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프로젝트 팀엔 '블잘모'가 필요하다
[BUX2019] UX디자이너가 본 블록체인 산업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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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정인선 2019년 5월23일 14:00
강하다 MBGA 대표 겸 블록체인 프로덕트 매니저가 BUX 2019 기획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BUX 2019


 

22일 서울 강남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UX디자이너들을 위한 블록체인(BUX 2019: Blockchain for UX designers)' 행사가 열렸다. 개발자나 투자자가 아닌 UX(이용자 경험, User Experience) 디자이너와 서비스 이용자 입장에서 블록체인 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BUX 2019을 처음 제안한 강하다 MBGA 대표 겸 블록체인 프로덕트 매니저는 "블록체인 디자이너들의 경험과 고충, 살아가는 방식을 듣는 자리가 필요하며, 더 많은 디자이너가 업계로 유입돼야 한다는 생각에 BUX 2019를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의 블록체인 기술은 '문제점을 찾고 있는 해결책'이다."

소민경 해치랩스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문제점도 없는데 실용성이 불분명한 기술적 발전만 갖고 돌고 도는 상황"이라며, "킬러 서비스가 나오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걸 출발점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민경 해치랩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BUX 2019에서 발표하고 있다. 출처=BUX 2019


최근까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한 소민경씨는 "거래소 서비스를 설계하던 당시, '1,000,000원'과 '백만원' 중 어떤 방식으로 가격을 표기할지를 두고 기획자와 디자이너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수포자(수학 포기자)' 디자이너들은 숫자만 놓고 보면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경영학도 출신 기획자들은 '이걸 왜 못 읽냐'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블록체인 업계 전반이 이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포자' 디자이너와 '경영학도' 기획자의 관점 차이. 출처=소민경/BUX 2019


 

소민경씨는 "블록체인 업계 전반이 '지식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에 이미 깊숙하게 들어온 전문가들이 "블록체인을 너무 잘 알다 보니" 이용자 입장을 오히려 이해하지 못한 채 공급자 입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의 댑들은 대부분 이용자가 공부를 해야 쓸 수 있다. 몰라도 쓸 수 있어야 한다. 이용자가 블록체인 작동 원리를 모르더라도, 그들이 가진 문제를 기술이 해결해 주면 된다. 어떻게 사용할지가 명확해진다면, 기술은 오히려 심플해질 수 있다."

소민경씨는 "블록체인 댑(dApp) 이용자가 겪는 문제의 절반 이상인 53%는 UX·UI와 관련된 문제라는 통계가 있다"며 "하지만 블록체인 업계는 54%의 투자자와 45%의 개발자로 가득 차 있고, 디자이너는 전체의 1%에 불과하다. 고민의 관점이 '서비스가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와 '사업성이 있는지' 두 가지에 치우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발과 비즈니스가 아닌 사용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기획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사례로 코인원의 해외송금 서비스 '크로스'를 들었다. 그는 "크로스는 블록체인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어떤 제품을 만들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기획한 서비스"라며 "그러다 보니 당시 기획자들과 의사결정자들은 '블록체인으로 송금을 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은 아니었다.
"디자이너들이 보기엔 해외 송금을 하는 데 굳이 블록체인을 이해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브랜딩과 홍보 과정에서 '은행과 비교해 수수료가 저렴하고 송금 속도가 빠르다'는 것만 강조했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설명은 모두 생략했다. 이후 코인데스크코리아에 크로스 서비스를 소개하는 기사가 “블록체인은 날 편하게 해주었다. 뭔지는 몰라도”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것을 보고,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보다 이용자가 편하게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지와 어떤 편익을 얻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소민경씨는 "모든 블록체인 프로젝트에는 사용자의 입장을 대변할 '블잘모'(블록체인을 잘 모르는 사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래소 서비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시각적 요소를 넘어 사용자의 관점을 대변하고, 비즈니스를 이해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이너가) 오히려 기술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잘 모르는 이용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며 "기술을 잘 모르면 안 끼워줄 것 같은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분위기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영 루트원 CDO가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BUX 2019에서 발표하고 있다. 출처=BUX 2019


 

암호화폐 지갑 비트베리 개발사 루트원의 정진영 디자인 총괄은 "마이이더월렛을 비롯한 초기 암호화폐 지갑 서비스들은 이용자들에게 마치 '블록체인 세계에 함부러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사용성이 좋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자신이 카카오에서 카카오택시 기사용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만든 경험을 공유했다.
"택시 기사들이 자동차 대시보드에 휴대폰뿐 아니라 미터기와 내비게이션 등 많은 기기를 올려 두고 쓴다는 점을 고려해, 운전대 옆 대시보드의 다른 기기들과의 이질감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디자인했다. 이용자와 생소한 신기술 사이의 격차를 디자인으로 메운 사례다. 이용자에게 익숙한 느낌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경험했다."

정진영 루트원 디자인 총괄은 비트베리의 이용자 친화적 디자인이 오송금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출처=루트원


 

정진영씨는 "비트베리의 경우에도 이용자들이 이미 친숙하게 여기는 신용카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과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구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카카오 계정 연동을 통한 로그인 기능과 복잡한 숫자로 구성된 주소 대신 이름과 전화번호만을 입력해 토큰을 전송하는 기능이 대표적이다. 정 총괄은 "이같은 친숙한 UX 디자인은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송금 오류를 줄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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