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게임의 경계 무너질 때 블록체인이 법칙을 세울 것이다
[인터뷰] 김서준 해시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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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정인선 2019년 2월12일 07:00

아마도 아주 가까운 미래에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를 점령하게 될 것이다. 택시 기사, 버스 기사 같은 일자리는 곧 사라진다는 얘기다. 어디 운전뿐이겠는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로봇 등 새로운 기술은 지금 사람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활동을 대체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세계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대표하는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 겸 벤처캐피털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가 내놓은 답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지난해 개봉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통해 똑같은 답을 한 바 있다. 2045년, 영화 속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브이아르(VR) 안경을 끼고 하루 종일 가상의 세계에서 활동한다. 현실로 돌아와서는 잠만 잔다. 현실세계의 부와 명예보다 가상현실 속 부와 명예가 더 중요하다. 김 대표는 “게임이 더 확장되는 개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경제활동을 비롯한 모든 생활의 터전이 가상현실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준 대표는 가까운 미래에는 사람들의 활동 대부분이 가상현실 세계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현실세계에서 가상현실로 넘어가려는 순간 매우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가상현실을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신뢰 문제다. 김 대표는 “우리는 뉴턴이 세운 물리학 법칙 덕분에 현실세계의 활동을 신뢰할 수 있다. 누구도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최소한의 믿음이 현실세계에 있다. 사람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꽤 신뢰한다. 하지만 중력만큼 신뢰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거대 기업이 자본력을 동원해 게이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반항하는 게이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현실세계에서 그를 해치려 든다.

 

“가상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활동에 대한 신뢰를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기업의 중앙 서버에 저장된 법칙보다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위변조가 어려운) 블록체인 프로토콜에 의해 법칙이 정의될 때 사람들이 그걸 믿고 경제활동을 비롯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 사진=해시드 제공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실험

 


비트코인이 등장한지 십 년, 실생활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널리 쓰이는 ‘킬러 서비스’ 출현은 아직 요원하다. 업계에선 블록체인 기술의 쓸모를 대중에게 가장 빠르게 입증할 분야는 게임일 거란 예측이 나온다. 해시드가 이 예측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해시드는 12일 새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 ‘해시드 랩스(Hashed Labs)’ 런칭 계획을 공개했다. 목표는 블록체인 기반 댑(dApp,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 그 중에서도 게임 댑을 개발할 팀을 발굴해 육성하는 것이다. 심사를 통해 선발된 팀에게 해시드는 개발팀 구성부터 게임 기획과 개발, 배포와 마케팅까지, 게임 출시를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과정을 지원한다. 초기 단계 투자와 공용사무공간(코워킹 스페이스) 지원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이미지=해시드 제공

 

해시드는 지난해 40건의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이 중 상당수는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다. 김서준 대표는 “블록체인 플랫폼 가운데 어느 곳도 킬러 댑을 내지 못한 채 각자 성을 쌓고 있었다”고 지난 1년여를 회상했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 빗대면, iOS와 안드로이드와 같은 운영체제 개발은 활발한 반면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들어갈 앱 개발은 부진하단 이야기다. 김 이사는 “거꾸로 댑 쪽에서 먼저 압력을 준다면 퍼블릭 블록체인들이 이용자들이 원하는 바를 더 빠르게 파악해, 상호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해시드는 특히 이미 시장에서 서비스를 검증받은 기업이 기존 서비스에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를 엮어내는 ‘리버스(reverse) ICO(암호화폐 공개)’에 주목해 왔다. 영화 추천 서비스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성공을 거둔 왓챠의 '콘텐츠 프로토콜', 포인트 적립 서비스 '도도포인트'로 유명한 스포카의 '캐리프로토콜' 등이 해시드의 투자를 받았다.

이미 운영중인 서비스와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를 확보한 만큼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반 ICO 프로젝트들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들 리버스 ICO 프로젝트의 장점이다. 하지만 걸림돌도 있다. 현실 세계의 기존 서비스와 암호화폐를 이용한 경제 활동 시스템, 즉 토큰 이코노미를 잘 결합시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 대표는 “게임이 아닌 분야에서 암호화폐로 무언가를 해 보려면 결국 현실 세계와의 접점을 잘 찾아 이용자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서비스와 이용자를 이미 갖고 있는 리버스 ICO의 경우 토큰 이코노미 설계에 더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리버스 ICO 프로젝트 대부분은 전통 사업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기존 참여자들에게 보상을 주는 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이용한다. 반면 게임 속 세상은 애초에 판타지다. 화면이라는 주어진 공간에서 모든 실험이 가능하다. 게임은 완전히 '크립토 네이티브' 실험이 가능한 하나의 우주다”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댑 순위 사이트 ‘스테이트 오브 댑스’에 따르면, 2015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전체 블록체인에서 이뤄진 월 평균 거래(트랜젝션) 가운데 가장 많은 양(35%)이 게임에서 나왔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넘어섰다.

 

분류 월평균 트랜젝션 수 (건) 월간 활성 사용자 수 (명) 전체 댑 수 (개)
게임 687720 26200 504
거래소 482700 48140 188
겜블링 438420 11750 368
금융 115330 27790 262
암호화폐 지갑 50430 15140 94
미디어 26310 6470 137
소셜 네트워크 20960 4550 273
고위험 투자 15050 3020 222
보안 10500 2550 72


게임 댑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제치고 가장 많은 수의 블록체인 트랜젝션을 만들어내고 있다. 데이터 출처=State of the Dapps

상위권 게임들은 매출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오스(EOS) 기반 겜블링 게임 ‘다이스(DICE)’와 방치형 RPG 게임 ‘이오스나이츠(EOS Knights), 트론(Tron) 기반 겜블링 게임 ‘트론벳(TRONbet)’이 대표적이다. 이들 게임은 월간 최소 7천만 원에서 최대 3억 원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는 게 해시드 측 분석이다. 김서준 대표는 “(블록체인 게임이) 하나의 산업이 되려면, 서비스로 돈 버는 회사들이 나와야 한다. 처음으로 블록체인 분야에서 거래소가 아닌 주체가 적게나마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건 상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럼 재미 측면에서 블록체인 게임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크립토키티’는 '대체불가형 토큰(NFT/Non fungible token)'을 활용한 디지털 자산(고양이 캐릭터) 수집 게임이다. 크립토키티와 그 이후 나온 디지털 자산 수집 게임들은, 고유한 캐릭터를 수집하고 암호화폐를 이용해 이를 사고파는 것 이상의 재미를 주지 못하고 있다. 다이스와 트론벳 등 게임은 게임에 참여한 대가로 확률에 따라 암호화폐를 얻어가는 도박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김 대표는 "게임이라고 하기엔 아직까지 너무 단순한 게임들이 이더리움과 이오스 등 플랫폼 블록체인에서 일간 활성 사용자 수가 가장 많다는 점에서 오히려 희망을 봤다. 제대로 된 서비스,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오기만 하면 기꺼이 이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해시드랩스가 그리는 '제대로 된 블록체인 게임'은 어떤 모습일까? 김서준 대표는 "해시드랩스는 겜블링 게임으로 분류될만한 게임은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블록체인에서 성공을 거둔 겜블링 게임의 몇가지 특징들은 일반 블록체인 게임을 개발할 때도 활용할 만한 게 많다"고 말했다.

김서준 대표는 데이터의 투명성을 블록체인 게임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김 대표는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은 '갓챠(gotcha)'라고 하는 확률형 아이템 게임에 많이 의존한다. 그런데 게이머들은 늘 조작에 대한 의심을 갖고 있다. 블록체인의 스마트계약으로 게임의 핵심 로직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이런 의심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기존 게임에선 게임 안의 경제 지표, 예를 들면 어떤 마을에 어떤 직업의 게이머가 몇 명인지, 특정 무기를 보유한 게이머는 몇 명인지 등을 게이머는 알 수 없다. 그만큼 폐쇄적이다. 반면 이오스나이츠와 같은 블록체인 게임을 보면, 주요 게임 데이터들이 모두 블록체인에 올라와 있다. 이를 분석하는 서드파티 댑들도 계속 개발되며 생태계를 굴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호 운용성 또한 블록체인 게임의 중요한 특징이다. 특정 게임 상의 플레잉 데이터와 디지털 자산이 다른 게임에서도 유효하다는 의미다.

 

특징 블록체인 기반 게임 서버 기반 게임
게임 내 자산의 소유권 플레이어가 완전 소유 플레이어가 부분 소유
게임 내 자산의 교환 가능성 대부분의 경우에 보장 개발/운영사가 지원 시 가능
자산의 이력 추적 가능 개발/운영사가 지원 시 가능
게임 내 자산의 발행규칙 공개된 스마트 계약에 의해 공정하게 집행 비공개 규칙으로 조작될 가능성이 있음
서버종료 가능성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멈추지 않는 한 불가능  
 
가능(반드시 어느 시점에는 서버가 종료됨)
마켓플레이스 수수료 매우 낮거나 없앨 수 잆음  
 
앱스토어, 신용카드 결제사 등 중개자에 내는 수수료가 30%에 달함
게임 내 데이터 공개 여부 블록체인 상에 공개기록 일부만 API를 통해 접근 가능
게임 간 상호 운용/호환 법적인 제약 없이 가능 법적/사업적 관계 아래서만 가능


블록체인 기반 게임과 중앙 집중형 서버 기반 게임의 속성 비교. 자료=해시드 제공

해시드 랩스는 암호화폐 투자 경험자와 기존 게임 헤비 이용자들을 블록체인 게임의 최우선 타깃으로 보고 있다. 김서준 대표는 "리니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MMORPG게임 이용자들은 토큰 이코노미 구성 핵심 요소인 커뮤니티와 토큰, 코인 등 개념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길드', '게임머니' 등 유사 개념이 게임 세계에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플레이 중 획득하는 (아이템・캐릭터 등) 디지털 자산이 이미 게임 바깥 현실 세계에서 사고 팔리며 높은 가치를 지닌다. 사람들은 이미 게임을 즐기려는 목적뿐 아니라 생산 수단으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여전히 많다. 웹 게임과 모바일 게임에 비해 매끄럽지 않은 사용자경험(UX)이 대표적이다. 게임에서 사용할 토큰을 구입하려면 암호화폐와 암호화폐 지갑 주소가 필요한데, 신규 투자자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블록체인 상에서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 또한 블록체인 작동 원리에 낯선 이들에겐 심리적 장벽이 될 수 있다.

해시드 랩스는 밀레니얼 세대라면 이런 장벽이 별 문제가 안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전세계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고래' 계정(대량의 암호화폐를 보유한 계정) 가운데 20~30%가 밀레니얼 세대라는 통계가 있다. 10대, 20대가 세계적 거래소들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암호화폐의) 가격이 낮고, 블록체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지 않을 때부터 이미 '디지털 자산으로 돈을 벌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빨리 깨닫고 뛰어들었다. IT 기술에 대한 친숙도도 기성세대에 비해 높다.

글을 모르는 두 살짜리 아이들도 아이패드를 열고 유튜브로 동영상을 틀어 보지 않나. 아직까지 (블록체인 게임 댑들의) UX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걸 통해 뭔가 재밌는 걸 경험하거나 돈을 벌 수 있다는 점만 명확하다면, 밀레니얼들에겐 큰 장벽이 아닐 것이다."



김서준 대표는 포스텍(POSTECH)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 연쇄 창업가이자 투자자다. 2016년 초 이더리움 백서를 읽은 것을 계기로 블록체인 업계에 발을 들였다. 2017년 글로벌 블록체인 투자사인 해시드(Hashed)를 설립했다. 해시드 설립 전 인공지능 수학교육 스타트업 '노리(Knowre)'를 공동 창업했다. 현재 소프트뱅크벤처스의 벤처파트너를 함께 역임하고 있다.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2월12일자와 인터넷한겨레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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