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 뒤 암호화폐 업계, 위축되지만 성숙한다
특금법 개정으로 구조조정 불가피
제도권 밖엔 ‘아무나 거래소’ 현실
편입 뒤 사기·해킹 피해 개선 기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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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기자
김병철 기자 2020년 3월24일 07:00
지난 5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지난 5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암호화폐(가상자산) 자금세탁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내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충분한 거래량과 자본을 갖추지 못한 중소 거래소 다수가 퇴출되면서 국내 블록체인 산업의 위축은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무법지대였던 암호화폐 산업이 앞으로는 달라진다. 지난 5일 국회를 통과해 1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은 제도권 밖의 암호화폐를 처음으로 법률에 집어넣었다. 특금법은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암호화폐 거래소 등은 가상자산 사업자로 정의하고 사실상 인허가 성격의 신고제를 도입했다.

 신고를 위한 주요 자격 조건은 두가지다. 첫째, 거래소는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를 위해 은행과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실명가상계좌)’ 계약을 해야 한다. 현재 은행과 이 서비스 계약을 맺은 건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곳뿐이다. 정부가 2018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뒤 은행은 거래소에 신규 실명가상계좌를 발급하지 않았다.

 둘째 조건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으로, 기업이 주요 정보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지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이 인증하는 제도다. 고객의 돈을 다루는 거래소가 적정 수준의 보안 인프라를 갖추도록 강제한다는 취지다. 현재 아이에스엠에스 인증을 갖춘 거래소는 7곳뿐이다. 기존 사업자들은 늦어도 2021년 9월까지 두 조건을 갖추고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만 사업을 할 수 있다.

 제도권 편입 과정을 거치면서 암호화폐 산업은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신고 조건을 갖추지 못한 중소 거래소가 문을 닫고, 일부에선 ‘먹튀’가 일어나면서 단기적으로는 암호화폐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주식 투자자도 그렇지만, 한번 투자를 시작한 사람이 중단하는 건 쉽지 않다. 고위험 고수익 성향의 암호화폐 투자자 상당수는 다른 거래소로 이동해 투자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사실상 도박과 비슷한 취급을 받던 암호화폐 투자가 제도권으로 편입되면서 장기적으로는 산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암호화폐를 규정하는 법률이 없어 암호화폐 거래소는 아무런 책임과 의무가 없었고, 정부도 규제할 근거가 전혀 없었다. 누구나 거래소 웹사이트를 만든 뒤 흔히 ‘벌집계좌’라 부르는 일반 법인계좌로 투자금을 받아 거래소 사업을 할 수 있었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몇천만~몇억원에 기본 기능을 탑재한 암호화폐 거래소를 구축해주는 개발사가 인터넷에 널려 있다. 이렇다 보니 2017년 비트코인 상승장에 암호화폐 투자로 떼돈을 번 이들을 포함해, 게임아이템 거래소, 웹하드, 피시방 사업을 하던 이들도 상당수 암호화폐 거래소 사업에 뛰어들었다.

 제도권 밖에 있으니 공식 통계도 없었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국내 거래소를 약 100개로 추산한다. 다만 2018년 1월을 정점으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가격이 내려가고 투자자들이 줄면서, 의미 있는 수준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은 수십개로 꼽힌다. 국내 양대 거래소인 빗썸과 업비트의 지난해 매출도 1447억원, 1403억원으로 전년 대비 60~70% 하락했다.

 명확한 규제 없이 사업자의 양심에만 의존하다 보니 수백억~수천억원대 사기나 ‘먹튀’ 등에 따른 투자자 피해도 줄을 지었다. 많게는 하루 수천억원의 돈이 오가는 대형 거래소마저 보안이 취약해 해킹도 다수 발생했다.

 특금법 개정 뒤 시장이 정화되면, 다음 차례로 암호화폐업법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천창민 서울과기대 교수(경영학)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 중심으로 암호화폐 관련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국내에도 암호화폐 금융규제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먼저 앞서 나갈 이유는 없지만 자금세탁만 방지하는 특금법만으로 계속 규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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