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트래블룰, 화이트리스트 방안으로 풀자
태평양·NH농협·헥슬란트 '특금법 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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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기자
김동환 기자 2020년 7월2일 08:00

암호화폐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VASP)들이 암호화폐의 송금인과 수취인을 모두 파악하도록 요구하는 국제자금세탁기구(FATF)의 자금이동규칙(travel rule) 준수 요구와 관련해, 실제 소유주 신원 확인이 완료된 지갑끼리의 전송만 허용하는 화이트리스트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자금세탁 방지 차원에서 규제당국이 국내 거래소 계좌의 암호화폐가 국외 전송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윤주호 변호사는 1일 열린 '특금법(특정금융정보법) 컨퍼런스' 행사에서, "지금의 암호화폐(가상자산) 거래소는 거래소 지갑에서 암호화폐를 보내면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는 구조"라며 "기존 금융권에서는 수십년 전 이 문제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을 만들어서 해결했지만, 지금 거래소들이 그렇게 해결하려면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여행규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 정도입니다. 하나는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서 국내 거래소 지갑끼리만 암호화폐 주고받게 하고 국외 거래소 지갑으로는 암호화폐 이동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 다른 하나는 그냥 보내는 사람에게 받는 사람 신원을 입력하게 하고 별도의 확인 없이 넘어가는 방식입니다."

화이트리스트 방식이란 소유자 신원이 확인된암호화폐 지갑끼리만 암호화폐 전송을 허용하는 것이다. 만약 규제당국이 특금법 시행령을 통해 이 방식을 도입한다면 이론적으로 여행규칙 준수에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전반적인 자금세탁 가능성 역시 상당히 줄어든다. 그러나 이미 자유로운 전자지갑 사용에 익숙해진 암호화폐 사용자들에게 상당한 반발을 살 수 있다.

김성현 NH농협 디지털전략부 과장도 같은 행사 주제 발표에서 은행의 커스터디(수탁) 서비스를 이용한 화이트리스트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은행이 커스터디와 거래소 핫월렛을 직결해 자산을 기존보다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자금세탁 위험성도 줄이는 방식이다. 거래소 지갑에서 암호화폐를 주고받을 수 있는 외부지갑 화이트리스트를 만들고 암호화폐 거래소와 은행이 함께 관리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시중 은행 계좌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해지는 셈이다.

김성현 과장은 회사 차원의 입장으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며 "예시는 어디까지나 예시일 뿐"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화이트리스트 방식의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국내 투자자들의 암호화폐가 비트멕스(BitMex) 마진선물처럼 위험한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 서비스들로 빠져나가는 게 통제가 안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어느 정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컨퍼런스 패널로 참석한 거래소 관계자와 블록체인 프로젝트 투자자 등은 트래블룰을 당장 내년부터 이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의 강명구 부대표는 "일단 현실적인 것부터 하면 좋을 것 같다. 요건을 맞춘 거래소들끼리 송금할때 쌓이는 정보들을 공유하는 것부터 하고, 차츰차츰 수준을 높여가는 게 방법"이라고 말했다.  

1일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에서 열린 '특금법 컨퍼런스'에서 김서준 해시드(Hashed)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코리아
1일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에서 열린 '특금법 컨퍼런스'에서 김서준 해시드(Hashed)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김병철/코인데스크코리아

블록체인 엑셀러레이터 해시드(Hashed)의 김서준 대표는 "정말 먼 미래에는 모를까, 당장은 (여행규칙 관련 규제를 준수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암호화폐가 거래소 안에만 있는게 아니다"라며 "블록체인 게임 안의 재화가 토큰으로 존재하는 경우나, 채굴해서 얻은 토큰 같은 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지난 6월10일 특금법 공동대응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축한 법무법인 태평양과 NH농협, 블록체인 기술 기업 헥슬란트 공동주최로 열렸다. 이르면 올 8월 공개될 특금법 시행령의 내용을 미리 짚어보고 업계에서 규제에 반영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토론하는 자리였다.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를 주요 취지로 삼고있는 법이다. 이 법에 의하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늦어도 법이 시행되는 내년 3월부터는 은행 수준의 자금세탁 방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아직 시행령에 들어갈 구체적인 규제들이 무엇인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FATF가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며 회원국들에게 암호화폐 분야 도입 규제로 권고했던 사항들은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그중 거래소들이 가장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규제는 자금이동 규칙이다. 거래소들은 이를 위해 자사 플랫폼을 통해 암호화폐 이동이 일어날 경우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정보를 모두 수집·보관해야 한다. 감독기관이 원할 때, 가상자산 사업자는 암호화폐가 어디서 어디로 흘러갔는지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이 규제의 내용이다. 그러나 익명이 기본인 암호화폐 지갑에서 수신자를 어떻게 식별해내느냐를 놓고 전세계적으로 광범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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