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 실패의 교훈: 아무나 초기 주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2018 Year in Review] 김서준 해시드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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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데스크코리아
코인데스크코리아 2019년 1월7일 11:15
코인데스크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이 지나온 2018년을 돌아보고 새해를 전망하는 전문가들의 글을 모아 ‘2018 Year in Review’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한국의 대표적인 크립토 엑셀러레이터이자 벤처캐피탈 해시드를 창업한 김서준 대표의 글입니다.

 

2018 year in review

 

블록체인 커뮤니티는 2018년의 시작을 ICO(Initial Coin Offering) 버블의 정점에서 맞이했다. ‘누구나 초기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다’는 ICO의 구호는 분명 무척이나 근사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끊임없이 주저앉은 대다수 ICO 토큰들의 가격과 함께, 이 거대한 실험의 첫 장은 실패로 끝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 대부분의 ICO는 성공하지 못했을까? 혹자는 일확천금에 눈이 멀었던 개개인의 탐욕, 전문성이 부족한 창업가들이 주도한 프로젝트 팀의 역량 미달, 확장성이 부족한 플랫폼 블록체인들의 기술적 한계, 시장환경의 변화를 뒷받침하지 못한 주요 국가들의 규제 미비 등을 언급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언제나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신기술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초창기에 늘 되풀이되었던 어려움이기에 특별한 교훈을 주지는 못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ICO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 즉 ‘누구나 초기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다'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지난해 상황을 복기해보고, 그 대안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아시아에서 유행하고 있는 코인 공동구매채널


ICO 버블의 붕괴와 무관하게 아시아 시장의 블록체인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 트렌드와 생태계 확장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암호화폐에 대한 수용도가 높았던 한국이나 중국 같은 국가에서는 여전히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초기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중국의 경우 법적으로 자국민의 ICO 참여를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세컨더리 마켓(secondary market)이 성행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카카오톡 메신저나 커뮤니티를 통해 수많은 ‘코인 공동구매' 채널들이 음성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 뒤에는 정부 규제 외에도 다른 주요한 원인이 존재한다. 2017년 중반까지만 해도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ICO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7년 후반부터 점차 퍼블릭 세일에 앞서 프라이빗 라운드의 규모를 키워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를 줄여 나가는 움직임이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펀드레이징에 자신 있는 프로젝트일수록 퍼블릭 세일보다는 기관 투자자 또는 크립토 전문 VC로부터 많은 비중의 투자를 받기를 원했다. 프라이빗 세일만 한 뒤 ICO 없이 커뮤니티에 에어드랍만 진행한 온톨로지(Ontology)나 핸드셰이크(Handshake)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인기있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싶었던 개인 투자자들은 영향력 있는 브로커를 통해 적극적으로 프라이빗 라운드에 참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동시에 기관 투자자가 프라이빗 라운드에 큰 비중으로 투자하는 추세가 확산되는 것에 대해서도 커뮤니티 안에서 강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왜 개인 투자자의 참여를 꺼리게 되었나


프로젝트들이 ICO를 통해 개인 투자자들을 모집하면서 이들에게 기대했던 역할은 그 후에 마주한 현실과 큰 차이가 있었다. 프로젝트 팀은 대중에게 공정한 투자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프로젝트의 성장과 인센티브를 공유할 수 있는 충성도 높은 커뮤니티의 형성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들은 ICO를 통해 소수의 기관 투자자들에게 폐쇄적으로 투자를 받고 성장해온 기존 스타트업보다 더욱 개방된 생태계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선순환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은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ICO 참여자들의 대다수는 ‘기여자' 보다는 토큰의 가격에만 관심있는 ‘채권자'의 페르소나를 가진 채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또한 이들 상당수는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과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와 신뢰가 부족한 채로 프로젝트의 인기도에 편승하여 투자자로 합류한 경우가 많았기에, 커뮤니티를 건강하게 성장시켜 나가기 위한 생산적인 활동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특정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ICO에 참여한 투자자 중, Dapp이나 플랫폼의 출시 이후 배당받은 토큰을 실제 목적에 맞게 사용해본 개인 투자자들 역시 많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은 토큰 가격이 어느 수준 이상 상승하면 곧바로 매각해버리는 데만 관심 있는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가 되어, 오히려 프로젝트의 장기 발전을 위협하는 집단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팀 입장에서는 자연스레 한창 개발에 에너지를 써야할 런칭 준비 단계에서 가격과 상장에 대한 질문으로 뒤덮이는 개인 투자자 커뮤니티와 소통하고 설득하는 것보다는 소수의 전문 투자자를 관리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느끼게 됐다.

이미지: Getty Images Bank


 

한편, 기관 투자자들은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통찰력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창업자에게 유의미한 어드바이징을 해주거나 초기 팀 채용을 돕는 등 프로젝트의 성장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사례를 만들어왔다. 이들은 핵심 지역의 로컬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해커톤을 주최하여 개발자와 프로젝트를 연결해 주거나 주요 미디어 채널을 소개해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프로젝트를 도왔다. 이들이 참여한 프라이빗 라운드는 개인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퍼블릭 라운드에 비해 긴 락업(lock-up) 기간을 갖기 때문에, 기관 투자자는 프로젝트의 중장기 성장을 믿고 도와야만 하는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모든 기관 투자자들이 프로젝트의 발전에 효과적으로 기여한 것은 아니었다. 약속했던 지원을 전혀 이행하지 못하거나, 전문성과 역량이 부족한 엉터리 기관 투자자들의 행태가 커뮤니티에 많은 소음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시장의 경쟁 논리는 이 문제를 빠르게 자정해 나가고 있다. 초연결적인(Hyper connected) 크립토 생태계의 투명한 정보 공유 덕분에 건강한 기관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기관 투자자의 평판은 빠른 속도로 블록체인 창업자들 사이에 퍼져 나가고 있다. 벤처캐피탈 시장의 성장 과정과 마찬가지로 점점 더 좋은 평판을 가진 크립토 펀드들만이 유망한 프로젝트에 투자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투자를 통해서만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 있나


여기까지가 2018년 퍼블릭 라운드의 축소 경향에 대한 분석이다. 나는 여기서 이분법적으로 개인과 기관 중 누가 초기 프로젝트의 투자자로 더 적합한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어떻게 해야 프로젝트에 기여를 하는 주체가 초기 주주가 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이며, 나는 이를 가능케하는 메커니즘을 ‘기여 증명(Proof of Contribution)’이라 부르고자 한다.

원점으로 되돌아가 인류 최초의 암호화폐이자 이 모든 탈중앙화 패러다임의 시작이었던 비트코인의 토큰 발행 과정을 생각해보자. 비트코인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단 한개의 토큰 판매도 없이 오직 채굴이라는 방식만으로 커뮤니티에 토큰을 발행했다. 채굴자들은 해시 파워를 제공하며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보안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본인의 기여를 증명했고 그 대가로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었다. 프로토콜에 정의된 네트워크에 대한 기여 방식이 단순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Proof of Work; PoW)은 프로젝트 기여에 따른 보상철학이 명확히 반영된 ‘기여 증명’의 한 가지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무도 비트코인 가격을 주목하지 않던 오랜 기간 동안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초기 주주들은 거의 대부분 단기적인 차익보다는 이 탈중화된 화폐에 대한 강력한 신념을 가진 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IT 산업에서 초기의 스타트업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1) 투자자, 2) 회사, 3) 직원이라는 세 주체의 역할 구분이 명확하다. 투자자는 초기 자금을 지원한 대가로 회사의 지분을 얻는다. 이렇게 얻은 투자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사업 주체인 회사의 역할이다. 회사에 합류한 뒤 스톡옵션을 받는 직원들은 회사의 성장에 따른 주식 가격의 업사이드 인센티브가 분명하기 때문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된다. 나는 현재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 혁신을 만들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이 스톡옵션 제도라고 생각한다.

무척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초기에 주주로 합류하는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역할을 전통적인 IT 스타트업들처럼 ‘투자자’ 로만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백서의 토큰 분배 항목을 보면 프로토콜에 의해 자발적으로(autonomous) 분배되기보다는, 마치 사업개발이나 마케팅 예산처럼 중앙화된 프로젝트 팀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해 집행된다. 토큰 모델 역시 이미 네트워크가 충분히 형성된 이후의 핵심 활동 위주로만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즉, 네트워크를 성장시키기 위한 마케팅이나 세일즈, 파트너십 활동 등은 모두 투자자에게 토큰을 판매해 획득한 자금을 통해, 팀 내부의 역량으로 자의적으로 집행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까지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탈중앙화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탈중앙화를 추구하는 프로젝트는 초기 프로젝트에 기여하고자 하는 개인들을 재무적 투자자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마치 스톡옵션을 받는 직원들처럼(하지만 조직 밖에서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주체로) 인식하고, ‘프로토콜을 활용한 보상의 관점’으로 레버리지할 필요가 있다.

각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추구하는 토큰 모델의 특성에 맞춰 구성원들의 기여도를 확인하고 그에 따른 보상 체계를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기 투자자들에게 재무적 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보너스를 주더라도, 보너스 분량에 대해서는 실제로 해당 투자자가 실제로 프로젝트의 Dapp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실제 사용하거나 프로토콜에 정의된 방식으로 홍보 활동에 기여한 것이 증명되었을 때에만 사후에 제공하는 방식 등을 통해 실질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투자를 전혀 하지 않은 개인들에게도 무허가적으로(permissionless)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적절한 기여를 하도록 한 후 그에 따른 토큰을 배분하는 프로토콜도 다양하게 설계해볼 수 있다.

앞으로는 점점 더 현실 세계와 접점이 넓고 복잡한 벨류체인(value chain)을 가지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등장할 것이다. 탈중앙화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프로젝트의 벨류체인 전체를 탈중앙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일반적인 회사가 가지고 있는 밸류체인인 연구 개발(R&D)에서부터 마케팅, 세일즈 등에 이르는 많은 주요 활동을 가능한 상세하게 프로토콜화시켜 정의하고, 조직 밖에 있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효율적인 방식으로 프로젝트의 성장을 위해 기여하고 보상받도록 유도하는 메커니즘을 고민해야 한다.

이때 토큰이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화된 스타트업에서 경영진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보상이 일어나는 것과 달리 ‘투명하게 정의된 프로토콜’에 의해 기여에 대한 인센티브 산정의 과정과 결과가 모두 공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프로토콜 기반의 조직이 중앙화된 회사와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본질적 경쟁력이다.

 

Proof of Contribution: 진정한 기여자에게 토큰을 배분하자


투자는 프로젝트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수많은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ICO 실패는 근본적으로 대부분의 초기 주주가 오직 투자를 통해서 커뮤니티에 합류했기 때문에 가격에만 민감한 이들로 커뮤니티가 가득 메워지는 비극이 만든 결과가 아닐까.

모든 조직은 초기 주주들이 누군지에 따라 그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한다. 이는 이후에 합류할 커뮤니티 구성원을 연쇄적으로 정의하며, 네트워크의 성장 방향과 속도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2019년 이후에 등장할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초기 주주를 구성하는 방법에 있어 이전 세대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확연히 진화된 모습을 보여야만 할 것이다. 누구나 투자만 한다면 토큰을 주거나, 무작위에 가까운 에어드랍을 하거나, 중앙화된 주체의 판단에 의한 파트너십에 의존해서 초기 토큰의 주주를 구성하는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

많은 ICO들의 실패와 무관하게 우리 경제 시스템의 근간을 혁신할만큼 강력하다고 믿어온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 가치는 아직까지 손상되지 않았다. ‘누구나 초기 프로젝트의 주주가 쉽게 될 수 없는 토큰 배분 모델’과 진정한 기여를 한 이들에게만 토큰을 배분하는 ‘기여 증명’ 방식을 통해 앞으로 많은 프로젝트들이 한 단계 발전된 형태의 도전을 이어가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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