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진보주의자가 블록체인을 받아들이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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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중
윤형중 2018년 4월4일 09:40






"플라톤이 쓴 신화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이집트의 토트 신이 파라오 앞에 나타나서 문자라고 하는 새로운 발명품이 있는데 사용하겠냐고 물어요. 파라오는 거절합니다. 문자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기억을 안하려 해서 머리가 나빠질 것이고, 선생에게 수업을 받아야 진정한 교육을 받는 것인데, 글자 몇 개 읽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면 어떡하냐는 것이죠. 원래 보수주의자들은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나에게 낯설다', '나는 이해 못하겠다'가 아니라 '나쁜 것'이나 '불필요한 것'이라고 봐요."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지난달 코인데스크코리아 창간 인터뷰에서 신기술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선을 강조했다. 1990년대를 주로 독일에서 거주했던 그는 "독일 유학 중에 인터넷을 처음 경험했다. PC통신이 촌동네였다면 월드와이드웹은 정말 지구를 촌으로 만든 엄청난 경험이었다. 블록체인에 인터넷 못지 않은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하면서도 "잠재성은 어음에 불과하다. 그러니깐 그 어음이 종이 쪼가리라고 배척하지 말고, 그 상태로 놔두면서 지켜보잔 입장이다. 과도한 낙관과 비관을 모두 경계한다"고 밝혔다.

진 교수는 유시민 작가가 참여해 화제가 됐던 jtbc의 '뉴스룸 긴급토론 - 가상화폐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 토론이 아쉬웠다고 평가했다.  그는 "(유시민 작가가) 판 자체를 깔고, 다른 사람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자기가 깐 판에서 논의하니까,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블록체인이 가진 다양한 기능과 용도들, 그 잠재성에 대한 얘기가 충분히 되어야 하는데, 그 얘기를 (충분히) 하지 않고 '발렸네'라고 되었다"고 평가했다. 진 교수는 "투기로 이어지는 과도한 관심도 문제지만, 블록체인에 대해 마땅히 가져야 할 관심마저 찬물을 끼얹는 것도 문제다. 그런 면에서 되게 아쉽고, 내 입장은 두 분(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사이에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진 교수는 "예전에 바다이야기 사건을 염두에 두고, 가만히 놔두면 그것보다 더 큰 사건이 터져 책임이 정부로 오는 것을 경계한  유 작가가 지금 욕을 먹더라도 불을 꺼야한다고 여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진 교수는 블록체인의 과제로 '용도를 발명하는 일'을 제시했다. 그는 "논리적으로 조작 불가능하고,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이라고는 이해하겠다. 하지만 화폐 외에도 어떤 쓸모가 있는지, 용도를 발명하는 일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디지털 문명은 실현된 세계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실현될 수 있을, 그 잠재성의 지대를 탐색하는 것이 본질"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이 그 잠재성의 영역에 있고, 그 영역은 탐구자들과 모험가들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인데스크코리아가 "그런 탐색자들과 모험가들을 위한 가이드가 되는 매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축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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