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IT 버블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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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가상화폐 거래에 뒤늦게 참여했다가 손실을 본 지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유행을 따라 투자에 나섰다가 뒤늦게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역시 블록체인은 전도유망한 기술인것 같아서  장기로 투자해보겠다고 했다. 손실을 보고 계신 분께 쉽게 드리기 어려운 말씀이었지만, 필자는 블록체인의 미래가 밝다고 해도 가상화폐의 미래는 어두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의 인식과 달리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는 동일한 차원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년전, 1999년 IT버블이 한창이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회사이름에 ‘닷컴'을 붙이는 것이 세계적인 유행이었던 때였다. 인터넷 비즈니스에 진출하겠다는 기업의 야심을 상징하는 닷컴을 사명에 붙이면 기업가치는 순식간에 급등했다. 모 제과회사에서 신제품에 ‘쿠키닷컴'이라는 이름을 불일 정도였으니 그 유행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할만하다. 이런 ‘닷컴열풍'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모두 알고 있다시피 매우 좋지 않았다. 인터넷 비즈니스에 진출하겠다던 기업들 중 상당수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고, 자신들의 비젼을 현실화시킬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인터넷 기업들을 단기간에 한꺼번에 수용할만큼 초기 시장으로서 인터넷이라는 공간도 충분하지 못했다. 2000년 버블붕괴 이후 많은 기업들이 부실화됐고 일부에서는 닷컴열풍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계획적인 사기행각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참혹한 IT버블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 것은 확실하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인류는 이제 네트워크에 접속하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인터넷 시대의 상징적인 존재인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2018년 드디어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20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인류의 생활상을 이렇게 완벽하게 바꾼 사건은 인류 역사에서 단연코 인터넷이 유일할 것이다. 인터넷의 미래가 이렇게 아름답게 꽃피웠는데, 바로 그 인터넷에 투자했던 20년전의 IT버블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버블의 형성과 붕괴에 인터넷은 죄가 없다. 오히려 인터넷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이상으로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고 세상을 바꿨다. 죄가 있다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 앞에서, ‘닷컴'을 붙이기만 하면 부실기업이든 계획적인 사기이든, 심지어 그것이 먹는 과자이든 상관없이 무작정 열광했던 당시 사람들의 행태에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 그리고 그 새로운 개념에 대한 투자가 제공하는 단기의 어마어마한 수익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 열광은 곧 무분별함으로 이어졌다. 참극을 연출한 건 인터넷이 아니라, 그 무분별함이었다.

블록체인이라는 말이 사회적인 화두가 된 지 고작 1년 남짓인데, 인터넷 버블이 한창이던 때의 행태가 블록체인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의 미래는 밝았지만, 인터넷을 이용한 모든 서비스와 모든 사업의 미래가 밝았던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의 발전 속도는 인류 역사에서 비근한 예를 찾을 수 없을만큼 빨랐지만, 그럼에도 버블로 치달았던 투자자들의 탐욕을 만족시켜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제2의 인터넷이라는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초창기 닷컴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블록체인의 미래가 밝다고 블록체인 기반의 모든 서비스가 성공할 가능성은 당연히 ‘제로'다. 블록체인의 도입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사회적인 열풍을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블록체인이 미래의 대세가 되어도 수백개가 넘는 그 많은 코인들 중 상당수는 사멸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서로 다른 미래를 향해가고 있는 별도의 개념들을 일률적인 기준으로 이해하려 한다. 블록체인, 핀테크, 가상화폐같은 서로 독립적인 개념들을 비빔밥처럼 뒤섞어 버리는 통에 우리는 블록체인을 그야말로 우리가 속한 세상이 아닌, 4차원 세계에 존재하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덕분에 가상화폐 투기를 견제하려던 정부는 미래 기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논리에 막혀 전국적인 투기열풍을 방관하고 말았다. 한 달 만에 10배의 수익이 났다가 또 한 달 만에 -80%의 손실이 나는 롤러코스터를 경험한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에 투기를 정당화하고 블록체인 기술발전에는 별 기여를 하지 못하는 중앙화된 가상화폐 거래소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

블록체인의 가치와 블록체인을 이용한 서비스의 가치는 별도로 분석되고 이해해야 한다. 블록체인의 미래가 밝으니 가상화폐를 ‘존버(오래 보유하고 버틴다는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의 유행어)’하면 돈을 벌 것이라는 주장은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 닷컴기업들이 큰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인터넷에 대한 확신은 맞는 예측이 됐지만 투자한 닷컴기업이 아마존이나 네이버가 아니었다면 아마 투자금의 대부분을 날렸을 것이다.

필자는 블록체인의 가치가 다소 과대평가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블록체인은 나름의 가치를 갖는 소중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블록체인은 시대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가공의 인물인지 가명의 인물인지 확인되지 않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이 비트코인에 대한 논문을 공개한 것은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전세계적인 신용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늦은 가을이었다. 금융 공황의 주범은 그동안 신뢰를 받아왔던 글로벌 대형 금융기관들이었고, 이들을 관리감독해야할 신용평가기관들과 중앙은행들이 오히려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사실에 세계는 경악했다. 정부나 대기업들이 갖고 있었던 금융인프라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분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금융기관들을 지원하기 위한 막대한 통화공급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낳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만연했다. 비트코인이 주창한 탈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와 공급이 제한된 통화체계는 당시의 사회적 요구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효율성 측면에서 우수한 기술은 아니다. 블록체인이 탈중앙화된 상태에서 난공불락의 보안성을 유지하려면, 아마존이나 구글의 중앙화된 클라우드 서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컴퓨팅 자원의 낭비를 요구하고 그러면서도 중앙화된 인프라에 비해 현저히 느린 속도로 돌아간다. 자원낭비와 속도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기술적 혁신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은 블록체인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혁신은 요원한 상태다. 하지만 2008년의 시대정신과 비트코인이 제시한 대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20년전에는 인터넷이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인터넷 세상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초국가적 글로벌 기업이 인터넷 상의 정보 대부분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빅브라더의 세계이다. 인터넷이 소수의 독점기업들의 전유물이 아닌,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어줄 공공의 인프라되기 위해서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는 인류에게 중요한 대안이다. 이렇게 블록체인이 활성화돼야할 이유는 기술적인 우수성이 아닌 사회적인 필요성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농담 반, 그리고 진지함 반으로 블록체인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주체는 시민단체가 아니냐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블록체인이 시대정신의 산물이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존재라고 해서 블록체인에 기반한 서비스들도 그러한 것은 아니다. 특히, 탈중앙화의 가치를 내걸고 기업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시민사회의 공공재를 만들겠다는 블록체인의 애초의 취지에서 벗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라면 단지 블록체인에 기반한 서비스라고 모두 새롭고 유익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서비스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유의 혜택과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현재 해외송금이나 환전과 기존 금융인프라에서 불편했던 지급결제 서비스, 신용정보/의료정보와 민감한 개인정보를 이용한 서비스, 그외 자동차나 부동산의 등기나 이력을 관리하는 서비스들이 블록체인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로 제시되고 있다. 상당수의 서비스들은 구체적인 실현 계획을 갖지 못하거나, 기존의 중앙화된 IT인프라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서비스에 비해 딱히 뚜렷한 이점을 갖지 못하는데도 블록체인에 기반했다는 이유만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이런 서비스들의 초점이 ‘규제 아비트라지(차익거래)'에만 집중돼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금융서비스의 불편함을 상징하는 공인인증서나 핀테크를 위한 빅데이터 생성을 저해하는 신용정보 보유기간 제한 같은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기존 사업자들이 혁신을 모르는 멍청이들이어서가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제한하고 정부의 통제 범위 안에 놓기 위한 규제 때문이다. 이런 서비스들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면 블록체인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을 갖지 못한 기존 규제의 허점 때문에, 제약없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여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그러나, 규제는 사회 변화에 비해 발전이 매우 느리긴 하지만 결국 현실을 따라잡는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핀테크 서비스가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가지는 강점 이상의 고유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규제가 확장되어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가  기존의 서비스와 동일한 규제에 포함되고 나면 규제 아비트라지에만 기댄 신규 서비스의 생명력은 시한부일 가능성이 높다.

블록체인의 미래를 생각할 때보다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의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특히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중에서 가상화폐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가 기능하고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의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컴퓨터 자원을 네트워크에 제공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자원의 제공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 사토시는 컴퓨터 자원을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가상화폐를 나누어주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고안했고, 현재까지 대부분의 블록체인들은 이런 인센티브 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래서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구현을 위한 필수적인 존재로 여겨지며, 블록체인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 가상화폐의 가치는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믿어진다.

그러나 블록체인의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가상화폐로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대단히 스마트한 발상이긴 하지만 동시에 대단히 위험하고 지속되기 어려운 발상이기도 하다.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배분하는 가상화폐는 컴퓨터 자원을 공급해준 이들에게는 수입이지만, 블록체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가치의 지속적 상승은 이용자의 비용 증대를 유발할 수 있고, 가상화폐의 가치가 단기간에 큰 변동성을 보인다면 블록체인 서비스의 이용비용도 역시 크게 변동될 것이므로 서비스의 확산을 저해할 것이다. 비트코인 투기가 한창이던 2017년 12월 비트코인의 평균 거래비용은 한 때 55불까지 치솟아 올랐다. 4천원짜리 커피 한 잔을 비트코인으로 결제하기 위해 거래 수수료만 6만원을 지급해야할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고 블록체인 서비스가 안정적이려면 가상화폐의 가치가 일정 수준에서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가상화폐 가치가 안정화되면 역설적으로 가상화폐 투자가치가 사라져버린다. 한 달만에 갑부가 될 수 있는 고수익의 투자 수단이 은행예금같은 저수익 자산으로 변한다면 지금과 같은 열렬한 투자수요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블록체인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서의 가상화폐와, 매력적인 투자수단으로서의 가상화폐는 서로가 서로를 제약하는 ‘트레이드오프'의 관계가 존재한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공유하는 공공재로서의 블록체인을 유지하기 위해 사적인 이윤 추구의 동기를 이용하는 사토시의 설계가 근원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학적인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블록체인 인프라가 가상화폐와 과연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인지 회의적이다. 특히 요즘 ASIC채굴기(가상화폐 채굴만을 위한 전용 반도체를 탑재한 채굴기)의 등장으로 블록체인 유지를 위한 작업증명 방식의 균형이 무너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가상화폐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은 철학적 고민에서 현실적인 비관이 되어가고 있다.

필자의 다소 비관적인 견해를 말씀드리긴 했지만 블록체인의 미래, 가상화폐의 미래 각각 사안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또 모든 블록체인과 모든 가상화폐에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도 적절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의 밝은 미래가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간의 관계도 확실한 것은 아니기에 블록체인의 미래와 가상화폐의 미래를 동일시하는 것은 20년전에도 뼈저리게 경험했던 오류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블록체인이 현재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클라우드와 같은 중앙화된 네트워크 기술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인프라가 될 것이라 믿고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블록체인이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한 사회운동으로 필요하다는 주장도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이 대세이니 가상화폐에 무작정 장기투자하거나 ICO에 참여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봐도 비합리적이다. 금과 같은 실물자산에 기반한 통화나 정부라는 제3의 보증기관이 있는 법정통화와 달리 가상화폐는 말 그대로 ‘가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 인프라와의 관계가 깨지면 가치가 쉽게 붕괴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과 20년전에 인터넷버블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움에 대한 무분별함에 똑같이 사로 잡혀있는 것 같다.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은, ‘인간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라는 슬픈 표현의 변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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