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정말 헤즈볼라의 자금줄일까
미국 제재로 돈줄 끊기자 암호화폐에 관심... 비트코인 사용량 많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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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gh Cuen
Leigh Cuen 2020년 6월19일 08:00
하산 나스랄라와 호메이니 등 중동 지도자들 사진이 시리아의 시장에 걸려있다. 출처=셔터스톡
하산 나스랄라와 호메이니 등 중동 지도자들 사진이 시리아의 시장에 걸려있다. 출처=셔터스톡

지금까지 중동에서 암호화폐가 테러 자금으로 활용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시리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서면서 테러 활동에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방안이 새로운 관심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미국 정부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상대로 추가 제재를 부과한 데 대해 시리아와 레바논을 “굶겨 죽이려는”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아사드 대통령과 나스랄라는 서로 동맹 관계에 있다. 이미 레바논 현지에서는 시중은행의 기능이 마비돼 달러와 같은 글로벌 자산의 가격이 암시장에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나스랄라는 “미국의 압박으로 레바논은행이 충분한 양의 달러를 시장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등 미국 정부가 테러단체로 규정한 중동의 정파 조직들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한 비트코인은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양보다도 훨씬 적다. 암호화폐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는 이슬람국가(ISIS) 등 테러단체들이 추진하는 대부분의 암호화폐 모금 활동 규모가 “1만달러 이하”라고 보고했다. 이는 팔레스타인의 민간 트레이더 한명이 일주일에 판매하는 암호화폐 규모보다도 적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가장 두드러지게 활동하는 단체 중 하나인 헤즈볼라는 암호화폐를 활용했을 때 가장 큰 혜택을 볼 수 있는 조직이다. (헤즈볼라는 미국을 비롯한 17개국에서 테러단체로 구분된다.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는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보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iddle East Institute)에서 외교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는 레바논계 미국인 란다 슬림은 헤즈볼라가 비트코인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봤다.

그는 현재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레바논에서 재정이나 군사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을 기반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정당은 헤즈볼라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정치는 물론, 경제생활도 서서히 장악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세력을 강화하고 있는 헤즈볼라지만, 이 과정에서 비트코인이 하는 역할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슬림은 헤즈볼라와 관련된 언론 보도나 성명에서 암호화폐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보지 못했다면서 이란에서 받는 지원 자금도 대부분이 현금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레바논의 한 비트코인 이용자 역시 헤즈볼라가 비트코인을 활용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이란에서는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일부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이 수차례 반복됐다. 다만 이들은 비트코인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경제 위기와 주식시장 급등이 함께 찾아온 이란이 테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사용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레바논의 비트코인 이용자는 나스랄라가 헤즈볼라의 활동에 관해 이야기할 때 (사이퍼펑크) 기술은 다루지 않는다고 수차례 언급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것이 “이스라엘의 기술력과 자체 기술력 사이의 엄청난 불균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헤즈볼라의 전체 활동 자금 중 이란의 지원금이 차지하는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다. 중동의 비트코인 전문가 가운데 극단주의 세력을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있는 이들도 비트코인이 테러 자금으로 악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 전문가들에 비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기우?

레바논의 비트코인 이용자는 헤즈볼라의 숙적인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보다 앞선 암호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헤즈볼라 지도부가 알고 있기도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이 미사일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비트코인으로 직접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즉 글로벌 자산에 대한 민간의 접근성을 제한하는 국제 제재와 상관없이 그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이라크의 한 비트코인 트레이더는 시리아 반대편에 있는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극단주의 세력이 암호화폐를 자금 확보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 그 자체는 “우리가 (비트코인에 대해)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라크의 트레이더는 극단주의 세력의 돈줄을 끊으려면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경제 상황 악화”에 우선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레바논의 비트코인 이용자도 이에 동의했다.

“헤즈볼라가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레바논에서 가장 불우한 국민을 헤즈볼라가 먹여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말 경제 위기 초반에 헤즈볼라가 레바논 내에서 지지자들에게 미국 달러를 지급했던 사례를 들면서 “사람들이 진정한 탈중앙화 방식으로 자금을 관리할 수 있다면, 달러로 충성심을 사는 헤즈볼라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라크의 비트코인 트레이더는 레바논이나 로자바 정착지(이라크와 터키, 시리아 등지에 분포) 등 국가의 구조가 취약해 영향력이 제한적인 지역에서 비트코인이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낙관적으로 평가했다. 여기서 또 한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레바논에는 미국의 제재가 아니더라도 기독교인과 수많은 이슬람 종파의 신도 등 차별적인 환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출처=Clker-Free-Vector-Images/Pixabay
출처=Clker-Free-Vector-Images/Pixabay

이라크의 트레이더는 중동의 화폐 역학과 ‘자유 무역’과 관련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고, 머지않아 상당한 개선이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밝혔다. 현재 중동에서는 민간인 수백명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비트코인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레바논 이용자는 “현재 월급을 받고 고용 상태에 있는 근로자 중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하면서 “그런 차원에서 암호화폐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상당히 유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금융범죄

2020년 6월 현재 중동 지역에서 가장 우려해야 하는 점은 테러자금으로 쓰이는 것보다 금융사기 등 금융범죄다.

친이스라엘 성향의 싱크탱크 워싱턴연구소(Washington Institute)에 따르면 헤즈볼라의 주요 자금 확보 수단은 자금세탁과 금융사기, 신용사기 등이다. 이와 같은 금융범죄는 경기 침체 시기에 증가하는데, 중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미국에서도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암호화폐나 레바논에만 해당하는 특수한 현상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일반적인 금융범죄 외에 중동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불법 행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란이 헤즈볼라에 비트코인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난해 이스라엘일보(Israel Hayom)가 내놓은 다소 극단적인 분석에 따르면, 헤즈볼라의 군사 예산은 10억달러 정도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이란 정부가 약 1억달러를 법정화폐로 지원한다.

특정 암호화폐 거래소가 이란 정부의 금융거래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정황은 아직 드러난 것이 없다. 레바논과 이란의 비트코인 시장은 비교적 작기 때문에 이란이 헤즈볼라의 테러 활동을 지원할 만한 규모의 암호화폐를 전송하면 양국의 데이터 사용량은 이론적으로 눈에 띄게 급증해야 한다. 지금까지 헤즈볼라가 비트코인을 사용해 왔다면, 레바논 현지나 국제사회 모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뜻이다.

헤즈볼라가 정파로 있으면서 독립적인 민병대로 활동하고 있는 레바논의 연간 예산은 27억8천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체이널리시스는 이 지역에서 암호화폐를 활용한 테러자금 조달 규모가 1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마스와 이슬람국가 기준, 헤즈볼라는 비교 가능한 추산치 없음). 그래서 체이널리시스는 이 지역 테러조직의 암호화폐 도입이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테러자금 조달을 위해 암호화폐를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효과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동 지역의 비트코인 사용과 관련해 공개된 데이터를 보더라도 상당 규모의 암호화폐가 헤즈볼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보다 신나치주의 세력이 비트코인을 활용할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돈의 흐름

한편 레바논의 금융 체계는 붕괴 직전의 상태에 와 있다.

지난해 자금난을 겪던 헤즈볼라가 레바논 은행들을 급습하겠다고 협박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후 헤즈볼라와 레바논 중앙은행 사이의 기 싸움이 이어졌고, 긴장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주 레바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트리폴리에서는 이와 연관되지 않은 별도의 시위에서 중앙은행 건물 중 하나가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레바논에서는 비트코인 이용이 더욱 폭넓게 확산됐다. 중동연구소의 슬림은 헤즈볼라 추종자의 대부분이 레바논 국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레바논 현지의 핀테크 동향을 따르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라크와 레바논의 비트코인 전문가들은 현지에서 암호화폐가 테러자금 조달 활동에 동원되지 않는 것을 규제의 성과로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아직은 극단주의 세력이 비트코인을 유용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앞으로 헤즈볼라가 암호화폐에서 특별한 효용을 발견하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아울러 레바논의 전력 인프라는 경쟁력 있는 비트코인 채굴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고, 국민들 간의 디지털 접근성 차이로 유동성에도 제약이 있다. 코로나 사태로 병원과 학교, 농촌의 자금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전체 시스템을 운용하는 헤즈볼라가 느끼는 경제적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슬림은 미국의 제재로 헤즈볼라와 같은 조직에 대한 전반적인 재정 지원이 줄어든 것은 아니고, 그 재정을 관리하고 동원하는 방식이 다각화됐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여러가지 경제적 불확실성이 한꺼번에 겹친 완벽한 폭풍 같은 지금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또 어쩌면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레바논의 비트코인 시장은 유기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성장은 기관이나 극단주의 세력이 아닌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

“레바논 정부가 비트코인에 관심을 두고 관리할 수 있을 만한 기술적 자원을 갖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란이 헤즈볼라와 같은 매개체나 동맹을 통한 역내 세력 확장을 위해 앞으로 몇 년 동안 쓸 돈을 얼마나 책정해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금액이 더 커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돈이 필요한 곳이 더 많아졌을 뿐이다.”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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