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코박에서 손 떼고, 개발자로 '탈블'합니다"
[인터뷰] 강승민 코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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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모 기자
박근모 기자 2020년 3월6일 09:00

지난해 2월 만났을 때 그의 눈빛엔 희망이 가득했다. 조금은 지친, 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앞으로 지켜봐 달라 당부했다. 미래를 확신한다고 했다.

1년이 지나 지난주 강남의 카페에서 다시 만난 그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대화 도중 가끔은 흥분하며 울컥하기도 했지만, 이내 담담해졌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던 청년은 불과 1여년 만에 고민 끝에 '탈블'을 하기로 결심했다. 블록체인 업계에 있기보다는 이제 개발자로 돌아가겠단다. 국내 대표적인 암호화폐 커뮤니티 코박을 창업한 강민승 대표의 탈블이다.

대체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치프리미엄으로 시작된 코박

코박이 등장하기 직전인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는 비트코인 가격 급등을 시작으로 ICO 붐을 타고 국내 수요가 급증했지만, 공급이 받쳐주지 못하면서 국내와 국외 암호화폐 가격에 10%~50%까지 차이가 발생한 '김치프리미엄' 현상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코박은 김치프리미엄 시세 조회로 시작했다. 출처=코박
코박은 김치프리미엄 시세 조회로 시작했다. 출처=코박

데이팅 서비스 앱 아만다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강 대표는 그 어디에도 김치프리미엄을 제대로 보여주는 서비스가 없다는 데 착안해 코박을 기획했다. 2018년 2월 친한 개발자 5명과 함께 모여 본격적인 암호화폐 커뮤니티와 김치프리미엄 통계 서비스 개발에 착수했다. 3월에 코박 법인을 세우고 4월에 첫 서비스를 런칭했다. 그러나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치프리미엄 서비스를 출시하자마자 김치프리미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코박은 잊혀졌다.

"당시 빗썸과 코인원 등 주요 거래소의 DAU(Daily Active Users, 일일 실제 방문자 수)는 총 150만이 넘었다. 고객당 TS(Time Spent, 소비 시간)는 70분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암호화폐 커뮤니티, 김치프리미엄 시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서비스를 출시하자마자 김치프리미엄이 사라졌다."

김치프리미엄 시세 서비스에서 시작한 코박의 시세 조회 서비스는 현재 코인 1396개, 거래소 114개의 가격 및 거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암호화폐 버전 잼라이브 '코박 라이브'로 도약

코박 첫 서비스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강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김치프리미엄 시세 서비스는 묻혔지만, 블록체인·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을 높일 방법을 고민했다. 그때 '잼라이브(JAM Live)'라는 서비스가 눈에 띄었다. 잼라이브는 네이버의 계열사이자 스마트폰 카메라 앱 '스노우(SNOW)'로 유명한 스노우가 제공하는 온라인 퀴즈쇼이다. 정해진 시간에 사용자들이 참여해 퀴즈를 맞히면 상금을 준다. 현재 총 누적 상금만 47억원을 넘길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끈 스노우의 잼라이브를 본따 코박 라이브가 완성됐다. 출처=스노우
폭발적인 인기를 끈 스노우의 잼라이브를 본따 코박 라이브가 완성됐다. 출처=스노우

강 대표는 블록체인과 잼라이브를 결합하기로 했다. 정해진 시간마다 관련 퀴즈를 맞힌 사용자에게 암호화폐를 주는 '코박 라이브'였다. 블록체인을 알리기 위한 이벤트 성격으로 시작한 코박 라이브는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해 6월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루 3번 총 600만원 규모로 진행된 코박 라이브는 하루 참여자 수가 1만여 명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코박 라이브를 아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갔다. 빠른 속도로 업계에 소문이 퍼지면서 블록체인 프로젝트팀들이 홍보를 위해 코박 라이브 참여를 앞다퉈 요청했다.

"코박 라이브는 코박이라는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킬러 서비스가 됐다. 코박 라이브가 인기를 얻자, 블록체인 프로젝트팀들이 홍보를 위해서 우리를 찾아왔다. 코박 라이브는 블록체인 관련 퀴즈 서비스다 보니 홍보를 위한 프로젝트팀들은 자신들을 알릴 좋은 기회로 봤다. 우리도 코박 라이브로 첫 수익을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일석이조였다."

 

코박 라이브가 뜨니 지갑 서비스가 필요하더라

코박 라이브는 퀴즈를 맞히고, 암호화폐를 보상으로 받는 서비스다. 암호화폐를 받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암호화폐 지갑이다. 강 대표는 코박 라이브에 참여한 사용자들에게 코인을 나눠주기 위해 지갑 주소를 입력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대부분은 암호화폐 지갑이라는 게 뭔지 몰랐다.

"코박 라이브에서 상금으로 나가는 코인은 국내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결국 사용자는 보상을 받기 위해서 마이이더월릿과 같은 지갑 주소를 생성해서 입력해야 했다. 하지만 지갑 주소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지갑 생성 설명서까지 만들어서 배포했지만, 퀴즈 참여자 중 30%만이 제대로 된 지갑 주소를 입력했다. 코박 자체 지갑 서비스가 필요했다."

코박 라이브와 코박지갑. 출처=코박
코박 라이브와 코박지갑. 출처=코박

강 대표는 자체 지갑 개발에 착수했다. 코박에는 강 대표를 비롯해 노련한 개발자가 많았다. 불과 2주 만에 기본적인 코박 지갑이 완성됐다. 사용자들은 코박 라이브로 얻은 상금을 계정과 연계된 자체 지갑으로 직접 받을 수 있게 됐다.

코박에 자체 지갑도 생기자 이번에는 블록체인 프로젝트팀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토큰을 직접 팔아달라는 것이었다.

 

회원과 지갑이 모이니 토큰 세일이 제격

블록체인·암호화폐의 부상은 무엇보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암호화폐로 자금을 조달하는 ICO다.

ICO는 쉽게 말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치를 지닌 암호화폐를 받고 자체 토큰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프로젝트 팀 입장에서 ICO를 하려면 직접 암호화폐를 특정 지갑으로 받아 이를 자신들의 토큰으로 교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실명 인증(KYC)된 막대한 회원과 지갑 서비스가 있는 코박은 이들이 보기에 최적화된 ICO 플랫폼이었다.

"코박 라이브로 홍보 효과를 본 프로젝트 팀에서 토큰 세일을 대신 진행해 줄 수 있냐는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들이 보기에 코박 라이브라는 훌륭한 홍보 수단과 지갑 서비스가 있는 코박에서라면 손쉽게 토큰 세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투자를 전혀 받지 않은 우리 입장에선 비즈니스 모델(BM)이 시급했다. 그렇게 토큰 세일을 시작했는데, 대성공이었다."

코박은 2018년 10월 게임엑스코인(GXC)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5건의 토큰 세일을 진행했다. 토큰 세일 시작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코박이 진행한 토큰 세일은 매회 성공적인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코박의 매출과 순익도 많이 증가했다. 그 사이 코박은 공유오피스에서 나와 독립 사무실을 꾸몄다. 임직원도 20명이 넘었다. 불과 1년 만에 강 대표는 기대 이상의 성공을 일궜다. 코박의 성공과 달리 강 대표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은 그때 즈음이었다.

 

성공한 토큰 세일이 가져온 후폭풍

강 대표는 토큰 세일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차례 "토큰 세일을 진행한 프로젝트는 최소 1백만원 이상씩은 반드시 구입했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듣고보니 토큰 세일의 후폭풍인 토큰 가격 하락 때문이었다.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토큰 세일을 진행한 대부분의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했다. 이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전체적인 암호화폐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하지만 토큰 세일에 참여한 사용자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코박이 엉터리 프로젝트를 가져왔거나 이익을 위해 '설거지'를 하는 것이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코박에서 진행된 토큰 세일 목록. 출처=코박
코박에서 진행된 토큰 세일 목록. 출처=코박

강 대표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프로젝트 팀과 거래소들의 갑질이었다. 코박 토큰 세일 리스트에 올려만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본인들이 토큰 세일 물량을 완판 시킬 테니 중간에 코박은 수수료만 받고 신경 꺼도 된다는 제안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코박에서 짧은 시간에 '완판'됐다는 것을 홍보 수단으로 삼으려는 팀들도 넘쳐났다. 상장을 미끼로 코박의 토큰 세일을 연계하자는 거래소의 제안도 이어졌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팀과 거래소는 짧은 시간에 돈이 몰리자 주체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기술 개발은 뒷전이고 돈을 더 모으기 위해서 돈을 써댔다. 코박의 토큰 세일도 그러한 마케팅 수단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런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대신 우리가 검증한 믿을 수 있는 프로젝트만 토큰 세일 리스트에 올렸다. 우리가 판매한 토큰을 내가 최소 1백만원 씩 구입한 건 우리를 믿고 참여한 사용자에게 거짓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개발자로 '탈블'한다

이 대목에 이르러, 강 대표는 '탈블'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코박 서비스의 비전은 여전했지만, 돈과 요행을 노골적으로 바라는 업계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스캠(Scam)인 프로젝트가 코박에 와서 돈을 미끼로 코박 라이브와 토큰 세일에 참여 시켜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그는 더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고 했다. 두 손으로 일군 코박을 유지하려면 이들에게라도 손을 벌려야 한다는 생각도 그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내적 갈등이 심했다.

강 대표는 결국 차라리 코박 서비스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곳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판도라TV가 진행하는 무비블록에 코박을 넘긴 배경이다.

강민승 코박 대표. 출처=강민승
강민승 코박 대표. 출처=강민승

강 대표에 따르면, 코박 서비스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기업은 판도라TV만이 아니었다. 국내 프로젝트팀을 비롯해, 거래소, 해외 팀들도 적극적이었다. 그중에서도 현재의 코박 서비스를 유지하고 개선하는데 집중하겠다는 판도라TV가 강 대표의 눈에 들었다. 언제든지 코박에 대한 강 대표의 조언을 듣겠다는 판도라TV 관계자들의 제안에 확신할 수 있었다.

"IT버블 시기에는 트래픽이라도 보여주면서 미래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아무 쓸모도 없는 단어만 내세우면서 미래를 바꿀 기술이라고 한다. 블록체인만 들어가면 스캠도 아무도 모르는 휼륭한 무엇인가가 된다. 중학생 시절부터 개발을 해왔던 나로써는 이런 상황을 더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번아웃(BurnOut)이 온 나를 대신해 판도라TV는 코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것으로 확신했다."

그의 '탈블'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다시 블록체인 업계로 돌아올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답했다.

"시간을 되돌아보니 내가 늦게 이쪽으로 온 게 아니라 너무 빨리 왔다. 지난 2년 동안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허상에 모두가 눈과 귀가 먹었었다. 아직 코박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되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땐 개발자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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