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다짐: 내년엔 더 많은 여성에게 마이크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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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기자
정인선 기자 2020년 9월29일 06:00
출처=@wocintechchat/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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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명과 5명. 이달 초 코인데스크코리아와 한국블록체인협회가 공동주최한 디지털자산 박람회(DAXPO) 2020의 전체 출연자의 수와 이 가운데 여성의 수다. 10퍼센트가 채 안 된다. 그마저도 3명은 화상으로 연결한 해외 인사, 1명은 진행을 맡은 기자여서, 이틀 동안 진행된 녹화 현장에 방문한 여성은 단 1명 뿐이었다.

부끄럽게도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이 사실을 첫날 녹화가 다 끝나고서야 인지했다. 내 자신도 둘쨋날 입을 옷을 고민하다 문득 첫날 출연한 패널 대부분이 여름용 남색 정장 재킷을 입고왔다는 게 떠올랐다. 그마저도 녹화장 배경이 어두운 색이 아니었다면 눈치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스튜디오 녹화에 출연한 유일한 여성 패널. DAXPO2020은 그에게 결례를 범했다. 그가 출연한 세션의 녹화는 이른 아침에 이뤄졌는데, 남성 좌장은 패널 가운데 그를 “오늘의 홍일점”이라고 소개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고견을 청해 듣는 자리에서 해당 패널의 전문성과 전혀 무관한 성별을 부각하는 발언은 불필요하고 부적절했다. 당사자가 겉으로 불쾌한 내색을 했냐고?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불필요·부적절했다. 녹화 현장에서 이 발언에 고개를 갸웃거린 동료는 녹화를 중단시키지 않았고, 나는 이 발언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결국은 잘못이었다.

'홍일점' 발언은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패널이 문자 그대로 ‘홍일점’이 아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10%를 채우지 못한 DAXPO2020의 성별 다양성은 ‘최하점’이었음을 시인한다.

지난 5월 온라인 컨퍼런스 형태로 진행된 세계 최대의 블록체인·암호화폐 이벤트 ‘컨센서스’ 아시아 프로그램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그때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에서 일하는, 특히 조직을 대표해 대외적인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는 팀장급 이상의 여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활발하게 활동하던 여성 인사들 가운데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를 지나며 ‘탈블’해 다른 산업 분야로 자리를 옮긴 이들도 적지 않아 더욱 곤란했다. 그럼에도 컨센서스 패널 섭외 상황을 점검하는 거의 모든 회의마다 ‘여성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논의 대상에 올린 결과, 만족스러울 만큼은 아니지만 무대가 모두 단일한 성별로 채워지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9월의 DAXPO2020 준비 상황을 그때의 컨센서스에 비교한다면, 여러 차이가 있었다. 애초 오프라인 개최를 준비하던 행사가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온라인으로 전환돼 일손이 달렸다는 점, 주요 섭외 대상이었던 정부 및 공공기관이 대외 발언에 소극적인 탓에 어렵사리 설득해야 했고 그 탓에 출연자 선택의 폭은 좁았다는 점 등. 그러나 무엇보다 누구도 출연자의 성별 다양성을 사전에 미처 신경쓰지 못했다는 점이 위와 같은 결과를 불러온 가장 큰 차이였다.

이것이 비단 DAXPO 만의 문제겠는가. 글로벌 비영리 단체 DIB(Diversity in Blockchain)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주요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관련 컨퍼런스의 키노트 스피커 113명 중 여성은 20명으로, 약 17퍼센트에 불과했다. 키노트 스피커가 아니라 토론의 패널로 그 조사 대상을 넓히면 여성 비율은 더욱 낮을 것이다.

마이클 케이시 코인데스크 콘텐츠 총괄은 지난 6월 ‘암호화폐가 표준 되려면 다양성 갖춰야’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지난 수년간 컴퓨터 엔지니어링 분야의 다양성 부재로 백인 남성들은 모든 소프트웨어 설계에서 유독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알고리듬 의존성이 높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업계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편향된 알고리듬을 누가 좋아할까.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컨센서스 2019에서 멜라니 커틀런 액센추어 블록체인 서비스 부문 디렉터는 “기업에게 다양성은 단순히 공평함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성을 위해 필요하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가 더욱 다양한 이용자의 경험을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양성은 좋은 선택지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앞으로 코인데스크코리아가 마련하는 행사, 그리고 발행하는 기사의 성별 다양성을 높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해 봐도 답은 똑같다. 이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비중이 유의미하게 늘면 된다. 그러려면 기업들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그에 앞서 이미 존재하지만 세상에 드러날 기회가 가닿지 않던 ‘위민 인 블록체인’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역할을 코인데스크코리아와 같은 매체들이 적극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부디 DAXPO2021에선 더 많은 여성이 마이크 앞에 앉게 되길.

들추기 부끄러운 뼈아픈 반성이자, 동시에 굳은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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