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 보증하는 ‘디지털 아우라’인가, ‘튤립 투기’ 재연일까?
대체불가토큰(NFT) 미술품 시장 돌풍
원본·복제 똑같은 디지털에 ‘진품인증’
미술작가도 음원처럼 ‘판매 로열티’수입
분산소유·거래 “미술시장 활성화”기대
작품 NFT로 바꾼뒤 원본 불태워 가치높여
디지털환경 적합한 새로운 거래도구 주목
과도한 투기적 수요 몰려 ‘거품’ 논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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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권 한겨레 기자
구본권 한겨레 기자 2021년 4월19일 10:55

☞ 엔에프티(NFT)란? ‘대체 불가 토큰(Non Fungible Token)’의 약자로, JPG, GIF, 오디오 등 다양한 디지털 파일에 대한 소유권을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탈중앙화한 블록체인 형태로 발행해 보관하는 형식이다. 일종의 ‘디지털 진품 증명서’다.

3월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에브리데이즈’는 시초가 100달러에서 시작해 6930만달러(약 785억원) 가치의 암호화폐(4만2329이더리움 ETH)에 낙찰됐다. 비플이 날마다 작업해온 5000여장의 이미지를 콜라주로 만든 작품이다. 크리스티 제공
3월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에브리데이즈’는 시초가 100달러에서 시작해 6930만달러(약 785억원) 가치의 암호화폐(4만2329이더리움 ETH)에 낙찰됐다. 비플이 날마다 작업해온 5000여장의 이미지를 콜라주로 만든 작품이다. 크리스티 제공

 

디지털 시대 미술품 소장과 거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새로운 시장의 탄생인가, 예술적 가치와 무관하게 투기 광풍으로 부풀어 오른 신종 디지털 거품인가. ‘대체 불가 토큰(NFT)’으로 불리는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방식이 미술품 시장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비플의 콜라주 ‘에브리데이즈’의 한 부분. ‘에브리데이즈’는 비플이 날마다 제작해 공개한 이러한 이미지 5000개로 구성돼 있다. 크리스티 제공
비플의 콜라주 ‘에브리데이즈’의 한 부분. ‘에브리데이즈’는 비플이 날마다 제작해 공개한 이러한 이미지 5000개로 구성돼 있다. 크리스티 제공

 

지난달 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에브리데이즈’가 6930만달러(약 785억원) 가치의 암호화폐(4만2329이더리움 ETH)에 낙찰됐다. 생존 화가로는 제프 쿤스, 데이비드 호크니에 이은 세 번째 높은 경매가 기록이다. 비플이 2007년부터 날마다 온라인에 올려온 이미지 5000개를 콜라주로 만든 작품이다. 비플은 디지털 파일(jpg)로 된 해당 작품은 공개하고 낙찰자에게 엔에프티(NFT) 형태의 ‘진품 증명서’를 발행했다.

 

트위터 ‘불탄 뱅크시’ 팀은 3월11일 크리스티 경매 직전 자신들이 구매한 1억여원의 뱅크시 판화를 스캔해 NFT로 발행한뒤 불에 태우는 동영상을 유튜브로 공개했다. 유튜브 제공
트위터 ‘불탄 뱅크시’ 팀은 3월11일 크리스티 경매 직전 자신들이 구매한 1억여원의 뱅크시 판화를 스캔해 NFT로 발행한뒤 불에 태우는 동영상을 유튜브로 공개했다. 유튜브 제공

 

트위터의 ‘불탄 뱅크시’ 팀은 이날 비플 작품의 경매 직전 얼굴없는 그래피티 화가인 뱅크시의 판화(작품명 ‘멍청이’)를 불태워버리는 이벤트를 유튜브 영상으로 공개했다. ‘불탄 뱅크시’ 팀은 뱅크시 판화를 9만5천달러(약 1억700만원)에 구매한 뒤 이를 스캔해 엔에프티로 전환하고, 원본을 불태운 것이다. 불탄 뱅크시 작품 이미지를 디지털로 변환한 ‘대체 불가 토큰’은 경매에서 가상화폐(ETH)로 약 4억3000만원에 팔렸다. 원본의 4배 넘는 가격이다. ‘불탄 뱅크시’ 팀은 “실물과 디지털 아트가 동시에 존재하면 실물의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실물을 없애고 엔에프티 기술로 변경 불가능하게 만들면 그것이 유일한 진품이 될 것”이라고 유튜브에서 말했다.

 

불에 탄 뱅크시의 판화작품 ‘멍청이들(Morons)’.
불에 탄 뱅크시의 판화작품 ‘멍청이들(Morons)’.

 

대체 불가 토큰은 원본과 복제본이 구별되지 않는 디지털 작품에 대해 블록체인을 활용해 고유성과 희소성을 부여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엔에프티는 발터 베냐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복제본이 가질 수 없다고 말한 ‘아우라’를 디지털 예술품에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미술시장 바꿀 혁신 기술?

엔에프티는 디지털 창작물의 자유로운 복제와 유통을 허용하면서도 원본의 가치를 증명하고 소유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거래를 활성화할 수 있어, 디지털 예술품에 적합한 개념이다. 블록체인 기반이라 소유권의 훼손과 분실을 걱정할 필요 없다. 수십억원에 이르는 고가의 작품 소유권도 비트코인처럼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눠서 소유하거나 소액으로 거래할 수 있어 미술품 시장을 활성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엔에프티는 작가가 미술품의 거래과정와 가격 상승 등 가치사슬에서 배제되지 않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엔에프티는 미술품도 음원처럼 창작자가 로열티를 지급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창작자가 작품 판매 때마다 10~15%의 로열티를 받도록 조건을 설정할 수 있고 블록체인은 소유자가 바뀔 때 자동으로 대금을 작가에게 보낸다.

미술시장의 미래라는 기대 속에 세계적 경매사 크리스티에 이어 소더비도 엔에프티 경매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국내 서울옥션도 자회사 서울옥션블루를 통해 엔에프티에 진출했다. 서울옥션블루 관계자는 “현재 작가를 발굴하고 있으며 올 가을 엔에프티 미술품 거래의 구체적 형태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데미안 허스트 등 유명 작가들도 엔에프티 미술에 작품 제공을 밝히는 등 적극 뛰어들고 있다.

로열티 수입이 커질 유명 작가뿐 아니라,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여겨온 신진 디지털 아티스트들의 기대도 크다. 디지털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주행 연구원은 “대체 불가 토큰 예술은 미술계의 기성권력 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 디지털 예술가에게 기대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터질 순간 임박한 투기 거품?

엔에프티는 디지털 작품 자체가 아니라, 분산된 소유권 증명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지난 13일 보도에 따르면, 엔에프티는 도서관이 보관한 도서의 열람카드일 뿐 책 자체는 아니다. 블록체인으로 안전하게 보존되는 것은 소유권이지 원본이 아니다. 열람카드를 안전하게 보존해도 도서관에 불이 나면 소장한 책이 손상된다. ‘불탄 뱅크시’의 엔에프티 이벤트에서 드러났듯, 블록체인을 통해 희소성과 소유권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행위가 오히려 원본 예술품을 훼손하는 배경으로 작동할 수 있다.

‘에브리데이즈’ 경매에서 암호화폐로 대금을 받은 작가 비플은 바로 암호화폐를 현금화하고, “투기 거품이 조만간 터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 5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에브리데이즈’를 거액의 암호화폐로 구입한 ‘메타코반’으로 알려진 구매자는 싱가포르의 암호화폐 기업가였다.

최근 가상화폐 가치가 폭등하면서 지갑이 두툼해진 투자자들이 엔에프티 미술품 구매에 뛰어들어 투기 시장으로 만드는 측면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엔에프티 미술품 투기 열풍을 1637년초 튤립 뿌리 하나가 암스테르담의 고급 집값인 6700길더에 팔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광풍과 닮았다고 지적했다.

엔에프티는 작품 전시와 보관을 위해 장비, 비용, 보험 등을 부담할 필요 없고 디지털 복제와 전송을 허용하면서도 소유권을 보호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에너지 과소비 플랫폼이다. 엔에프티 발행, 거래, 저장 등 모든 단계에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비플의 엔에프티 거래엔 13가구의 1년 전기 소비총량보다 많은 전기가 필요했다.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작품이 NFT로 거래되고 있다. 알고리즘이 만든 이미지를 판매하는 크립토펑크의 작품(오늘쪽)은 NFT 거래 플랫폼에서 3월24일 760만달러(약 85억원)어치의 암호화폐로 판매됐다. 라바랩 제공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작품이 NFT로 거래되고 있다. 알고리즘이 만든 이미지를 판매하는 크립토펑크의 작품(오늘쪽)은 NFT 거래 플랫폼에서 3월24일 760만달러(약 85억원)어치의 암호화폐로 판매됐다. 라바랩 제공

 

“디지털에 희소성 부여는 ‘집단환각’일 뿐”

엔에프티는 미술품만이 아니라 음원이나 게시글 등 다양한 디지털 형태에 희소성을 부여하며 소장 가치와 거래 편의를 높이고 있다. 트위터의 창업자 잭 도시는 2006년 자신의 첫 트위트 메시지를 엔에프티로 발행했다. 140자 안되는 짧은 문장의 진품증명 소유권이 290만달러(33억원)에 팔렸다. 스포츠선수의 영상이나 디지털 카드도 엔에프티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구찌와 스위스 유명시계 등 명품업체들도 속속 엔에프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물리적 제품 대신 희소성을 가진 진품진명서 발급을 통해 브랜드 소유욕을 충족시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세계적으로 엔에프티 거래금액은 5억달러(6100억원)에 이르고 3월 한 달에만 2억4천만달러가 거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엔에프티 투기 광풍에 대한 우려와 비관적 전망이 많다. 40년 전 캐나다 작가 윌리엄 깁슨은 수십억명이 “합의된 환각”을 통해 사이버 공간을 현실로 간주했다고 표현했는데, 엔에프티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과잉의 디지털 세계에 희소성이라는 집단 환각을 다시 도입한 것”이라고 미국의 학술매체 <컨버세이션>이 지난달 5일 분석했다. 실제 가치대신 환각으로 형성된 희소성을 광적 투기의 동력으로 삼은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은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붕괴했다.

디지털 창작물에 고유한 소유권과 희소성을 만들어내려는 엔에프티 생태계는 투기 거품이 꺼진 뒤에야 제대로 구축될 확률이 높다. 디지털 예술품의 ‘아우라’ 또한 소유권 보호와 유일성 보증만으로 만들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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