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스타트업들이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수연
한수연 2018년 11월21일 07:00


아직까지 암호화폐 발행은 위험한 사업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 정부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만큼 규제 불확실성이 큰 것은 물론, 아직 사업적으로 성공사례라고 꼽을 만한 것이 없는 탓이다. 잃을 것이 많은 기존 기업이라면 섣불리 암호화폐 사업에 진입하는 걸 꺼리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한국의 잘 나가는 스타트업들이 잇따라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하나같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서비스와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기업들이다. 새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ICO(암호화폐공개)와 구별하기 위해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이런 경우를 '리버스(reverse) ICO'라고 부른다.

 

1만개 점포 포인트를 암호화폐로


예전에는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포인트 적립을 하려면 주로 종이쿠폰이나 적립카드가 필요했다. 잃어버리기 쉽고 번거로웠다. 곧 이를 대체할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했지만, 계산대 앞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앱을 열고 포인트를 적립하기까지 족히 20초는 걸렸다. 스포카가 2012년 내놓은 '도도포인트'는 이를 3초로 줄인 서비스다. 계산대 앞에 설치된 태블릿 피시(PC)에 휴대전화만 입력하면 포인트가 적립된다. 현재 전국 약 1만 개 매장에서 도도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다. 누적 이용자 수는 1700만명을 넘어섰다. 도도포인트를 이용한 소비 거래액만 연간 1조원에 달한다. 최재승 스포카 공동대표는 "국민 3명 중 1명이 도도포인트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도도포인트를 사용하는 모습. 사진=스포카 제공
오프라인 매장에서 도도포인트를 사용하는 모습. 사진=스포카 제공


 

지난 7년 동안 사업 역량을 입증한 스포카가 최근 암호화폐를 이용한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를 위해 별도 법인인 '캐리프로토콜'을 설립했다. 지난 6월부터 3개월 동안 ICO를 진행해 4만7000이더(EHT)를 모았다.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약 80억원 규모다.

최 공동대표는 블록체인으로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포인트를 블록체인으로 운영하고 데이터 관리에 대한 선택권과 혜택을 모두 사용자 손에 직접 쥐여주는 방법이다.

최 공동대표는 "쌓여있는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 블록체인 도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도도포인트 사용자들은 하루 10만~15만 건가량 거래 데이터를 남긴다. 마케팅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귀중한 데이터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기에는 난제가 있다. 데이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면 고객들의 명시적인 동의가 필요한데, 이는 사용자 편의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도도포인트의 지향점과 맞지 않는다. 캐리프로토콜은 기존 포인트를 암호화폐로 전환하고 데이터 관리에 대한 선택권과 혜택을 모두 고객들 손에 직접 쥐어주고자 한다. 최 공동대표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이 자신의 데이터를 온전히 통제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캐리프로토콜은 내년 말 서비스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넷플리스 약점 정조준하다



'한국판 넷플릭스'로 유명한 왓챠는 사용자가 좋아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콘텐츠 평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한다. 왓챠는 이 서비스를 바탕으로 2016년 자체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 '왓챠 플레이'를 출시했다. 왓챠의 연매출은 2013년 이후 매년 2배 이상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왓챠플레이. 이미지=왓챠 제공
왓챠플레이. 이미지=왓챠 제공


 

왓챠는 지난 7월 블록체인 신사업을 위한 자회사 '콘텐츠프로토콜'을 설립하고 현재 프라이빗 토큰세일(일반 투자자가 아니라 벤처캐피탈이나 전문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암호화폐를 파는 것)을 진행중이다. 목표 금액은 2만~3만이더(EHT), 현재 시세로 약 32억~48억원 규모다. 박태훈 왓챠 대표 겸 콘텐츠프로토콜 공동대표는 "블록체인을 공부하다 보니 콘텐츠 업계의 오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콘텐츠 유통 시스템에서는 제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이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소비됐는지 알기 어렵다. 이는 공룡 플랫폼으로 성장한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제작사들의 가장 큰 불만이다. 박 대표는 "온라인 콘텐츠 유통이 많아지면서 플랫폼 사업자의 힘이 강해졌다. 이들은 데이터를 제작자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반면) 콘텐츠프로토콜은 콘텐츠 소비 데이터를 제작자에게 제공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대가로 암호화폐를 받고, 암호화폐를 주고 이 데이터를 구입한 제작자들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구상이다.


중견기업의 과감한 도전


 

(왼쪽부터) 테라 사용 예시, 중고나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사진=각 사 제공
(왼쪽부터) 테라 사용 예시, 중고나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사진=각 사 제공


국내 3대 소셜커머스 기업으로 꼽히는 티켓몬스터(티몬)를 창업한 신현성 의장은 올해 4월 테라를 공동창업했다. 수수료를 최소화하고 비트코인 등과 달리 가치가 크게 출렁이지 않는 결제용 암호화폐를 만드는 게 테라의 목표다.

티몬, 배달의민족, 야놀자 등 국내 기업들과 싱가포르의 큐텐, 캐러셀, 베트남의 티키 등 아시아 지역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테라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름하여 '테라 얼라이언스'. 테라의 암호화폐가 출시되면 이들 서비스에서 결제에 사용할 수 있다. 신현성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과 토큰 경제를 통해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카드사나 결제 대행업체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대폭 낮출 수 있다. 소비자에게는 더 큰 할인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도 지난달 블록체인 전문기업 '액트투랩'과 컨설팅 계약을 맺고 블록체인 기반 중고거래 시스템 연구에 돌입했다. 중고나라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맡은 최동일 이사는 "중고나라에는 중고 거래를 위한 글만 존재하고 실제 거래는 대부분 외부에서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않은 사고나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블록체인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중고나라와 액트투랩은 블록체인 기반 중고거래 데이터 관리 및 판매자/구매자 신용 지표 관리 등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블록체인 상용화 앞당긴다"


기존 서비스를 바탕으로 블록체인에 뛰어든 스타트업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실생활에서 쓰이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수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있지만 실제로 대규모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기존 사업자는 블록체인 솔루션을 내놓았을 때 이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는 점에서 초반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생태계를 확장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최재승 스포카 대표는 "캐리프로토콜은 도도포인트라는 기존 서비스의 사용자들을 끌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현재 운영 중인 서비스를 변형하는 것은 사업자 입장에서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이지만, 도도포인트가 블록체인화된다고 소비자나 매장 점주가 느끼기에 큰 차이가 없도록 '서비스의 옷'을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훈 왓챠 대표는 "콘텐츠 분야에 다른 블록체인 프로젝트들도 있지만 대부분 이제부터 콘텐츠 제작자와 사용자를 모으고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반면, 우리는 이미 콘텐츠 사업을 하고 있고 60개가 넘는 제작사와 계약이 돼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신현성 테라 공동대표는 "이미 고객이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를 바탕으로 블록체인에 다가가야 한다"며 내년 초 출시 예정인 암호화폐 결제 솔루션은 티몬과 가장 먼저 연동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11월21일치 22면에도 게재됐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매달 한 차례 한겨레신문의 블록체인 특집 지면 'Shift+B'에 블록체인 업계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