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센서스 2019] 블록체인 보편화 가로막는 것은 기술 아닌 인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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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데스크코리아
코인데스크코리아 2019년 5월22일 08:00
Blockchain’s Adoption Challenge Is a Human Problem, Not Technical
출처=셔터스톡


글을 쓴 마자 부지노비치(Maja Vujinovic)는 오그룹(OGroup LLC)의 CEO로, 제네럴일렉트릭(GE)의 신기술 부문 최고혁신이사를 지냈습니다. 부지노비치는 현재 코인데스크의 자문위원이며, 이 글은 컨센서스 2019 행사장에서 배포한 컨센서스 매거진에 실린 칼럼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동시에 서로 밀접하게 얽힌 두 가지 가치가 근본적으로 충돌하게 됐다. 하나는 무한경쟁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는 일이다.

사람들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달성했을 때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고 생각한다. 암호화폐 업계에서 효율성과 생산성이란 더 완벽한 모델, 더 완벽한 합의 알고리듬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반대로 인간은 끊임없이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는 존재다. 이론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기술도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 유용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는 데서 두 가치가 충돌하게 된다.

암호화폐보다 더 큰 개념인 ‘블록체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1년에 블록체인을 처음 접한 나는 이후 투자자, 사업가, 기업 임원 등 여러 옷을 입고 이 분야에 몸담아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블록체인을 그저 또 하나의 새로운 기술로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언론은 블록체인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술이라는 다소 과장된 보도를 수도 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블록체인이라는 개념 그 자체만으로는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블록체인이 놀라운 힘을 발휘하려면 우리가 몸담은 사회가 방향과 목적을 먼저 바꿔야 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내건 주요 특징에는 과거에 기록된 사실들 또는 ‘공동의 사실’을 변형할 수 없는 형태로 보존한다는 속성이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의 행동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거나 재구성할 수 있고 체계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는 데도 블록체인 만의 특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에서는 모든 것이 투명해야 한다. 블록체인을 통해 우리의 결점, 즉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남을 기만하는 인간의 성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또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사회와 기업, 세상을 추구하면서도 그 꿈을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우리 인간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지금까지는 어떤 면에서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노력을 방해해 왔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디딤돌 같은 역할을 블록체인이 해줄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블록체인이 제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이를 인류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과대망상의 문화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소수의 권력자가 만들어낸 세상은 대개 의미 없는 것들로 가득한 우울한 곳이다. 우리는 매일 같은 곳으로 출근해 습관처럼 문서를 뒤적이고, 금융 자산을 주고받으며 거래하지만, 실제로 생산성을 높이거나 실질적으로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창출하는 일은 드물다.

우리는 재능을 뽐내고 자존심을 높이며 특히 자신의 힘을 내세우기 위해 도표와 모형을 만들고 발표를 하면서 많은 것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제까지 전 세계 14개 도시에서 살고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지 사람들은 권력 체계에 따라 움직이고 그 밑바탕에는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기술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진정으로 인간이 꿈꾸는 이득을 가져다 주려면 인간 사회가 먼저 스스로 변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블록체인’은 그저 하나의 유행어 이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기업이나 조직이 혁신에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업이나 조직의 거부감을 단지 임상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만 바라보면서 정작 큰 그림은 놓치는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다. 큰 그림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의미 있는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근본적인 공포를 먼저 해소해야 한다. 우리의 탐욕을 자제하지 않는 이상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은 제한된 영역에서 제한된 영향을 끼치는 데 그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문서 대신 선택 받은 소수의 인원이 통제하고 조작할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뒤적이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기술의 문제 아닌 인간의 문제


컴퓨터 과학자들이 말하는 블록체인의 가장 큰 한계는 바로 ‘확장성’이다. 즉 수많은 노드가 연결된 블록체인에 전 세계에서 기록되는 모든 거래 기록을 복제해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필요할 때마다 검증하려면 엄청난 양의 컴퓨터 용량이 필요한데, 그 비용이 현실적으로 너무 크다. 이는 분명 심각한 문제이지만, 뛰어난 기술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블록체인의 성공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일 수 있다. 지금 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다주지 않는 구상은 배제하려는 현대 자본주의 본연의 속성이 더 큰 장애물일 수도 있다. 아직도 우리는 블록체인 기술의 성과를 평가할 때 주주들에게 보고해야 할 분기 실적을 그 잣대로 삼고, 맹목적으로 우리가 아는 사회의 작동 방식을 따른다.

이래서는 진정한 혁신을 이룰 수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내가 GE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당시 GE 항공 사업부는 법으로 규정된 항공기 엔진의 안전성을 시험할 때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전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이 전력은 대부분 매장돼 낭비가 상당했다. 그때 제안된 해법 중 하나가 이 전력을 이용해 암호화폐를 채굴하고 그 수익을 항공 사업부에서 지출하는 비용을 충당하는 데 쓰자는 것이었다. 당시 항공 사업부의 CEO는 너무 파격적인 생각이라며 수용하지 않았다.

혁신에 대한 거부감은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 임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GE를 그만두고 암호화폐 업계에 있는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린 나는 암호화폐 세계에도 비슷한 장벽이 존재하고, 개발자들끼리 직접 만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개방적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혁신에 대한 거부감 뒤에는 권력에 대한 갈망과 경쟁, 그리고 (가능하면 독점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심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감은 자원과 아이디어, 시간을 낭비하게 할 뿐이다.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불필요하게 반복하는 자원의 낭비가 매일, 매 순간 일어날 뿐이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기업 10곳이 따로따로 고민해 각자 블록체인을 만들고는 서로 자기 것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누구보다 우위에 있고 싶다는 경쟁 심리 때문에 함께 고민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더 나은 해법은 영원히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다. 머지않아 확장성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블록체인이 우리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암호화폐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이끄는 사고방식과 동기가 먼저 변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블록체인의 잠재성을 구현하는 일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다.

 

해법: 사고방식의 획기적 전환


그러나 희망적인 조짐도 여러 곳에서 보인다.

변화를 요구하는 일반 대중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조직과 기관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감시 자본주의에 대한 이 시대의 반항은 데이터와 자산을 기관이 독점하던 중앙통제식 체제를 무너뜨리고 개인의 권력을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결국 기관들은 탈중앙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조금씩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실제로 이미 진전이 보인다. 아직 실제 행동에 나서지는 않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자산이나 신원 정보, 개인 정보, P2P 거래 등을 관리하기 위해 탈중앙화 체제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는 인간의 기본 권리다. 정보를 생성하는 것은 개인임에도, 정작 그 정보를 이용하고 소유하는 것은 대기업과 정부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인터넷 시대에는 이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변두리에 있던 개인들에게 이전해 스스로 정보를 보호하고 그 정보에서 비롯되는 수익을 직접 챙길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블록체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상당히 크다. 그러려면 우선 자기밖에 모르던 기득권층이 특권을 내려놓고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기준과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서로 협동하는 체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까? 여러 기업이 모인 컨소시엄을 구성해, 특정 대기업이나 지배적인 암호화폐 스타트업이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고자 쉽게 조작할 수 없는 효과적인 기준과 확장성 솔루션을 개발해야 한다.

아울러 블록체인 기술이 공익에 기여하려면 정부와 민간 사회의 역할을 규정하고, 올바른 법률과 자율적인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 실질적인 목적을 갖고 이에 대한 창의적 해법을 찾기 위해 기꺼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려는 개방적 사고를 가진 진보적 사상가들과 행동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데 있어 민첩해야 한다. 민첩함은 일을 처리할 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우리의 사고방식도 민첩함을 갖춰야 한다. 끊임없이 구부려보고 유연하게 비틀어보되, 부러뜨리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의 전환을 이루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기존의 방식, 낡은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렵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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