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X의 공개 ‘으름장’, 안타깝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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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모 기자
박근모 기자 2020년 5월19일 06:00

 지난주 국내 암호화폐 업계는 클레이(Klay) 원화마켓 상장을 두고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포문은 암호화폐 거래소 지닥이 먼저 열었다. 지닥은 지난 11일 클레이를 14일부터 원화마켓에 상장한다고 밝혔다. 클레이의 원화마켓 상장은 처음이라 삽시간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라운드X에 전화를 걸어, 그동안 원화마켓에 상장하지 않았던 클레이를 왜 상장했는지 물었다. 어라? 그라운드X는 "사전 논의 또는 협의한 적 없다"고 했다. 지닥이 이른바 '도둑상장'을 했다는 주장이다.

 도둑상장을 따져보려면 암호화폐의 특수성, 곧 대부분의 암호화폐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 블록체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암호화폐가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유인 수단이 필요하다. 참여에 따른 보상이 바로 암호화폐다. 기업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거나, 굳이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는 폐쇄적인 환경을 선호할 때에는 굳이 암호화폐가 필요 없는 이유이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중앙의 조종자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만 존재 의미가 생긴다. 이런 환경에서 적절한 보상은 유용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퍼블릭 블록체인은 누구나 참여하도록 오픈소스 형태로 소스코드를 무료로 배포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그에 맞춰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들거나 기여하고 이용하며 생태계에 참여한 대가로 암호화폐를 받을 수 있다. 이게 바로 블록체인 생태계의 기본 구조다.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대가’ 등 단어에는 밑줄을 그어두겠다.

 다시 돌아가, 도둑상장은 이런 생태계 기본 구조에서 거래소가 암호화폐를 일방적으로 거래 목록에 추가했다는 주장이다. 암호화폐를 발행한 프로젝트 팀과는 아무런 상의가 없었다는 분노가 담긴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퍼블릭 블록체인은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았던가? 이 지점에서 이상과 현실은 불협화음을 내고 말았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이상만 본다면, 외부에서 어떤 간섭이나 압박이 있다 해도 참여자의 의지 만으로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댑(dapp)을 만들거나, 노드(node)를 운영하거나, 포크(fork)로 쪼개져 새로운 체인과 암호화폐를 만들거나, 기존 암호화폐로 거래를 하거나 모든 게 가능하다. 이게 바로 지닥의 논리다. 지닥은 상장 발표 직후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프로젝트 상장에 있어 프로젝트 자체의 허락을 구하거나 협의를 진행해야만 상장을 하는 구조는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라고 호소했다. 대기업(카카오) 프로젝트라고 해서 오픈소스와 퍼블릭 블록체인의 기능을 상실하면 안 된다는 강변이다. 충분히 이해된다. 이상적이다.

 하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당국의 불편한 시각이라는 엄연한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코인데스크코리아 취재 결과, 그라운드X는 원화마켓 상장을 추진했지만 금융 당국의 부정적 반응에 가로막혔다. 또 모회사인 카카오가 한국카카오은행, 카카오페이, 카카오증권 등을 통해 기존 금융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그라운드X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닥은 "카카오 코인 '클레이' 원화마켓 최초 상장"이라는 자극적 제목으로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그라운드X 입장에서는 움찔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도 이해가 된다. 현실적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후 그라운드X의 대응이다. 그라운드X는 지닥이 클레이를 상장하면, 지닥 운영사인 피어테크와 지난 2월 체결한 클레이튼 생태계 파트너십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한술 더 떠서 공식적으로 상장된 거래소가 아니면 진짜 클레이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가짜 클레이’ 설도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단칼에 날아가는 관계가 과연 파트너십인가. 모든 거래 내역이 기록되는 블록체인 기술에서 탄생한 암호화폐인데, 왜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고 대놓고 으름장인가. 클레이튼을 만든 그라운드X인데, 누구나 특정 클레이의 클레이튼 발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걸 그라운드X가 몰랐을 리 없다. 이런 험악한 풍경이 뒷배 든든한 힘있는 프로젝트의 '무언의 협박'으로 느껴진 건 나만의 오해일까.

 국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은, 전혀 놀랍지 않게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다. 생태계의 큰 축인 프로젝트 팀과 거래소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라운드X와 지닥 사이에 원만한 해결이 아쉬운 것은 그래서이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강대강 대립보다는, 새로운 산업을 일궈나가기 위한 상생 운용의 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러니 과장된 홍보나 일방적인 주장, 요구, 협박 등은 제발 좀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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