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권대영 "기업들이 금융 수준 규제 견딜 수 있을지 의문"
[암호화폐 거래소 토론회]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 발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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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정인선 2018년 12월11일 15:59
지난 10일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선동 의원(자유한국당), 유의동 의원(바른미래당)이 공동 주최하고 <코인데스크코리아>가 주관한 '투명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암호화폐 거래소 디자인 정책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건전한 암호화폐 생태계 조성을 위해 거래소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을 독자 여러분과도 이어 나가기 위해,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의 발언 내용 전체와 발표 자료를 공개합니다. 아래는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의 발언 내용을 다듬은 글입니다. 권대영 단장이 암호화폐 정책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 사진=코인데스크코리아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 사진=코인데스크코리아


오늘 토론회 주제는 정부로서도 다루기 굉장히 쉽지 않은 주제다. 김병욱 의원, 김선동 의원, 코인데스크코리아가 논의의 장을 일단 마련한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마음도 무겁고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곤혹스럽다.

김병욱 의원은 앞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하셨는데, 마침 나도 오늘 아침 출근하며 같은 생각을 했다. 김선동 의원은 "정부가 고민이 없다"고 하셨다. 앞선 토론자들의 발제 내용을 쭉 들어 보니 미래의 밝은 환상처럼 보이는 내용도 있고, 또 어떤 분은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기도 하셨다.

그런데 가상통화와 ICO(암호화폐 공개), 그리고 가상통화 취급 업소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굉장히 큰 것 같다. 간극이 크다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런 사회적인 또는 전문가적인 논의 과정 자체는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만 너무 긍정적인 측면만이 부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균형 감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부 오해도 있고,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작년 9월부터 관련 업무를 쭉 맡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허심탄회하게 말씀 드리겠다. 특히 지난 12월 비트코인 가격이 2500만원 가까이 가고, 12월28일 정부가 종합대책을 내놓고, 1월15일 관련 입장을 내놓는 일련의 과정에서 느낀 바를 이야기하겠다. 다만, 현재 정부의 입장은 지난해 12월 혹은 올해 1월 이후 크게 바뀐 바가 없음을 전제로 말하겠다.

가장 먼저 던지고 싶은 고민은 블록체인과 가상통화, ICO, 그리고 (가상통화) 취급업소의 관계가 아주 모호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 블록체인은 신기술・신사업이고, 정부는 오히려 중립적인 입장에서 블록체인 기술 발전 종합계획을 만드는 등 지원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코인'이 들어가고, 'ICO'가 들어가고, '취급업소'가 들어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업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명확하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닌가. 정부의 입장은 그동안 발표한 것으로 갈음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 모인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산업에 대해) 금융의 성격으로 접근하고 있다. 금융의 특성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금융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규제산업이다. 또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에 '쏠림 현상'이 발생하기 쉽다. 이런 측면에서 가상통화와 관련해 일어나는 대부분의 현상을 살펴 보면 (가상통화 관련 산업 역시) 금융의 모습을 완벽히 갖추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기업이 아이디어를 구체화 해 사업을 진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보통 7년 정도 걸려서 시제품을 만들고, 또 그때쯤 일부 증자를 한다. 펀드 투자를 유치하고 하면 약 7년쯤 지나 상장을 한다. 그 뒤 차익을 실현해 엑싯을 하거나 추가로 투자금을 모집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게 통상적인 금융의 성격이다. 반면 코인은 백서 하나만 갖고 바로 (증권의) 발행과 상장, 그리고 유통이 동시에 일어난다. 기존에 14년에 걸쳐서 진행되던 일이 단 하루만에도 일어나는 것이다. 금융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코인은 (관련 기업 종사자의) 이해 상충 (방지) 혹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장치)가 빠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글로벌 논의의 예로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를 많이 드신다. 미국의 SEC(증권거래위원회)가 ETF를 승인하지 못하는 데에는 크게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1. 가치 산정(valuation): 무엇보다 ETF의 가치를 도대체가 명확하게 산정해낼 수 없다.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크다.

  2. 유동성(liquidity): 유동성이 충분해야 시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는데, ETF는 유동성이 떨어진다.

  3. 수탁(Custody): (암호화폐를) 누가 책임지고 보관할 것인가

  4. 잠재적 가격 조작 가능성

  5. 소비자 보호


SEC가 ETF를 계속 부인하는 위 다섯 가지 이유를 고민해 해결해야 한다.

이어서 국제 규제 동향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내가 보기엔 자금세탁에 관한 한 국제적 합의가 완전히 이뤄졌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최근 관련 법안이 이미 발의 돼 있다.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관련 업체에) 직접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이견이 크지 않다.

다만 국제 규제 동향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의견이 많이 갈리는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유는, "한국이 (암호화폐 관련 사업을) 일정 부분 금지하고 있다"고 많이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국제적으로 모든 국가가 (암호화폐를) 금지하고 있다. 어떻게 세련되게 표현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본이 가상통화 취급업소 '자이프' 해킹 사건 이후 조금 더 빨리 움직여 등록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바로는 일본(에서도) 정책 당국자들이 성급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고 한다. 또 스위스나 몰타 등 (ICO를 허용한) 여러 나라를 보면, 모두 굉장히 소규모 국가들이다. 조세 분야에서 아비트리지(Arbitrage, 시세 차익 거래)를 통해 금융을 끌고 가는 싱가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은 방금 언급한 국가들과 달리 국가 규모도 크고, 금융 시장 규모도 크다. 앞서 금융의 휘발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금융시장에서는 가격이 1~10%만 움직여도 시장이 완전히 뒤바뀐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정책 당국자들이 (암호화폐 관련 산업을) 모두 비슷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어 지난 8월 민병두 정무위원장,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함께 스위스와 독일을 직접 방문해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들 국가의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관련 정책이) 국내에 전혀 잘못 소개된 측면이 있다.

우선 독일과 스위스가 ICO를 전면 허용했나? 전혀 그렇지 않다. 가서 확인해 보면 정부(가 설립한) SPC(특수목적법인)이다. 독일 정부에 "스위스와 같이 일반적인 형태의 ICO를 전면 허용했나" 물어보니 관계자가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내에선 "해외에선 ICO를 수월하게 한다더라"라고 논의된다. 사실관계에 정확하고 균형감 있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규제 관련 감독기구 차원의 국제적 논의는 내년 정도가 되면 한 단계 올라갈 것 같다. 민병두 위원장이 축사에서도 언급했듯, 내년에 일본에서 G20 회의가 개최된다. 일본이 아마 이 부분(암호화폐 관련 규제)을 핵심 어젠다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전반적 논의 트렌드를 살펴 보면, 균형 잡힌 쪽으로 다양한 입장이 나오고 있다.

기업들이 규제를 원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정말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다. 금융 규제란 건 엄청난 수준의 규제다. 관련 기업들이 규제를 수용해 내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백 개 기업이 있으면 그 중 몇 개나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규제를 받겠다는 건, 결국 제도화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국가 책임론과 개인 책임론 (간 충돌을) 다루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작년에 엄청난 광풍을 거치면서 그래도 한국 사회가 조금 성숙했다고 본다. 옛날 같으면 (암호화폐 투자로 인한 손해에 대해) 국가 책임론이 많았을 텐데, 아직 국가 책임론까지는 안 간 것 같다.

다만 제도화는 그 자체가 어느 정도 정부가 그 상품에 대한 감독을 통해 안전성을 공인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이 부분은 (관련 산업의) 물꼬를 트는 측면과 수많은 투자자 보호의 문제가 연결돼 있어서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도 (암호화폐는) 블랙박스 같은 것 아닌가 싶다. 뭔가 들어오고 나가는 건 있는데, 그 안에서 뭐가 일어나는지는 모르는 불투명한 상태다. 정부의 규제 관련 입장과 정책 방향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일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우선 지난해 12월 엄청난 투기적 열풍이 분 이후,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300만~400만원까지 떨어졌다. 당시와 비교해 가치가 80% 가까이 날아갔다. 이더리움의 경우엔 90% 이상이 날아갔다. 이런 과정이 내가 보기엔 '제로섬' 성격이 강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투자 피해, 해킹, 사기 피해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고민 없이 제도화 이야기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안타깝게 느껴진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해와 눈물은 어떻게 할 건지 (관련 기업들이) 답을 해 주셔야 한다.

두 번째로, 블록체인 기술이 (비트코인을 통해 대두된 지) 10년이 됐는데, 그 뒤로 과연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사업을 하나라도 (관련 기업들이) 제시를 했는가다. 지금까지 나온 많은 것들도 잘 따져 보면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진정성 있게 고민해야 한다. 신뢰가 중요한데, 실제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대한민국 경제, 그리고 금융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할 수 있어야 전문가 사이의, 그리고 사회의 합의가 가능할 것이다.

신기술과 신사업 등 '새로운 것'에 대해선 정부도 (그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다만, 너무 한 쪽에 치우쳐서 바라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냉정하게 양쪽의 생각을 균형있게 이해해 고민과 토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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