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사실’의 시대와 블록체인
[칼럼]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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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근
송인근 2021년 1월19일 10:11
도널드 트럼프 45대 미국 대통령. 출처=백악관 제공
도널드 트럼프 45대 미국 대통령. 출처=백악관 제공

4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정확히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느냐를 두고 논란이 인 1월 22일의 일이었다.

2017년, 미국 44대 대통령 취임식을 보러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 온 인파를 찍은 사진을 보면, 전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 때보다 사람들이 훨씬 덜 모인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백악관은 계속해서 역대 최대 인파가 모였다고 거짓말을 했고, 여기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트럼프 캠페인의 선대본부장 출신으로 백악관 선임고문이던 켈리안 콘웨이는 NBC 시사 프로 “밋 더 프레스(Meet The Press)”와의 인터뷰에서 색다른 답을 내놓았다.

“우리가 이야기한 건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에요.”

다른 의견이나 대안적 주장이 아니다. 단 하나일 수밖에 없는 사실에도 대안을 낼 수 있다는, 참신한 궤변이었다. 돌이켜보면 과학을 부정하고 진실을 일관되게 외면한 트럼프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의 단초가 이날 인터뷰에서도 보인다.

임기 내내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 실패를 대안적 사실로 덮으려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끔찍한 대응 실패로 미국에선 지금도 하루에 3천 명 넘는 사람이 코로나19로 숨지고 있다. 전체 사망자도 40만 명에 육박하지만, 트럼프는 줄기차게 미국이 잘 대응하고 있다는 데이터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들이밀었다. 참모들이 만들어준 대안적 사실이었다.

미국 사람들이 마스크만 잘 썼다면 훨씬 피해가 덜했을 텐데, 트럼프는 본인이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백악관에 돌아오는 날 마스크를 벗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마스크의 효용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대안적 사실이었다.

트럼프를 믿는 이들은 대안적 사실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미국에는 더 많았다. 그 결과 11월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변화를 선택했다. 28년 만에 연임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이 됐지만, 트럼프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엔 선거가 조작됐다는 대안적 사실을 들고나왔다. 그러다 선거인단의 투표 결과를 의회가 마지막으로 확정하는 지난 6일 끝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폭력을 선동하는 연설을 했고, 폭도로 변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 민주주의의 심장부를 짓밟았다.

지난여름에 어거(Augur)가 돌아왔다는 칼럼을 쓰면서 대선에 관한 질문들을 살펴봤을 때 ‘선거에서 누가 이길까?’ 말고도 ‘1월 20일 정오에 취임 선서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와 같이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 또한 대안적 사실이 파고들 여지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끝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고, 폭력을 선동한 혐의로 하원에서 또 탄핵당했다. 트럼프가 임기 중에 두 번이나 탄핵당한 첫 대통령이라는 점은 대안적 사실이 아니라 그냥 사실이다.

트럼프는 쫓겨나듯 백악관을 떠날 테지만, 트럼프가 상징하는 시대 정신과도 같은 대안적 사실, 과학의 정치화로 요약할 수 있는 트럼프주의(Trumpism)는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장 공화당 내에서도 지난 6일의 폭력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과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오히려 워싱턴의 기득권 세력을 통칭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가 또다시 결탁해 트럼프 대통령을 축출하려고 좌파 언론은 폭력 사태를 부풀려 보도하고, 의회가 기다렸다는 듯이 또 트럼프를 탄핵했다는 주장이 공화당 내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의사당이 폭도들에게 짓밟히는 모습을 보고 더는 안 되겠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두거나 공개적으로 비판한 공화당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거의 예외 없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공화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라 할 수 있는 공화당 전당대회(RNC)의 주요 보직 168개 가운데 91개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중에 새로 교체됐다. 이들은 거의 다 트럼프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대안적 사실만 굳게 믿는 이들이다.

물러나는 트럼프에게 트위터라는 효과적인 확성기는 없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어떻게든 트럼프 정신을 이어갈 것이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당분간은 트럼프 시대가 이어질 것이다.

밋 더 프레스를 진행하는 NBC의 척 토드 기자는 4년 전 콘웨이의 궤변에 곧바로 맞받아쳤다.

“대안적 사실이라뇨, 그런 말은 없어요. 그냥 거짓말일 뿐이잖아요.”

개선할 과제가 적지 않은 프로젝트지만, 앞에서 예로 든 어거에선 내기의 결과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대안적 사실을 내세우려면 평판 토큰(REP)을 잃게 되고, 사실에 밀려 퇴출당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될 세상에서 블록체인은 사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효과적인 도구로 쓰일 것이다. 어쩌면 블록체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 일을 통해 사회적 공기로 쓰임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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