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만 하면 돈 번다더니...양치기 소년 된 채굴형 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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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모
박근모 2019년 6월4일 19:00
채굴형 거래소 시대의 화려한 시작을 알린 것은 1년 전인 지난해 5월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 에프코인(Fcoin)이었다. 거래를 하면 거래소가 발행한 토큰으로 수수료를 되돌려주는 트레이드 마이닝(Trade-to-mine) 모델이었다.

출처=에프코인


에프코인은 설립된 지 한달 만에 하루 거래량 56억 달러(약 6조 2949억 원)를 기록했다. 암호화폐 통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등록된 거래소 가운데 1위였다. 신생 거래소가 불과 한 달 만에 바이낸스, 후오비, 오케이EX 등 손꼽히는 거래소를 넘어선 셈이다. 모두가 감탄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트레이드 마이닝 모델을 받아들인 채굴형 거래소의 힘을.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재빨리 움직였다. 코인빗, 코인제스트, 캐셔레스트, 데이빗, 체인비, 비트소닉, 넥시빗 등 중소 거래소들이 거래소 토큰을 발행하고 트레이드 마이닝 모델을 도입했다. 이들은 투자자들에게 거래만 하면 거래 수수료를 거래소 토큰으로 돌려받을 수 있고, 추가로 거래소 토큰 보유에 따른 수익 배당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며 급성장했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코인제스트가 국내 거래량 1위를 차지했고, 이어 9월에는 캐셔레스트가 1위에 올랐다. 10월에는 코인빗이 1위를 이어받았다. 그렇게 채굴형 거래소는 천하를 호령했다.

지난 1월 '채굴형 거래소는 어떻게 ‘개미지옥’이 되는가'에서도 설명했듯이, 채굴형 거래소는 지속적인 성장이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다.

채굴형 거래소는 이용자들이 낸 수수료를 거래소 토큰으로 돌려주고, 이를 바탕으로 수익을 배당한다. 거래량이 많아지면 토큰 발행량도 많아지고 수익 배당도 증가한다. 하지만 거래량이 줄어들면 수익 배당이 줄어들고 이미 발행된 거래소 토큰의 가치는 떨어진다. 더욱이 이렇게 토큰 가치가 하락하는 와중에도 거래소 토큰은 지속해서 발행된다. 토큰 가치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래량 상승이 멈추는 순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시작되면서 투자자가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결국 트레이드 마이닝 모델이 무너지게 된다." - 구태언 법무법인 린 부문장(변호사)

채굴형 거래소들도 이 사실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거래량을 유지하기 위해, 또는 거래소 토큰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코인제스트는 지난해 7월 18일 거래소 토큰 코즈(COZ) 발행을 시작으로 트레이드 마이닝을 도입했다. 올해 1월에는 코즈와 별개로 새로운 거래소 토큰 코즈아이(COZi)를 공개했다. 4월에는 코즈플러스(COZP)라는 코즈와 코즈아이를 통합한 거래소 토큰을 또다시 발행하기 시작했다. 코인제스트는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을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시선은 곱지 않다. 거래소 토큰의 가치가 떨어지고 손실이 생기자 '토큰 갈아타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기존 거래소 토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거래소 토큰을 발행하는 것은 코인제스트만이 아니다. 코인빗은 덱스(DEX) 외에 덱스터(DXR)를 발행했고, 캐셔레스트는 캡(CAP)을 대신해 하트(HRT)를 추가로 발행했다. 이들 채굴형 거래소들은 처음과 똑같은 홍보를 반복한다. 거래량에 따라 새로운 거래소 토큰을 발행하므로 이용자들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굴형 거래소들이 거래량 유지를 꾀하는 카드는 새로운 토큰 발행 뿐일까? 아니다. 거래소 토큰을 일정 가격 이하로는 거래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가격 하한제'와 이미 시장에 풀린 거래소 토큰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매입해 소각하는 '바이백'(Buy Back)도 있다.

가격 하한가 정책이 풀리자 폭락한 거래소 토큰 캡 가격. 출처=캐셔레스트


캐셔레스트는 거래소 토큰인 캡의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0.81원을 하한가로 설정했다. 그 결과 64억 개의 캡이 0.81원에 매도 물량으로 몰렸다. 캐셔레스트는 지난 4월 결국 하한가 정책 폐지를 선언했다. 0.81원이었던 캡은 0.15원으로 내려앉았다.

또 다른 채굴형 거래소 비트소닉은 지난해 12월 거래소 토큰 BSC의 가격 하한가 정책과 함께 바이백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올 2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1천만개의 BCS를 바이백했다고 밝혔다. 비트소닉은 1~4차까지 372억9259만원 어치를 바이백했다고 공개했다. 5차 바이백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기준가와 물량을 바탕으로 추산해보면 약 285억원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비트소닉이 650억원이 넘는 자금을 들여 토큰 소각에 썼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소 거래소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며 진위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채굴형 거래소의 날개없는 추락, 그리고 소송전


채굴형 거래소들은 이처럼 거래소 토큰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전체적인 암호화폐 시장의 침체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전체 거래량이 줄면서, 거래소 토큰 보유에 따른 수수료 배당도 줄었다. 결국 거래소 토큰 가격도 떨어졌다. 트레이드 마이닝은 더이상 매력을 발할 수 없었다. 결국 거래량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투자자들의 불만은 커졌다. 그리고 투자자와 거래소 간 법적 분쟁이 이어졌다.

법무법인 에이원의 소송 준비 공지. 출처=에이원 블로그


지난해 9월12일 법무법인 에이원은 트레이드 마이닝으로 거래소 토큰(배당 코인)을 발행하는 코인빗, 캐셔레스트, 코인제스트에 대한 소송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한 달 뒤인 10월 5일 우선 캐셔레스트의 거래소 토큰인 캡에 대한 민사소송을 냈다.
"기본적으로 거래소는 암호화폐 거래를 중개하는 중개자이다. 채굴형 거래소들은 자신들이 직접 중개자이면서 발행자의 입장으로 거래소 토큰을 발행하는 이해 상충 문제를 야기한다. 거래소는 거래를 안전하게 연결해 주는 중개 역할만 해야 한다. 그러나 암호화폐를 직접 발행해 투자 정보를 독점한 상태에서 가격을 상승시키면서 보유한 물량에 따른 시세 차익을 얻고 있다. 선행소송 결과가 나오는 데로 채굴형 거래소를 대상으로 확대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 법무법인 에이원 김동주 변호사

올해 5월10일에는 캐셔레스트 이용자가 캐셔레스트를 운영하는 뉴링크를 상대로 사기, 업무상 배임, 횡령, 유사수신행위법위반, 자본시장법위반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 소송은 법무법인 광화가 맡았다.
"캐셔레스트는 캡 코인의 가치가 상승할 것처럼 공지사항과 언론 등을 통해 광고했다. 이를 믿은 피해자들은 캡 코인에 투자했지만 계약 내용 위반, 정책 변경 등으로 20억 원가량의 손해를 입었다. 마이닝, 바이락, 코인 소각, 디지털 토큰 등 암호화폐 용어로 인해 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오인해 위법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형법, 자본시장법, 유사수신행위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 - 법무법인 광화 박주현 변호사

캐셔레스트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기, 횡령, 배임, 우사수신행위법, 자본시장법 등 혐의를 일체 부정하고, "엄정하게 대응하고 형사절차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뉴링크의 무고함을 밝혀내는 것은 물론 고소인들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5월17일에는 코인제스트가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된 사건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 제2부(김형록 부장검사)에 배당됐다. 고소에 참여한 투자자를 변호하는 법무법인 민행의 김세진 변호사는 "코인제스트는 지난해 10월 글로벌 밋업 행사를 열고 1500억원 상당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지만, 현재 투자금을 받지 못한 상황으로 이는 허위로 투자유치를 공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코인제스트는 지난달 30일 김세진 변호사가 고소 취하를 대가로 16억 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며 협박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코인제스트는 맞소송으로 대응했다. 점점 진흙탕 싸움이 돼가고 있다.

앞으로 채굴형 거래소의 운명은


업계 한쪽에서는 채굴형 거래소가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인텔, 네이버랩스, KB인베스트먼트 등에서 투자심사역으로 다수의 IT 스타트업을 지원한 경험이 있는 스카이메도우의 한인수 대표는 "신생 거래소 입장에서 트레이드 마이닝 모델을 접목한 채굴형 거래소는 단기간에 거래량을 늘릴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지속 가능성이나 법적 이슈에 문제가 있는 만큼 초기 마케팅을 위한 용도일 뿐 거래소의 본연의 역할에는 맞지 않는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채굴형 거래소 업계는 이같은 시선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레이드 마이닝, 거래소 토큰 등은 후발 주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시간이 지나면 거래소 토큰의 가격이 내려가 고객의 불만이 커진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지속 가능한 트레이드 마이닝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겠다." - 국내 채굴형 거래소 관계자(익명)

그러나 그의 답변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채굴형 거래소의 미래가 더 어두워 보인다면, 단순히 과한 평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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