 조교수는 포스텍에서 전자전기공학, 컴퓨터공학, 수학과를 복수전공했고 스탠포드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안랩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Facebook 본사 new faculty fellow economist로 일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직접 번역한 비트코인 백서 등을 가지고 블록체인 강의를 하고 있으며 스팀잇에 다양한 블록체인 관련 글들을 게재하고 있다.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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