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주에서 불온한 블록체인을 꿈꾼다
[이드콘2019 인터뷰③] 현수영 - 제주 삼도2동 지역 화폐 도입 테스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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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김외현 2019년 5월18일 13:00
제주시 삼도이동은 삼국시대 탐라국 시절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제주 행정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위치한 제주목 관아 사적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산천의구란 말은 옛시인의 허사라던가. 제주시 홈페이지를 보니 지난 3월31일 기준 인구가 8300명 남짓. 옆동네 삼도일동만 해도 인구가 1만4천명이 넘는다. 삼도이동은 이름부터가 2동이다.

이드콘 2019 발표 목록에 ‘제주 삼도2동 지역 화폐 도입 테스트 후기’라는 주제가 있다. 블록체인으로 옛 명성을 되찾자는 얘기인가? 잘 들어보면, 꼭 그걸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13일 개발자 현수영(35)씨와 전화통화로 미리 만났다.

제주 블록체인 유저 그룹의 지역화폐 삼도코인 실험은 1회용 컵 대신 텀블러 사용을 권장한다. 출처=현수영


-지역화폐를 어떤 식으로 운영했나?

“삼도코인이라고 한다. 여러 지역화폐 실험이 있지만, 우리는 몇 가지를 결합했다. 우선 환경운동이다. 카페에서 1회용 컵이 아니라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환경상으로는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러나 텀블러를 가져왔다고 할인해주는 형식은 너무 뻔하다. 그래서 기본소득 모델도 포함시켰다. 카페 주인에게 기본 소득 개념으로 현금을 우선 지급했다. 그리고 텀블러를 가져온 이용자가 QR코드를 통해 코인으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카페는 코인이 없지만, 사람들이 코인으로 결제하면서 코인이 쌓인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1대1로 매칭된 양을 받는다. 블록체인+환경운동+기본소득이다.”

-사회 운동 성격이 강한 것 같다.

“사실 블록체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제주 블록체인 유저그룹에는 블록체인 개발자인 저뿐 아니라, 사회운동, 환경운동 하는 분들이 같이 있다보니 나온 아이디어다. 지난해 제주도 지사 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나와 돌풍을 일으켰던 고은영씨도 있고, 번역가 겸 환경운동가로 활동하시는 전정순씨도 있다.”

-규모는 얼마나 되나?

“크지 않다. 이용자 10명을 모집했고, 카페 1곳에 30만원을 선지급했다. 그러나 사회운동가들이 낸 아이디어를 블록체인으로 실현시킨다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규모를 키우는 건 문제가 아니다. 다만, 참여자들에 대해 블록체인과 관련한 교육을 실시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블록체인의 최종 사용자는 어떤 기술인지를 알 필요가 없을 수 있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우리는 반대한다. 사용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그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써야 의미가 있다고 본다. 비슷한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가야 한다.”

-애초 블록체인 자체가 기존 질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됐던 성격이 크다. 블록체인의 원시적 발상으로 돌아가는 건가?

“그렇게 봐주시면 고맙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더리움 개발자고 강의도, 연구도 해왔지만, 결국은 다시 분산시스템으로, 비트코인으로 돌아가게 되더라. 국내 블록체인 업계는 코인이 강조되면서 비즈니스 영역이 강조되고 플랫폼 자본주의화하고 있다.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되면 기존 질서와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상부구조를 흔들 수 있는 하부구조로서, 기반을 바꾸는 불온한 블록체인을 꿈꾼다.”

제주 블록체인 유저 그룹 첫 모임. 왼쪽부터 김나솔(제주스퀘어 대표, 페이스북 개발자영어 그룹 운영자), 전정순(환경운동가, 번역가), 현수영(개발자), 미카엘(PAX DATATECH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 Ling Kim(중국 국적의 제주도민).


-현실적으로 기본소득 실현에서 블록체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기본소득은 최종 실현 때까지 도덕성 해이 논란 같은 윤리적 문제나 과연 실현 가능하겠느냐 하는 정치적 문제가 많다. 경제적으로도 지속 가능하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윤리와 정치는 차치하더라도, 경제적 지속가능성은 블록체인이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본다. 가령 기본소득 재원이 필요할텐데 블록체인을 활용한 역외송금 등을 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를 활용할 수 있다. 기본소득 예산의 운영과 집행 등에 관한 기록을 블록체인에서 하면 투명하고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십분 활용 가능하다.”

-그밖에 진행하는 활동이 있나?

“지역 커뮤니티 이름으로 여러가지를 한다. 그중 하나는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을 이더리움에 기록해 영원히 기억하자는 작업이다. 올해 4월3일에 시작해서 한달에 한 번씩 지금까지 두 차례 25명에 대한 기록을 진행했다. 전체 희생자가 몇만명이고 1년 안에 끝내려는데, 현재 속도로는 안 된다. 나중엔 프로그램을 돌려야 할까 싶기도 하다.”

-제주에서의 블록체인 개발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제주에선 개발자로서 일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유능한 분들이 있지만, 풀이 크지 않아 교류도 잘 안 된다. 그래서 서울에 자주 다녀가게 된다. 그래서 제주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에서 유저그룹을 시작했다. 다만, 우리는 장기적으로 보고 있어 당장 블록체인의 가까운 미래에 조급함을 느끼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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