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리버스ICO로부터 배워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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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박승준 2018년 8월21일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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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성공한 블록체인 산업이 있다. 심지어 그 어렵다는 리버스 ICO에 성공한 케이스다. 어찌나 성공했는지 그 막강한 미국 정부도 이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했다. 엄청난 자본으로도, 여야를 가로지르는 정치적 합의로도, 사법기관의 인프라로도 이 산업이 자생하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규제 당국이 뽑아도 뽑아도, 이 블록체인 기반 산업은 잡초처럼 자라났다. 이는 자사의 서비스를 리버스 ICO를 통해 블록체인 위에 올려 놓고 금지옥엽 애지중지 키운다 해도 블록체인 경제가 금방 시들어 버릴까 전전긍긍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정도로 딴 세상 이야기다.

사실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이 산업은 바로 마약 거래다.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부터 거리의 마약상들은 비트코인을 받고 마약을 배송했다. 딥웹의 거래중개 사이트에는 수 만 명에 달하는 세계의 거리 마약상들이 좌판을 펼쳐놓고 마약을 팔았다. 마리화나, 헤로인, 메탐페타민 등 수 백 종의 마약이 전세계로 팔려나갔다. 마약 거래 사이트 중 가장 악명 높았던 ‘실크로드’ 는 FBI에 의해 패쇄되기 전까지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무려 백만 건이 넘는 마약 거래를 성사시켰다. 실크로드가 패쇄된지 오래인 지금도 실크로드의 후예들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마약 거래는 비윤리적이고, 지탄 받아 마땅한 산업이다. 그러나 윤리적 가치판단은 유보하고 경제학자의 눈으로 이 산업을 분석해 보자. 마약을 경제학적 재화로 보고 이 산업이 어떻게 이렇게 강력한 자생력을 가졌는지 하나하나 따져보다 보면 지금 블록체인을 이용한 사업을 하려는 이들에게 몇 가지 건설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 있을 지 모른다. 배움에는 장소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윤리적인 산업의 케이스를 연구해서 얻은 결론을 윤리적인 산업에 적용하여 사회적 효용을 높일 수만 있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마약 산업은 전통적으로 유통비용이 높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남미나 기타 국가의 감시망이 허술한 곳에서 마약이 생산된다. 그런데 이런 국가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가난한 국민들은 소비력이 없다. 소비력이 높은 국가는 주로 미국이나, 유럽, 중동이나 아시아 몇몇 국가들뿐이다. 따라서 마약은 가난한 나라에서 생산돼 부유한 국가에서 팔린다. 부유한 국가들은 정부의 사법 행정력이 잘 갖춰져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약국에서 버젓이 마약을 좌판에 놓고 팔아도 경찰이 눈감아 주거나 문제삼지 않을 수 있지만, 부유한 나라에서는 거리의 마약상이 경찰의 눈을 피해 후드를 뒤집어 쓰고 구매자를 찾아 후미진 골목을 숨어다녀야 한다. 이런 어려움은 가격에 반영된다. 갱단의 보스가 순금 목걸이를 걸고 다니며 돈다발을 뿌리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마약 거래의 유통 마진이 엄청나게 높기 때문이다. 물론 갱단이 공돈을 먹는 것은 아니다. 갱단도 유통 비용을 지불한다. 갱단의 신입은 거리에서 경찰에 체포되거나 다른 갱단과의 영역다툼을 벌이다 총알을 맞는다. 갱단은 신체의 자유와 피로 마약거래 산업의 유통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갱단 두목이 갱단이라는 중앙집중적 조직의 힘을 이용해 독과점의 이익을 독차지했다. 마약을 사고 싶은 사람은 마약상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갱단이었다. 물론 익명화 된 인터넷(다크웹)이 있었지만 마땅한 지불 수단이 없었다. 은행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마약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당국에 적발되기 쉽다. 현금을 봉투에 담아 보내자니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전달 과정에서 가로채일 염려가 있다. 이때문에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된 2010년까지도 마약은 으슥한 골목에서 주로 거래됐다. 판매자와 거래자가 서로를 찾아다니는, 매우 원시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비트코인은 익명화된 송금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마약 유통 산업이 풀지 못했던 숙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했다. 비트코인은 저비용으로 익명화 된 송금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 당국이 송금자와 수신자의 신원을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공권력은 비용이 많이 드는 비트코인 매개의 마약거래를 추적하기 보다는, 손쉬운 거리의 마약 거래를 적발하는 데 우선 순위를 둘 수 밖에 없었다.

비트코인은 마약거래에 드는 유통 비용을 줄였다. 낮은 유통비용은 실크로드 같은 마약 중개 웹사이트의 범람으로 이어졌다. 경제적 성장 동력 측면에서 실크로드와 초기 아마존의 양상이 그리 다르지 않다.

작금의 블록체인 기반 사업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블록체인을 준비하는 이들 대부분이 기존 사업 대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TPS(초당 트랜잭션 수)를 올리겠다”,  “블록체인들을 서로 연결하는 기술을 만들어내겠다” 등 지극히 기술적 목적의식에 함몰돼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TPS를 끌어올린다 한들, 블록체인의 TPS는 중앙화된 서버의 TPS를 넘지 못한다. 블록체인을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낸들, 구성원이 되는 블록체인이 제대로 된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면 아무런 사업적 가치가 없다.

비트코인이 온라인 마약거래라는 새로운 산업을 폭발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었던 건 절대로 블록체인 기술의 성능이 좋아서가 아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TPS는 7이다. 비자카드와 비교도 할 수 없다. 블록체인으로 송금하면 수신자가 바로 돈을 찾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실크로드가 성행하던 시절, 마약 판매자는 며칠을 기다려 자신의 지갑에서 비트코인을 찾아 쓸 수 있었다.

이 악물고 철퇴를 휘두르는 정부당국의 노력에도 암호화폐를 매개로 한 온라인 마약거래 산업이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성장하는 이유는 블록체인이 ‘저비용 익명화 송금 서비스’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소비자 가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존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에 비트코인이 성공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비트코인 온라인 마약거래는 최악의 사용자 UX를 제공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나와서 일차 방정식도 풀지 못하는 이들이 가상화폐 전자 지갑을 만들어야 했고, 널뛰는 시세를 주시하며 현금화를 해야 했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제공한 UX는 기존에 없던 UX였다. 거리에 나가 마약을 팔지 않아도 된다! 이 압도적 사용자 가치 앞에서 블록체인의 모든 단점은 무시될 수 있다.

현존하는 ICO의 95%가 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95%가 아니라 99%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머지 망하지 않을 1% 중에서도 공언한 대로 기존 산업을 뒤흔들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는 ICO를 준비하는 이들의 99%가 악의를 가지고 돈을 떼어먹으려는 나쁜 놈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런 이들도 있겠지만, 상당수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개발자들은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이들이 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사업 기획 자체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인정보를 광고업체에 제공하면 토큰을 받게 해주는 서비스가 비즈니스 모델인 ICO 사업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아마존 같은 업체와 근본적으로 똑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를 광고회사에서 열람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 봤자 사용자가 몇 푼이나 받겠나? 한 달에 많아야 몇 천원 벌자고 자신의 개인정보를 공개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설령 사용자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만약 구글이 개인정보 처리 방침을 바꾸어서, 개인들에게 일정 이익을 ‘구글 스토어 쿠폰’ 등으로 보상하겠다고 한다면 과연 블록체인 기반의 저성능 서비스로 얼마나 경쟁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기반의 사업은 경쟁회사가 하고 있는 사업이 아닌, 경쟁회사가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었던 사업이어야 한다. 블록체인 기반 사업은 “중앙화된 서비스보다 더 잘하자”가 아니라 “중앙화된 서비스가 못하는 것을 하자”는 철학에서 시작해야 한다.

페이팔은 비트코인이 제공했던 서비스를 제공할 기술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페이팔은 마약거래 대금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이 없었던 정도가 아니라,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자사의 송금 서비스가 마약 거래에 이용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에 반해 비트코인은 탈중앙화 서비스 방식으로 페이팔이 진출하지 못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소비자에게 기존에 없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블록체인의 규모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블록체인은 불법적인 산업에만 쓰일 수 있는 것인가?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자체에는 선악이 없고, 기술 그 자체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블록체인이 불법 산업에만 쓰일 수 있다는 전제에는 나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누군가는 블록체인으로 합법적이면서도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중앙화된 사업체가 제공하지 못했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낼지 모른다. 그러나 열심히 실패의 길을 달려가는 ICO 프로젝트가 눈에 많이 띌 수록 과연 블록체인으로 합법적인 산업을 일으킬 수 있을 지 낙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필자 박승준씨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생물학과 경영공학을 복수전공했다. 현재 (주)인포뱅크 소속 블록체인 컨설팅 사업부 iBloc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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