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가 만든 금융규제, 암호화폐도 마찬가지
금융규제의 역사는 사기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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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k McDonell
Rick McDonell 2021년 4월1일 18:33
출처=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페이스북
출처=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페이스북

필자 릭 맥도넬은 현 자금세탁방지협회(ACAMS) 상무이사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사무국장을 지냈다. 그 이전에는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서 자금세탁방지 글로벌 프로그램을 총괄했다.

'안전 기준은 피로 쓰여진다'는 말이 있다. 다소 끔찍하긴 하지만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제도는 안전과 관련된 규칙을 미리 만들지 않고 사고가 난 후 그에 대응해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오늘의 건설업자들과 소비자들이 예전보다 안전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실수에서 배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 규제도 마찬가지다. 안전 기준과 같은 맥락에서 '금융 규제는 사기 때문에 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주식시장이 처음 만들어졌을 땐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없었다. 1929년 ‘검은 화요일’로 알려진 미국의 주식시장 붕괴는 경제 대공황에 기여할 만큼 심각한 사건이었는데, 이후 비로소 금융에 대한 법과 규제가 도입됐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금융시장의 작동 방식을 규정한다. 

문제는 오늘날의 우리가 '물리적인 세상'과 '가상의 세상'이라는 두 세상의 접점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규칙은 이 두 세상 모두에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 동안 암호화폐 업계는 기본적인 고객신원확인(KYC) 절차부터 아주 까다로운 자금이동규칙(Travel Rule)까지, 기존의 (전통적인) 금융시장에서 요구하는 규제를 받아들이고 이행하는 데 어려움을 보였다.

출처=Ankush Minda/Unsplash
출처=Ankush Minda/Unsplash

가상자산사업자(VASP)로 불리는 암호화폐 서비스 기업들은 세계적인 자금세탁방지(AML) 규제 및 테러자금조달방지(AML)와 관련된 국제협약을 완전하고 성실히 이행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규제 당국의 제재를 받거나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고, 거주 또는 사업 기반을 두고 있는 관할지역의 관련 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하면 사법당국에 의해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얘기하자면, 정부 입장에서 암호화폐에 적합한 규제를 만들기 위해 기존 규제에 손을 댈 이유가 없다. 반면 제도권 금융과 공정한 경쟁을 요구해야 할 필요성은 상당하다. 암호화폐와 가상자산은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지만, 가상자산사업은 여전히 제도권 안에서 운영돼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각국 정부는 암호화폐 관련 문제에선 뒤처지긴 했지만 빠르게 따라잡고 있고, 앞으로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해 제도권 금융에 적용되는 기준을 적용할 것이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하다.

실제로 세계 금융규제 집행 방향을 이끄는 미국 금융범죄단속국(FinCEN)은 자금이동규칙이 적용되는 송금액 기준을 3000달러에서 250달러로 낮추자고 최근 제안한 바 있다.

자금이동규칙은 해외송금을 처리하는 금융기관이 송금인과 수취인에 대한 특정 정보를 수집하고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자금세탁, 테러자금조달, 초국가 범죄 및 사기 등의 행위에 대처하기 위한 핵심 도구다. 가상자산사업자는 법정화폐를 암호화폐로 교환해 주는 역할을 하면서 암호화폐 경제로의 진입을 돕는다. 그 때문에 가상자산사업자가 자금이동규칙의 효과적인 집행을 위한 중요한 연결고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한 차원에서 암호화폐는 제도권 금융 밖에서 즉각적으로 금전적 가치를 주고받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에 규칙의 집행에 특수한 어려움을 부여한다. 규제당국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제도권 금융에는 이미 일정한 신고 체계가 자리잡혀 있어 자금이동규칙의 이행여부를 효과적으로 점검할 수 있지만, 암호화폐는 그렇지 않다.

출처=David McBee/Pexels
출처=David McBee/Pexels

매초 수백만달러 규모의 디지털 화폐를 전송하는 수백만 개의 분산화 프로토콜이 작동하고 있고, 디파이(DeFi, 탈중앙금융), 레이어2 프로토콜, 사이드체인, 스마트계약 등 복잡한 형태로 블록체인에 묶여 있는 자금의 규모도 상당하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탈중앙화 네트워크의 세계에, 규제를 받는 중앙화 기관들의 정보공유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을 끼워 넣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상자산사업자가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기존 규제를 잘 준수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많은 나라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한 선입견이 존재한다. 암호화폐가 램섬웨어나 거래소 해킹, 다크웹 등을 통한 자금 탈취, 그리고 일부 국가의 제재 회피 수단이라는 오래된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도 최근 비트코인이 불법행위와 연관돼 있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정부 관계자와 금융규제 전문가 중 절반 이상은 암호화폐가 금융 시스템에 대한 리스크라고 답했지만,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의 80%는 암호화폐를 기회로 봤다. 이러한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해야 할 일 많다.

가상자산사업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일관성 있는 규제 체제의 필요성을 호소해야 한다. 암호화폐 옹호단체 코인센터(Coin Center)에서 제시한 방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암호화폐 업계도 정당성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정부는 규제 감독을 회피하려는 가상자산사업자들을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한다. 최근 테더(Tether)에 대한 판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규제당국은 가상자산사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기존 제도권 금융과 암호화폐는 큰 차이가 없다. 악성 행위자를 적극적으로 색출해 낼 때 전체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수 있고, 미래의 잠재적인 범죄행위를 막을 수 있다.

가상자산사업자가 규제 당국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국제 금융범죄 관련 규제를 준수하기 위한 통일된 선의의 노력을 보여준다면, 각국 정부도 금융접근성과 포용, 프로그래밍 가능한 돈 등 암호화폐에서 얻을 수 있는 특유의 혜택과 정당성을 바로 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오늘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간이 쌓아온 사회·경제 공학의 가장 큰 결실 중 하나다. 완벽하진 않지만, 세계 경제의 활력과 안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암호화폐 업계와 각국 정부가 서로와의 협력을 통해 지금의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배웠던 뼈아픈 교훈을 잘 적용한다면, 미래의 금융 시스템은 더욱 공정하고, 생산적이며, 효율적이고 접근가능할 것이다.

영어기사: 임준혁/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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