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빗이 쏘아올린 작은 공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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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현
함지현 2021년 2월1일 17:26
국세청.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국세청.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왜 플라이빗(한국디지털거래소)이었을까? 플라이빗 세무조사 보도로 시작된 의구심은 이슈를 추적하면서 커져만 갔다. 빗썸, 한빗코, 지닥도 에이치닥(HDAC)을 상장했다. 그럼에도 플라이빗만 에이치닥 발행사와 묶여 세무조사를 받았다.

답은 지분 구조에 있었다. 한국디지털거래소는 에이치닥테크놀로지의 관계사 HN그룹(현대BS&C)과 HDAC의 초기 개발을 맡은 더블체인이 공동 설립한 회사였다. 암호화폐 발행 주체가 거래소를 세워 자체 암호화폐를 셀프 상장시킨 것이다.

한국디지털거래소는 덱스코(현 플라이빗)를 출범시킨 후 HDAC을 가장 먼저 상장시키겠다고 회원들에게 약속했다. 에이치닥테크놀로지 측도 첫 상장 거래소가 덱스코가 될 것으로 발표했다. HDAC 상장을 위해 덱스코를 설립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 있는 대목이다.

우연이 겹친 것일까? 플라이빗이 HDAC을 상장폐지한 시점은 김석진 신임 대표를 선임할 즈음이다. HN그룹과 더블체인 관계자들이 경영진에서 교체된 이후이기도 하다.

덱스코의 첫 번째 상장 암호화폐로 선정될 만큼 HDAC이 유망 전도했는지 여부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당시 HDAC은 사전 채굴 논란, 채굴 풀 해킹 등으로 시끄러웠다. 심사에 엄격한 거래소라면 상장 계획을 접을 수도 있을 악재였다.

안타깝게도 HDAC의 성장 잠재력도 높지 않았다. 2018년 8월 홍콩 거래소 비박스에 약 1118원에 상장된 HDAC의 현재 시세는 16원에 불과하다. 상장한 지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가격이 100분의 1 가까이로 줄어든 것이다. 메인넷 전환 계획도 당초 계획보다 지연됐다. 지난해 개발팀장의 퇴사와 지갑 무단 출금 등의 이슈 등이 발생한 탓이다.

셀프 상장이 뭐 그리 문제냐고 물을 수 있다. 그간 국내에서도 거래소가 자체 토큰을 발행하는 경우가 있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거래소 발행 토큰과는 다르다. 통상 거래소들은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할 때 그 사실을 고지하기 때문이다. 반면, 덱스코는 HDAC과의 관계를 투자자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몇 년 전 HDAC을 매수했던 투자자는 "HDAC을 ‘현대 코인’으로만 알았으며 덱스코와 관계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거래소라면 스캠(사기)을 걸러내는 관문이 되어야 한다. 상장에 엄격한 거래소들은 심사위원회까지 두는 이유다. 만약 거래소가 암호화폐 발행업체와 긴밀한 관계가 된다면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투자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거래소 셀프 상장을 ‘법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지’라며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이를 막을 법적인 수단은 없다. 그러나 분명 바람직하지는 않다. 모럴 해저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2018년 코인레일의 '레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인레일은 회삿돈을 들이지 않고 피해 보상을 하기 위해 프로젝트 성장성뿐 아니라 매매 가치조차 없는 암호화폐를 발행했다. 결국, 수요 대비 공급 과잉으로 레일은 거래가 재개된 지 반나절 만에 3분의 1토막이 났다.

제대로 된 관문 역할을 못하는 거래소가 늘어날수록 업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 산업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까진 거래소들은 모두 '운명공동체'다. 거래소 한 곳의 악재가 다른 곳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다. HDAC ICO로 연결된 플라이빗과 HN그룹, 에이치닥테크놀로지에 대한 공동 세무조사가 앞으로 업계에 미칠 영향이 우려스럽다. 

"아, 그 '현대 코인'?" 취재에 응한 사람들 모두 기억을 더듬은 후에야 HDAC을 떠올렸다. 화려한 ICO로 시장에 데뷔한 지 3년 만에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것이다. 프로젝트 내용은 잊힌 지 오래고 ‘현대’라는 이름만이 남았다. 그 이름조차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쓰지 못하게 제동을 걸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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