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젠서, 퀸비, 코넌, 애니버스… 사기·다단계에 활용돼
토큰박스 먹튀, XSR 피해액 약 130억원
다단계 조직, 빗썸 내 같은 지갑 여러번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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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현
함지현 2021년 2월25일 15:06
다단계 기본 구조. 출처=픽사베이
다단계 기본 구조. 출처=픽사베이

빗썸에 상장된 암호화폐를 활용한 사기, 유사수신, 불법 다단계가 확인됐다.

세가지 범죄가 모두 나타난 XSR(젠서) 먹튀 사건은 피해액이 1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QBZ(퀸비), CON(코넌), ANV(애니버스)는 유사수신, 다단계에 활용된 정황이 온체인 데이터로 드러났다.

현행법상 유사수신은 금융기관이 아닌 업체가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면서 원금과 초과 수익을 약속하는 행위를 말한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높은 수익률 보장에 혹해 돈을 넣었다가, 업체가 잠적하면서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이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것도 법망을 피하기 위해서다. 원화가 아닌 암호화폐를 모금하고 다른 암호화폐로 보상하면 최대 징역 5년의 유사수신행위 처벌을 피할 수도 있다. 관련법이 아직 암호화폐를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하고자, 여러 중간 지갑으로 암호화폐를 모으고 이를 총책 지갑으로 빼돌리는 피라미드 형태를 구성했다. 소위 '꼬리 끊기' 수법을 쓰기 위해서다.

결국 블록체인상의 온체인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이들의 범죄 행태를 이해하기 어렵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이더스캔과 블록시 등을 통해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헥슬란트 리서치센터의 도움을 받아 온체인 데이터를 분석했다.  

토큰박스는 2020년 XSR 예치 상품을 선보이며 'ETH를 입금하면 이자를 얹어 XSR로 제공하겠다'고 투자자를 유인했다. 출처=토큰박스 페이스북 캡처
토큰박스는 2020년 XSR 예치 상품을 선보이며 'ETH를 입금하면 이자를 얹어 XSR로 제공하겠다'고 투자자를 유인했다. 출처=토큰박스 페이스북 캡처

 

토큰박스, XSR 사기·유사수신·다단계

XSR(젠서)를 활용한 사기, 유사수신, 다단계는 2020년 암호화폐 투자 사이트 '토큰박스'에서 발생했다. 토큰박스 운영진은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금을 모은 후, 매일 이자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잠적했다. 토큰박스 웹사이트도 함께 사라졌다.

이아무개 토큰박스 대표는 2020년 4월21일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 투자자 모집을 시작했다. 같은 이름으로 케이만 군도에 설립된 토큰박스와는 관련이 없다.

코인데스크코리아가 입수한 토큰박스 사업 기획서에 따르면, 투자자가 새로운 투자자를 소개하면 보상을 지급하고 유치한 투자자 수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전형적인 다단계 방식을 택했다. 토큰박스는 '파트너 프로그램'이라는 명칭으로 다단계 조직을 이끌었다. 끌어들인 투자자 수에 따라 최대 20등급까지 두었다.

토큰박스 사업 기획서에 실린 다단계 회원 정책. 출처=제보자 제공
토큰박스 사업 기획서에 실린 다단계 회원 정책. 출처=제보자 제공

두명 이상을 직접 데려온 사람에게는 그룹 보너스로 하루 최대 5000XSRP(젠서 포인트)를 지급했다. XSRP는 토큰박스가 XSR를 토대로 만든 포인트로, 토큰박스 웹사이트에서만 사용 가능했다. 참여자들이 출금을 요청하면 이를 XSR로 전환해서 지급했다.

한 토큰박스 투자자는 "토큰박스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추천인 코드를 받아야만 했다"며 "가입을 권유한 지인이 추천인에 자기 윗 단계의 사람을 기입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유사수신도 발생했다. 최소 0.38ETH(이더리움)에서 최대 114ETH를 80~100일 동안 예치하면 매일 0.1~0.5%의 XSRP를 지급하는 상품을 판매했다. 블록체인상 '스테이킹' 상품이라고 홍보했지만 실상은 토큰박스가 자체 지갑에 자금을 보관하고, 직접 이자를 주는 구조였다. 현행법상 금융기관이 판매하는 예·적금 이외의 상품에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유사수신에 해당한다.

온체인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토큰박스 다단계 흐름도.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제작
온체인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토큰박스 다단계 흐름도.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제작

온체인 데이터 흐름을 보면, 토큰박스는 우선 투자자들의 ETH를 법인 전자지갑(0x71…)으로 모았다. 이 지갑은 하위 투자자로부터 ETH를 받고, 예치 보상으로 XSR를 지급하는 중간 기착점 역할을 했다. 이렇게 2020년 6월부터 10월31일까지 토큰박스 법인 전자지갑에 모인 ETH는 총 3만7071개에 달한다.

초기에 토큰박스는 투자자에게 이자로 XSR를 꼬박꼬박 지급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9월즈음이다. XSR 지급이 지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 투자자는 "9월3일부터 보상이 지연되더니, 10월에는 토큰박스 홈페이지까지 없어졌다"며 "상품에 가입하면서 약속받았던 원금과 이자 중 50%밖에 회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온체인 데이터를 살펴보니 이는 선택적인 출금 지연이었다. 토큰박스 법인 전자지갑은 2020년 9월 3일부터 투자자 지갑으로의 XSR 출금을 중단한 반면, 0x26과 0x19, 0x320xab 등으로는 2020년 12월20일까지 꾸준히 ETH를 송금했다. 이들 지갑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개설한 중간 지갑으로 추정된다.

가장 많은 ETH가 유입된 곳은 0x30과 0x26이다. 이 둘을 핵심 중간책으로 가늠할 수 있다. 2020년 6~12월까지 6개월 동안 0x71은 0x30에 3527ETH, 0x26에 2550ETH를 각각 전송했다. 총 6077ETH로, 현재(25일) 시세로 112억원어치다.

온체인 자금 흐름을 쫓다 보니, 다단계 총책으로 추정되는 지갑(0x9aa..)도 포착됐다. 이 지갑은 빗썸 ETH 지갑(0x9712..)에서 5718ETH, 토큰박스 법인 지갑(0x71…)에서 700ETH, 별도 바이낸스 지갑에서 515ETH 등 총 6983.17ETH(25일 시세 약 128억원)를 모았다.

물론 빗썸 ETH 지갑(0x9712..)으로 입금된 금액 전체를 토큰박스 관련 다단계 피해액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중간책(0x300x26) 지갑에 총 6077ETH가 있던 것을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최소 111억원에서 최대 128억원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제닉스 스튜디오 "다단계와 무관"

암호화폐 젠서 측은 이 유사수신, 다단계와 관련이 있을까. 일부 투자자들은 토큰박스가 XSR를 기반으로 XSRP를 발행했던 만큼, 젠서 발행사(제닉스 스튜디오)도 여기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온체인 데이터에 남은 거래 내역도 의혹 증폭에 한 몫을 했다. 2020년 8월23일 제닉스 스튜디오 지갑에서 토큰박스 법인 전자지갑(0x71…)으로 5ETH를 보낸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제닉스 스튜디오 측은 다단계 연루 의혹을 부인했다. 자신들은 시스템통합(SI) 기업으로 토큰박스 플랫폼만 외주로 개발했다는 입장이다. 이일희 제닉스 스튜디오 대표는 "토큰박스 대표가 제닉스 스튜디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바람에, 지난해부터 피해자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토큰박스 이아무개 대표가  E-cash(이캐시) 기반으로 플랫폼을 운영하다가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에게 개발 대행과 후속 개발을 다 맡겼고 XSR도 대량매매(블록딜)로 구매했다.

그 XSR을 전산에서 XSRP로 바꿔 지급한 것이다. 실체가 없는 이캐시 기반으로 받은 자금을 돌려막기 위해 거래소에 실제 상장된 암호화폐(XSR)를 노린 것 같다."(이일희 제닉스 스튜디오 대표)

이일희 대표는 "우리가 5ETH를 송금한 것은 토큰박스 측에서 암호화폐 입출금이 안 된다면서 테스트를 위해 본인 지갑(0x9aa..)으로 이더리움을 보낼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0x9aa는 토큰박스 다단계에서 총책 구실을 한 전자지갑이다.

토큰박스 이 대표가 암호화폐 입금을 할 줄 모르니, 대신 처리하라고 해서 보냈을 뿐인데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주장이다. 그는 "나중에 이 대표가 우리가 토큰박스 상품을 판매한 것처럼 몰아갔다"며 "이 대표가 물류 분야에서 다단계를 한 전력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토큰박스 이 대표에게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ANV, CON, QBZ… 다단계로 연결된 사이?

XSR(젠서) 이외에 ANV(애니버스), CON(코넌), QBZ(퀸비) 등도 다단계에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온체인 흐름이 포착됐다. 수법은 비슷하다. 중간 지갑을 통해 하위 가입자들에게 모금한 돈을 특정 전자지갑으로 보내고 종적을 감추는 방식이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는 '1200만원 넣으면 CON과 QBZ 1600만원 어치를 150일 동안 준다고 했으나 지급하지 않고 잠적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다단계에 활용한 지갑이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이다.

빗썸 내 모금 지갑(0x27…)은 ANV뿐 아니라 CON과 QBZ도 같이 보관했다. CON과 QBZ 다단계 조직의 총괄 지갑(0xf7…)과 보상 지갑(0xad, 0x20, 0xe9)이 겹쳤다.

CON 가격이 급등한 2020년 8월29일 이후 9월4일부터 총괄 지갑(0xf7…)에서 CON이 출금되기 시작했다. 같은 지갑에서 QBZ 가격이 상승하던 10월22일부터 QBZ도 출금됐다. 총괄 지갑은 해당 토큰은 보상 지갑(0xad, 0x20, 0xe9)으로 보냈고, 보상 지갑은 다단계 참여자로 추측되는 지갑들로 CON과 QBZ를 이자로 전송했다.

보상 지갑에서의 출금은 모두 2020년 11월20일에 멈췄다. 총괄 지갑과 빗썸 내 모금 지갑에서의 CON, QBZ 출금이 중단된 것도 같은 시점이다. CON과 QBZ 다단계 조직이 이날을 기점으로 손을 턴 것으로 추정된다. 그 대신 2021년 1월21일 빗썸 내 모금 지갑(0x27…)으로 ANV가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CON과 QBZ 다단계는 빗썸 내 모금 지갑, 총괄 지갑, 보상 지갑 총 5개를 공유했다. 그리고 CON·QBZ 다단계 및 ANV 다단계는 빗썸 내 모금 지갑을 같이 썼다. 지금으로는 빗썸만이 이 지갑 소유자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ANV 보상지갑(0x61...)은 지금도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투자자 사이에서는 ANV를 대표하는 캐릭터 '라바' 명칭을 사용한 상담원이 '빗썸에서 애니버스를 직접 구매해서 재단 지갑 주소로 보내면 전산링크를 공유하겠다'고 상담한 카카오톡 캡처본이 돌기도 했다.

ANV 다단계 추정 상담원 카카오톡. 출처=제보자 제공
ANV 다단계 추정 상담원 카카오톡. 출처=제보자 제공

<표> ANV·QBZ·CON 다단계 주소 공통점

  모금 지갑(빗썸) 총괄 지갑 보상 지갑
ANV 0x27... 중간(0xf8)
하위(0x9e)
0x61
CON 0x27... 0xf7 0xad, 0x20, 0xe9f
QBZ 0x27... 0xf7 0xad, 0x20, 0xe9f

이중 특히 ANV는 이달 초 다단계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거래소) BTC 마켓에 상장된 개인투자자 대상 물량을 사들여, 가격을 높인 후 원화시장에 상장되기 전 설거지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 영상이 돌면서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설거지'란 코인 시세를 조종하는 세력들이 대량의 코인을 일반인에게 높은 가격에 떠넘기고 수익을 남기는 과정을 일컫는 은어다. 실제로 ANV는 빗썸 원화 시장에서 거래가 시작된 2월1일 4만2000원까지 급등한 후, 8700원까지 급락했다. 누군가 설거지를 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가격 흐름은 영상 내용처럼 된 셈이다.

논란이 지속되자 애니버스 재단 측은 암호화폐 공시 사이트인 쟁글에 공시를 올려 다단계 의혹을 부인하고 "3차 바이백을 진행해 지속 매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단은 오히려 다단계 세력이 일으킨 가격 급락을 방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코넌 재단 측도 다단계 연루 의혹에 선을 그었다. 코넌 관계자는 "다단계 업체와 빗썸 수금 계정(0x27…)은 코넌과 아무 연관이 없다"며 "본사에 다단계 업체들이 찾아온 적은 있지만, 그 어떤 제안도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정보 공유 카카오톡 그룹방에 올라온 애니버스 관련 영상. 출처=제보자 제공
암호화폐 정보 공유 카카오톡 그룹방에 올라온 애니버스 관련 영상. 출처=제보자 제공

네 암호화폐가 국내 거래소 중 빗썸에만 상장됐다는 것도 눈에 띈다. 대형 거래소에 상장된 암호화폐를 활용하면 비교적 투자자 신뢰를 얻기 쉬워, 이를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빗썸 관계자는 "재단 자체의 불법 행위라면 자료를 요청할 수 있지만, 상장된 암호화폐가 다단계에 연루됐다는 의혹만으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상장심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이상거래탐지(FDS) 솔루션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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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헌터 2021-02-25 21:59:16
혜성이 같은 놈들이 또 있었군

중립 2021-02-25 15:26:05
더마이더스골드가 젤심한데 그건 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