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암호화폐 가져오면 새 화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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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중
윤형중 2018년 3월12일 15:34




비트코인의 가격이 처음으로 1천달러에 육박하며 연초보다 70배 이상 급등한 2013년, 암호화폐의 미래를 둘러싼 주된 관심사는 ‘과연 이것이 미래의 결제 수단이 될 것인가’였다. 당시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은 기사 중 하나가 <포브스>의 캐슈미어 힐 기자가 쓴 ‘비트코인으로만 일주일 살기’였다.

이로부터 4년이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비트코인의 가격은 연초 1천달러로 시작해 12월 2만달러에 육박했다. 왜 가격이 폭등한 것일까. 비트코인이 미래의 결제 수단으로 인정받은 것일까. 하지만 비트코인을 지급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했다는 보도는 여전히 드물다.

그나마 2017년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용처를 분명히 확인한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초기코인발행(ICO·Initial Coin Offering)이다. 초기코인발행은 사업의 개요를 발표하고 투자금을 유치하는 일인데, 그 자금을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받는다.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스피커닷컴을 보면, 2017년 1월부터 10월까지 초기코인발행으로 모집한 투자금이 달러로 환산하면 28억7330만달러(약 3조1400억원)에 이른다. 7월 스마트계약 플랫폼을 만든 테조스가 2억3200 만달러 규모로 투자금을 유치한 데 이어, 프로토콜랩스라는 미국 벤처기업이 분산 데이터 저장 사업인 ‘파일코인’을 추진한다고 밝히며 사상 최고 규모인 2억 5700만달러를 모았다.

국내에서도 블록체인 전문업체를 표방한 블록체인OS가 5월 자체 암호화폐인 ‘보스코인’의 초기코인발행을 진행해 당시 시세로 157억원인 6900BTC(비트코인)를 모았다. 이후에도 하이콘, 플러스코인 등의 초기코인발행이 진행됐다. 프로젝트 규모마다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이 오가는 투자가 암호화폐를 통해 이뤄진 셈이다.

 



 







암호화폐의 주용도로 부상


암호화폐를 투자용 화폐로 만드는 초기코인발행이란 무엇일까. 2017년에만 초기코인발행 이름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는 수백 건이다. 이 건수만큼 다양한 형태의 초기코인발행이 있지만, 공통점을 꼽자면 암호화폐(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로 투자를 받고 투자자에게 새로운 암호화폐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투자를 유치하는 사업자는 새로 발행하는 암호화폐에 특정한 가치를 담는다. 그 가치가 회사의 소유권일 수도 있고, 새로 추진하는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을 공유하겠다는 약속일 수도 있다. 혹은 사업으로 만들어내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증서가 되기도 한다. 이런 특징은 기존의 지분증권, 채무증권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 암호화폐가 비트코인처럼 지급결제 수단을 지향하거나, 이더리움처럼 스마트계약 기능이 내재된 거래 플랫폼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이 경우 암호화폐는 기존 증권과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다.

초기코인발행의 첫 번째 사례는 2013년 7월에 등장한 마스터코인(Mastercoin· 나중에 Omni Layer로 이름 변경)이다. 마스터코인은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추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사용하기 편한 개인지갑 서비스 등을 출시했다. 좀더 안전하고 쉬운 거래를 지향한다. 초기코인발행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비탈리크 부테린이 개발한 이더리움이다.

부테린은 2014년 7월 이더리움의 개요를 설명한 백서를 공개한 지 12시간 만에 3700BTC(당시 가치로 230만달러)를 모았다. 암호화폐 형태를 띤 이더리움이 실제 개발된 시기는 초기코인발행에서 1년이 지난 2015년이다. 그래서 이더리움은 2014년에 초기코인발행(ICO) 대신 프리세일(사전 판매)이란 용어를 썼다. 이더리움은 코인 발행을 쉽게 해주는 기술 표준인 ERC20(Ethereum Request for Comment 20)을 제시했고, 이후엔 많은 사업자가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이용해 새로 발행된 코인을 투자자에게 바로 지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진정한 의미의 ‘코인 지급’(coin offering)이 현실화한 것이다.

초기코인발행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투자금을 공개 모집한다는 점에서 크라 우드펀딩이나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비교된다. 이름조차 비슷 한 기업공개는 각국의 증권거래소가 정한 기준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과 영업실적을 내고 사업의 유효성도 어느 정도 검증된 기업만이 진행한다는 점에 서 초기코인발행과 큰 차이가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회사나 프로젝트를 소개하 고 투자금을 모집한다는 점에서 초기코인발행과 유사하다. 크라우드펀딩 역시 각국에서 지난한 법제화 과정을 거쳐 투자금 모집의 한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에선 2015년 자본시장법에 ‘온라인 소액투자 중개업자’ 규정이 들어가면서 크라우드펀딩이 제도권으로 편입됐다.

 

관련 법규 없어 악용되기도









대부분의 나라에선 초기코인발행을 규제할 법규가 없는 상황이다. 최근 유사 수신행위나 사기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법제화 등 대책 마련을 요 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초기코인발행 사업자 중에는 장밋빛 미래만 얘기할 뿐 암호화폐의 소스코드를 공개하지 않거나, 사업의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2017년 9월1일 정부 관련 부처가 구성한 ‘가상통화 관계 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보도자료를 내어 “지분증권·채무증권 등 증권 발행 형식으로 가상통화를 발행하여 자금조달(ICO)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자본시 장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현행 법률을 다시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지분이나 채무의 성격을 가진 증권발행의경우현행자본시 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그 기준과 절차가 엄격히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코인발행의 열풍이 지속되자, 정부는 9월29일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관계기관 합동 회의를 열어 “최근 ICO를 앞세워 투자를 유도하는 유사수신 등 사기 위험 증가와 투기 수요 증가로 인해 시장 과열과 소비자 피해 확대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기술·용어 등에 관계없이 국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 방침이 어느 법률에 근거한 해석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전 보도자료를 통해 ‘유사수신행위규제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여, 기존 유사수신행위 외에 가상통화 거래 행위에 대해서도 규율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방침을 먼저 밝힌 뒤 규율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세계적으로 초기코인발행을 전면 금지한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다. 중국은 신뢰가 약한 자국 통화를 보호할 유인이 있고, 한국은 비이성적인 투기 열풍을 막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경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초기코인발행을 특정 정부가 규제한다고 막을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부터 차세대 기술인 블록체인의 발전을 초기부터 막는다는 우려까지 다양한 비판이 나온다. 미국과 싱가포르는 지분형 코인에는 기존 증권 관련법을 적용하는 등 부분적으로 규제하는 타협책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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