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이 진정한 탈중앙화를 향한 첫걸음을 뗐다
정승원의 '울룩불룩 블록체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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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정승원 2019년 3월26일 10:35
울룩불룩 블록체인

 

이번 글에서는 탈중앙화를 향한 스팀잇의 변화를 소개하려 한다.

블록체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암호자산(암호화폐) 그리고 탈중앙화라는 키워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블록체인이 암호자산의 소유구조 중앙화는 논외로 하더라도 거버넌스 면에서도 많이 중앙화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위임지분증명(DPoS, Delegated Proof-of-Stake) 기반의 블록체인은 이름 그대로 지분에 비례한 투표를 받은(즉 권리를 위임 받은) 주체가 블록 생성자(스팀에서는 증인(Witness), EOS에서는 Block Produce라고 부른다)가 되고, 상위 20위까지의 블록 생성자에 대한 보상이 하위 증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보니 본증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구조다.

특히 스팀잇의 경우 '완전한 탈중앙화 소셜미디어는 원래 불가능하다' 편에서도 설명한대로 지나치게 압도적인 두 계정에 의해 사실상 본증인이 결정되어 왔다. 실제 지난달 초 원래 1위에 있던 증인이 표 하나를 잃으면서 21위가 되는 상황이 일어났다. 단 한 표에 의해.

참고로 해당 증인은 어려운 시기의 스팀을 많이 활성화시킨 ‘스팀몬스터’를 운영했고, 현재도 ‘스테이트 오브 더 댑’(State of the Dapps) 기준 스팀만이 아닌 전체 블록체인 댑 5위 수준 게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렇게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증인에 대한 투표를 왜 철회했는가에 대한 몇 가지 가능성은 다음편에서 따로 설명하겠다.

물론 증인 투표라는 것을 모르는 유저도 많고 또 어차피 본증인이 확고한 경우 굳이 투표를 안 하는 경우도 많기에 해당 증인 본인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투표운동을 벌이자 하루도 안되어 20위권에 안착하였다. 그렇게 투표파워 면에서는 절대권력이나 다름없는 두 계정의 투표를 받지 않은 첫 증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몇 주가 지나자 다시 1위가 되었다! 솔직히 20위권 회복은 시간의 문제일 뿐 누구나 예상한 기정사실이었지만, 그렇게 쉽게 다시 1위로 돌아올지는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최근에는 상위권 증인 간의 표 차이가 많이 줄어들고 있어 세부 순위는 자주 변동되곤 한다. 글 작성하는 현재는 8위다.) 특히 함께 스팀몬스터를 운영하는 또 다른 증인과 함께 나란히 1, 2위를 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이제 실제 수익을 낼 수 있는 서비스들을 운영하는 증인만이 상위권 증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소리없이 외치는 것 같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과연 ‘증인 투표가 얼마나 탈중앙화 되어 가고 있나’가 궁금해져서 직접 증인 투표 데이터를 분석하여 스팀잇에 게시했다. 이 글(Witness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은 오픈소스 관련 글을 지원해주는 유토피안(Utopian)의 추천 글에 뽑혀, 그 어떤 단일 보팅봇보다도 보팅파워가 높은 유토피안의 보팅 최대치뿐만 아니라 여러 증인들 및 유저들의 보팅을 받아 스팀잇에서 셀봇이나 보팅봇의 도움없이 받을 수 있는 사실상 최고의 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위에 언급한 증인투표 파워 2위의 스팀파워 임대, 암호화폐 거래 등의 사업을 하는 블록트레이즈(blocktrades) 증인 계정의 큰 보팅을 받은 것도 하나의 큰 재미다. 사실 거대 지분을 보유할수록 생태계가 잘 되면 더 큰 이득을 보기 마련이다. ‘유저의, 유저에 의한, 유저를 위한 증인’라는 제목으로 한글로도 작성해두었으니 증인 투표에 인한 스팀 거버넌스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실제 스팀잇의 증인 투표 현황을 스팀파워 구간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월 16일 기준 스팀파워별 증인 투표 현황 Witness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그래프=정승원
3월 16일 기준 스팀파워별 증인 투표 현황 Witness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그래프=정승원


 

얼핏 보면 5000 스팀파워 미만(녹색)의 유저의 힘은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위의 그래프만 가지고는 투표를 해도 작은 것인지 투표를 안해서 작은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얼마나 투표를 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3월 16일 스팀파워별 증인 투표 현황 Witness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그래프=정승원
3월 16일 스팀파워별 증인 투표 현황 Witness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그래프=정승원


 

위의 그림에서 왼쪽 바깥 도넛은 각 스팀파워 카테고리별 스팀파워의 비중을 나타내고 안쪽 도넛은 해당 카테고리 중 증인 투표에 참여한 스팀파워의 비중을 나타낸다. 오른쪽 도넛은 이렇게 해서 투표에 참여된 카테고리별 스팀파워의 비중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900만 스팀파워 가까이 되는 유일한 계정이 속한 하늘색 구간의 경우 원래는 6.7% 정도의 영향력을 가져야 하지만 왼쪽에서 보다시피 투표를 안하는 계정이 많기에 오른쪽에서 결국 10%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위의 왼쪽 표에서 알 수 있듯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5000 스팀파워 미만의 계정의 합이 가장 큰 하늘색 계정보다 조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유저들이 투표에 충분히 참여만 한다면 얼마든지 상황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소개한 글은 이렇게 스팀파워 뿐만 아니라 스팀잇 내에서의 유저 등급, 활동 이력 등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분석한 글이다. 예를 들어 만약 최근 한달간 활동 이력이 있는 유저들만의 투표로 증인을 결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3월 16일 스팀파워별 증인 투표 현황을 최근 한달 이내 활동이력이 있는 유저들의 투표로 정렬한 결과. 그래프=정승원
3월 16일 스팀파워별 증인 투표 현황을 최근 한달 이내 활동이력이 있는 유저들의 투표로 정렬한 결과. 범례의 숫자는 최근 마지막 활동의 현재 시점에서의 개월수다. 그래프=정승원


 

재미있는 사실은 보라색이 그 투표파워 1위 계정임에도, 1개월 이내 활동이력이 있는 (파란색) 유저의 투표만으로 정렬한 순위 결과가 현재의 순위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1위에서 21위가 되었다가 다시 1위를 탈환한 증인의 사례에서 보듯이 스팀 생태계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으며, 비록 쉽진 않지만 유저들의 힘으로도 본증인이 될 수 있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상위권 증인들은 필요 이상으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고 이제 점차 그 영향력이 크지 않음을 본인들도 자각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증인투표면에서 탈중앙화를 향해 가고 있는 희망적인 소식 가운데에 한국 스팀 커뮤니티에는 국내 유일한 본증인의 20위 유지가 현재 다소 위기에 처한 안타까운 상황이기도 하다. 글을 작성하는 현재 시점에서도 그렇고 이미 20위 자리를 내준 것이 최근 한달간 들어 4번째이다. 현재 20~22위간의 표 차이는 불과 10만 스팀파워도 안 되는 상황이라 왠만한 큰 유저 표 하나면 순위가 뒤바뀌는 치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19위와 20위, 22위와 23위간이 차이는 조금 벌어진 상황이다.

한동안 매우 안정적으로 20위를 유지했던 한국 본증인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에는 한국 스팀잇 커뮤니티가 그만큼 비중이 약해지고 있음이 절대적이다.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신조어를 나올만큼 열광적이었던 우리나라의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시들해진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또한 스팀몬스터 게임을 운영하는 증인들이 최상위에 위치한 것처럼 증인 투표 성향 역시 스팀의 성장을 견인해줄 만한 댑이나 기타 여러 정보 서비스 등을 직접 운영하는 증인에게 많이 몰리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스팀잇에는 한국을 기반으로 한 댑이 제법 많다. 스팀 재단의 지원도 받고 있는 시작부터 글로벌 마켓으로 시작하여 얼마 전 성공적으로 IEO (Initial Exchange Offering)를 시작한 스팀헌트부터 테이스팀, 트립스팀 등 글로벌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곳들 역시 증인 노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실 본증인이 되기가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렵다보니 각 서비스들이 서비스 자체는 잘 하면서 증인 홍보활동에는 다소 소극적인 편이란 평가를 받곤 한다.

토큰 이코노미 by 정승원

또한 한국 커뮤니티가 큰 기여를 하고 있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소위 끼리끼리만 논다는 외국 유저들의 시선도 존재한다. 사실 언어가 다르면 딱히 교류가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실인데 단지 한국인 커뮤니티가 상대적으로 매우 크다보니 견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기엔 물론 한국 유저들 역시 요즘은 나아지고 있지만 30인까지 할 수 있는 증인투표이고 충분히 투표를 받을 만한 외국 증인들이 있음에도 (역시 대개는 언어의 한계로) 한국인 증인들만 투표해서 그런 시선의 원인을 제공한 면도 없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충성도 높은 유저베이스(심지어 스팀몬스터 게임 최상위 랭커 상당수가 한국 유저이다)와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국 커뮤니티인만큼 앞으로 스팀잇 내의 한국 커뮤니티가 어떻게 되어 나갈지 궁금하다.

사실 스팀잇엔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워낙 새로운 소식이 많아 이걸 소개해볼까 하면 또다른 새로운 소식이 나와 무엇부터 소개할지 몰라 그간 원고가 늦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원래 스팀잇 CEO를 맡고 있었던 네드 스콧(Ned Scott)이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고 엘리자베스 파월(Elizabeth Powell)이 매니징 디렉터를 맡게 되었다. 내가 아는 한 이 소식은 별로 미디어에 다뤄지지 않을 정도로 당시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도 스팀잇도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사실 주식회사도 아니고 더구나 작은 조직에서 의장이니 매니징 디렉터를 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 수 있고 얼마나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2018년 유튜브 생방송 미팅을 돌연 연기하고 잠적하여 인수설 등 다양한 소문을 무성하게 만들고 사과나 해명도 없는 등 무책임한 모습을 많이 보여 유저들의 신뢰를 많이 잃은 네드가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즉 경영 체제 면에서도 자의든 타의든 탈중앙화로 가고 있는 셈이다.

최근 삼성 갤럭시 S10, 카카오톡 암호화폐 지갑 탑재 소식 등으로 블록체인이 일반 대중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갈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중이다. 갤럭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소규모의 뷰티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시연회에서도 소개했을 만큼, 블록체인이 대중화가 된다면 반드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그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이전에 말한대로 블록체인 기반 소셜미디어가 명확한 정책을 위해 어느정도 중앙화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하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탈중앙화가 단순한 철학에 그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스팀, EOS같은 DPoS의 투표가 되었든 어떤 다른 방식이든 유저 기반의 탈중앙화가 필수적일 것이다.

이제 적어도 증인 투표면에서는 진정한 탈중앙화에 한걸음을 내딛은 스팀잇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 나갈지 여러모로 기대가 된다.

 


<지난글 보기>


#1_암호화폐 vs 가상화폐 : 그 해묵은 논쟁에 대하여
#2_여전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뗄 수 있나 궁금하세요?
#3_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블록체인의 안정성
#4_경제학자의 눈으로 스팀잇을 들여다보다
#5_스팀 토큰 구조와 스팀달러에 대한 3가지 오해
#6_완전한 탈중앙화 소셜미디어는 원래 불가능하다
#7_누구나 쉽게 돈 벌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내리막이 시작된다








정승원 브리스톨 대학 경제학과 조교수는 포스텍에서 전자전기공학, 컴퓨터공학, 수학과를 복수전공했고 스탠포드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안랩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페이스북 본사 new faculty fellow economist로 일하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직접 번역한 비트코인 백서 등을 가지고 블록체인 강의를 하고 있으며 스팀잇에 다양한 블록체인 관련 글들을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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