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갤럭시S10 암호화폐 지갑 취재 후기
[편집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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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재
유신재 2019년 3월14일 17:57


 

보통 기업이 중요한 신제품을 출시하면 온갖 사소한 사양까지 크게 의미 부여를 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신제품 기사를 쓰는 기자는 기업의 보도자료에 잔뜩 끼어있는 거품을 걷어내는 게 일이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공개한 갤럭시S10은 달랐다.

전면을 꽉 채운 디스플레이, 더욱 향상된 카메라 성능 등 전작에서도 들어봄 직한 수사는 물론 넘쳐났다. 하지만 정작 나를 비롯해 블록체인 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암호화폐 지갑과 관련된 내용은 긴 보도자료에 단 한줄, "블록체인 기반 모바일 서비스들의 개인키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삼성 블록체인 키스토어'를 탑재했다"뿐이었다.

갤럭시S10 공개 한참 전부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삼성의 암호화폐 지갑에 대해 취재를 해왔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공식적인 공개행사 전까지는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는 게 업계의 관행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기다려온 공개행사 보도자료마저 이렇게 상세한 내용이 없으니 당혹스러웠다.

이미 제품이 공개됐으니 블록체인 키스토어 담당자 인터뷰를 하자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당했다. 우리 기자들은 서울 강남역의 삼성전자 홍보관을 찾아가 전시된 제품을 만져보고, 제품 약관을 뜯어보며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고, 사전예약을 통해 갤럭시S10을 받은 사람을 수소문해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가며 기사를 썼다.

신제품 관련 기사를 이렇게 힘들게 써보기는 처음이다. 결론적으로 갤럭시S10에는 암호화폐 송금과 결제, 댑(블록체인 기반 애플리케이션) 이용이 가능한 암호화폐 지갑이 탑재됐다.

삼성전자가 암호화폐가 곧 대세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이번에 암호화폐 지갑을 탑재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카카오, 페이스북, 제이피모건 같은 기업들이 올해 암호화폐를 발행할 예정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암호화폐 생태계가 확장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건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삼성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는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해 눈을 치켜뜨고 있는데 암호화폐 지갑 탑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건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짐작이야 했지만 솔직한 속내를 듣고 나니 힘이 빠졌다.

삼성전자가 신제품 공개를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는 것은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히 한국 기업인 만큼 삼성전자는 한국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갤럭시S10의 암호화폐 지갑, 정확히는 ‘삼성 블록체인 키스토어’와 ‘삼성 블록체인 월렛’의 마케팅을 포기했다. 삼성식 ‘리스크 관리’라고 할 만하다. 경쟁사 애플은 삼성의 이런 리스크 관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지난주 독일 정부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발행한 증권을 합법적인 금융상품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의회에 전달했다. 독일이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이러한 법규가 마련돼야 한다는 취지다. 삼성식 리스크 관리를 강제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어떤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 14일자와 인터넷한겨레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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