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규제 공백 1년…악화가 양화 구축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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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연
한수연 2018년 12월10일 18:15
우리나라 금융 정책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선동 의원(자유한국당), 유의동 의원(바른미래당)이 공동 주최하고 <한겨레>가 만든 블록체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코리아>가 주관한 ‘투명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암호화폐 거래소 디자인을 정책토론회’가 10일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암호화폐 거래소와 관련된 토론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발표자들은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국내 주요 거래소 7곳은 이번 토론회에서 ‘건전한 암호화폐 생태계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12월10일 국회 도서관에서 '투명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암호화폐 거래소를 디자인하다'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코인데스크코리아
12월10일 국회 도서관에서 '투명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암호화폐 거래소를 디자인하다'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코인데스크코리아


 

■ 암호화폐 거래소의 역할

기조발표자로 나선 두나무(업비트) 이석우 대표는 자금세탁방지, 과세자료 확보 및 제공, 블록체인 프로젝트 검증 및 선별, 투자자 보호 등을 들며 "좋은 거래소는 암호화폐 생태계를 확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소들이 이런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등록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가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코인데스크코리아
이석우 두나무 대표가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코인데스크코리아


국내에는 2013년 첫 암호화폐 거래소가 등장한 이후, 현재 100개가 넘는 거래소가 운영 중이지만, 운영 능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규제 공백을 악용해 사기를 꾀하는 거래소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퓨어빗 거래소다. 퓨어빗은 지난달 고객들로부터 투자금 1만6000이더(ETH), 현재 시세로 약 16억8000만원을 모은 뒤 사이트를 폐쇄하고 잠적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이 대표는 "퓨어빗과 같이 실체 없는 거래소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거래소 등록 요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제안한 등록 요건은 ▲대표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주식회사 형태일 것 ▲20억원 이상 자기자본을 보유하고 자산이 부채보다 많을 것 ▲이용자 보호 및 보안 시스템 등을 구축할 것 등 3가지다. 그는 이 요건을 만족한 거래소만 등록할 수 있게 하고, 거래소 영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따로 제정해 이 지침을 준수한 거래소만 영업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또 암호화폐 거래소가 직접 자금세탁방지(AML) 및 고객파악제도(KYC)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와 계약을 맺은 은행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반면 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는 거래소에 직접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수행하게 한다. 은행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면 위험을 피하려는 은행들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협조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정보기술(IT) 관련 법률 전문가인 윤종수 변호사는 "현재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 정책의 방향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예측하기 어려운 간접적·비공식적 규제로 인해 거래소들이 정상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윤 변호사는 거래소 규제 접근법으로 '네거티브 방식'이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네거티브 규제란 명확히 금지된 것 외에 모두 허용하는 규제 방식이다. 윤 변호사는 “상향식으로 자율규제 정책을 적극 수용하고 정책 공백을 피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형태의 비법규적 규제를 실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자율규제안을 바탕으로 거래소들을 심사해 지난 7월 그 심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12개 거래소가 규제안을 통과했다. 윤 변호사는 정부가 자율규제안을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해 규제 체제 안에 포섭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규제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권대영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정부가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공인'을 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가상통화 취급업소(거래소)의 규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불투명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상통화 관련 업계가 금융의 모습을 완벽하게 갖추려 하는데, 결정적으로 이해상충 방지나 소비자 보호라는 핵심 축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 외국의 거래소 규제 동향

우리나라에 비하면 다른 주요 국가들의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규제는 상당히 명확한 편이다.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암호화폐 거래소는 자금서비스업에 등록하고 고객파악제도(KYC), 자금세탁방지(AML) 프로그램 설치, 의심거래행위 보고를 권고하고 있다. 뉴욕주 금융감독국은 2015년 6월 자금세탁방지, 이용자 보호 등을 내용으로 한 종합규제체계를 마련, 거래소에게 비트라이센스(Bitlicense)라는 허가증을 발급하고, 거래소는 고객들의 신원과 실제 주소에 관한 정보를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일리노이주, 워싱턴주 등에서도 관련 법규들을 준비중에 있다.

일본 역시 암호화폐 거래소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거래소에 자본요건, 이용자 보호 시스템, 보안 시스템 등 구체적인 요건을 제시해 이를 충족한 거래소만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게 한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 10월 일본 암호화폐거래소협회(JVCEA)에 거래소들에 대한 관리 및 감독 권한을 부여했다. 규제를 어기는 거래소를 제재할 수 있는 권한까지 협회에 부여했다. 또 암호화폐 매매로 발생한 수익을 수입으로 간주해, 소득세법에 따라 소득세를 부과한다. 싱가포르 통화청은 일찌감치 지난 2014년 3월, 거래소 규제 계획을 발표해 거래소가 거래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수상한 거래가 감지될 시 당국에 신고하도록 규정했다.

김현석 변호사는 "암호화 자산이라는 게 한국 안에서만 거래되는 게 아니고 전 세계에서 거래된다"라며 "글로벌한 시각에서 (거래소 규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석우 두나무 대표, 김현석 변호사(캘리포드챈스), 윤종수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홍준기 컴버랜드코리아 대표, 황현철 재미한인금융기술협회 회장, 이준행 고팍스 대표,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 사진=코인데스크코리아
(왼쪽부터)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석우 두나무 대표, 김현석 변호사(캘리포드챈스), 윤종수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홍준기 컴버랜드코리아 대표, 황현철 재미한인금융기술협회 회장, 이준행 고팍스 대표,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 사진=코인데스크코리아


 

■ 주식시장에서 참고할 점들

오랜 세월에 걸쳐 발달한 주식시장의 규제를 참고해 암호화폐 시장을 더 투명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재미한인금융기술협회(KFTA) 회장을 맡고 있는 황현철 박사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자기 계좌 하에서 고객의 자산을 보관하고 있고, 브로커와 딜러를 겸하고 있으며 거래의 매칭, 청산, 결제업무도 수행한다. 주식시장에서 여러 기관을 통해 나누어진 업무들을 암호화폐 거래소라는 한 회사 안에서 모두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암호화폐 거래소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래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이해관계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황 박사는 주식시장을 참고해 ▲거래소의 딜러 겸업 금지 및 제한 ▲거래소 수탁자산의 제3자 수탁 의무화 ▲거래소 지정 마켓메이커 제도 ▲거래소 시장 감시 체제 및 시스템 구축 의무화 ▲거래소 거래 기록 실시간 저장 및 필요시 자료 제출 의무화 ▲거래소 자체 토큰 상장 금지 등 6가지다. 황 박사는 "증권거래소 수준의 시장 감시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박사는 “현재 주식시장에서도 작전세력에 의한 통정거래나 시세조작 등 불법적인 거래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반면 아무 규제가 없는 암호화폐 시장의 경우 하루에도 수 조원의 거래가 이뤄지면서 수많은 불공정 거래들이 일어나고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며 “세계 금융을 선도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만들 수 있는 전향적이고 혁신적인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코인데스크코리아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코인데스크코리아


이번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김병욱 의원은 규제 공백으로 인해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하려는 거래소들이 도태되고 오히려 그렇지 않은 거래소들이 활개를 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김 의원은 “거래 실명제 등 정부 방침을 지키고 있는 거래소는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렇지 않은 거래소는 잘 되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이 생기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된다”며 “이미 발행된 암호화폐와 운영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정부의) 정비된 입장이 있어야 한다. 오늘 국회에서 이같은 논의를 한 것 자체가 공론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투명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암호화폐 거래소 디자인을 위한 정책토론회' 관련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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