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더리움 역사가 이렇게 시작됐다
[인터뷰] 2014년 서울이더리움밋업 조직한 정우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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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중
윤형중 2018년 4월25일 00:41
정우현 서울이더리움밋업 공동운영자. 사진 윤형중 기자


서울이더리움밋업은 한국에서 비트코인조차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2014년 11월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이더리움을 공부했던 모임이다. 처음 모임이 조직될 당시엔 비탈릭 부테린이 이더리움을 개발조차 하기 전이었다. 단지 스마트 계약이 가능한 블록체인이란 개념을 담은 백서만 공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울이더리움밋업은 일찍이 이더리움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진지하게 이더리움을 연구했다. 이런 진정성으로 인해 비탈릭 부테린(24)이 2015년에 이미 이 모임에 두 차례나 참석했다.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큰 관심 속에서 치러진 지난해 9월 서울 코엑스에서의 부테린 강연도 서울이더리움밋업이 주최한 행사였다.

이 모임을 처음 만들고 지금도 공동 운영중인 정우현(52)씨는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는 재미사업가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atomrigs'란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다. 정씨는 일 년에 한 두 차례 한국에 와 서울이더리움밋업에 직접 참석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온라인으로 공지만 하고 모임에 참석하진 않는다. 그렇게 이 모임이 3년 6개월 가까이 유지됐고, 많은 개발자와 사업가들이 이 모임을 거쳐갔다. 정씨는 서울이더리움밋업이 20일부터 이틀간 주최한 댑(분산 애플리케이션) 개발 해커톤에 참석하고자 최근 한국을 찾았고, 해커톤 이틀 전인 19일 코인데스크코리아와 인터뷰를 했다.

-언제, 어떻게 이더리움을 접했나.

"2014년 여름 쯤이었다. 사실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 전이었는데, 비트코인의 채굴이 ASIC(주문형 반도체)을 이용한 전용 채굴기에 의해 점유되는 문제를 점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그 즈음에 중앙화되는 비트코인의 채굴 행태로 인해 보안에 문제가 생기고 채굴 비용이 점차 증가하며 환경도 훼손된다는 지적이 잘 정리된 글을 보았다. 그 글을 쓴 사람이 당시 스무 살의 비탈릭 부테린이었다. 그가 쓴 다른 글들을 읽어보니, 상당히 논리적이고 산업 전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더 찾아보니, 그는 이미 이더리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고, 백서를 발간한 상태였다. 그렇게 이더리움을 알게 됐다."

-이더리움에 대한 인상이 어땠나.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을 접목해 제3자의 중개 없이 개인 간에 가치를 전송할 수 있음을 증명했지만, 과연 화폐로서의 비트코인이 블록체인이 가진 잠재성을 제대로 보여줄 것인지는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블록체인 2.0이었다. 2.0이란 비트코인이 가진 기술적인 문제들을 개선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화폐 이외의 영역에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를 의미한다. 이런 시도들은 이더리움 이전에도 꽤 있었다. 인터넷 도메인이름 서비스를 블록체인으로 구현하는 네임코인, 분산화된 거래소와 스마트 컨트랙트를 가능케하는 마스터코인, 송금과 환전에 전문화된 리플, 개인 간 네트워크로 데이터 스토리지를 제공하는 메이드세이프(maidsafe)나 StorJ, 분산화된 자율기업(DAC)을 가능케하는 비트쉐어 등이 있었지만,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위에 개인간 메시지, 스토리지 시스템을 결합해 인터넷 생태계 전반을 개인간(p2p) 네트워크로 재편하려는 야심을 보여줬다. 게다가 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는 스크립트 시스템을 개선해 스마트 계약을 구현하고자 했고, 이는 이더리움의 표어 '프로그래머블 블록체인'이라는 말 그대로 블록체인을 프로그래밍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려 했다. 단순히 새로운 코인 하나를 더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응용프로그램들을 구현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플랫폼을 지향했고, 이런 청사진이 실제로 구현된다면 비트코인이 줬던 충격보다 더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이더리움을 기존의 인터넷 패러다임을 바꿀 '웹3.0 기획'이라고 봤다. 이런 생각을 정리해 2014년 가을쯤에 땡글이란 커뮤니티에 이더리움에 대한 글(당시 땡글에 썼던 글은 현재 정우현씨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음)을 썼다."

-서울이더리움밋업은 어떻게 조직하게 되었나.

"나는 온라인으로 이더리움에 대한 글을 계속 썼지만, 오프라인으로 정기적으로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침 그 시기에 전직 언론인이던 신호철씨(전 시사인 기자)가 땡글에 '이더리움 모임이 없나, 같이 공부하고 논의하는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고, 내가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나는 콘텐츠로는 도울 수 있으나, 한국에 거주하지 않으니 직접 모임을 주도할 사람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찾은 사람이 한승환(블록체인 연구 스타트업 피넥터 대표. 최근 서울에서 분산경제포럼을 주최했다)씨였다. 한승환씨도 당시 땡글에서 활발하게 글을 쓰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분에게 부탁해서 공지를 하고 모임을 준비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한씨가 땡글에 공지하고, 나는 밋업닷컴(www.meetup.com)에 서울이더리움밋업이란 이름의 모임을 등록하고 첫 모임을 공지했다. 사실 나는 운을 띄웠을 뿐이고, 실제로 모임을 만들고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직접 운영을 맡았던 한승환씨, 신호철씨 덕분이다."

커뮤니티 사이트 땡글에는 당시 한승환 대표가 올린 공지 글이 있다. 이 글을 보면 첫 모임은 2014년 11월 15일(토) 오후 4시에 서울 강남역 인근 '망고모임센터'에서 열렸다. 모임은 1,2부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1부는 비트코인에 대한 자유로운 이야기였고, 2부의 주제는 '비트코인 2.0'이었다.

-첫 모임에선 이더리움을 비트코인 2.0이라고 불렀다.

"워낙 이더리움에 대한 인지도가 낮을 때였다. 당시 땡글 운영자에게 땡글에 작은 섹션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내가 제안했던 이름은 블록체인 2.0이었다. 그런데 땡글 운영자는 블록체인이란 단어가 너무 대중적이지 않고, 검색어에도 걸릴 가능성이 없으니 비트코인 2.0이라고 하자고 했다. 당시 땡글에선 비트코인의 아류들이 활발히 논의되던 분위기였다. 땡글 운영자가 첫 소모임 공지를 했기 때문에 처음엔 비트코인 2.0이라고 불렸으나, 나는 처음부터 이더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다. 첫 오프라인 모임을 한다고 해서 나는 발표자료를 만들어서 한승환씨에게 발표를 부탁했다. 그 발표자료에도 블록체인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려는 비트쉐어, 리플 등을 다루긴 했지만, 중점적인 내용은 이더리움이었다."

서울이더리움밋업에선 초기부터 다양한 논의와 활동이 진행됐다. 첫 모임에선 '이씨리움', '에테리움', '이써리움' 등 다양하게 불렸던 명칭을 '이더리움'으로 하자고 중지를 모았고, 두 번째 모임에선 이더리움 백서의 한글 번역 소모임을 조직했다. 개발자들의 웹사이트인 깃허브에 올라와 있는 이더리움 한국어 백서의 초기 버전도 이 모임에서 만든 것이었다.

-서울이더리움밋업에 언제 직접 참석했나.

"세 번째 모임인 열린 2015년 3월 28일이었다. 이 모임에 참석하려고 한국에 왔다. 사실 이 모임에서 이더리움 기반으로 만든 응용프로그램을 보여주려고 거의 한달간 밤 새다시피 했다. 그렇게 코딩해서 만든 프로그램이 예측시장(링크를 누르면 해당 프로그램의 시연 장면을 볼 수 있음)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결과를 예측해서 베팅하면,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사람에게 분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이더리움은 테스트넷 상태였지만, 충분히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돌릴 수 있었다."(예측시장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혹시 개발자 출신인가.

"나는 인문계열 출신이지만, 사업하면서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원래 대학에서 신문학과(서울대 85학번)를 졸업했고, 기존에 회사를 다니다가 나와서 2000년에 미국 텍사스에 가서 에이스컴이란 회사를 창업했다. 그 회사에서 중국과 대만에서 생산한 컴퓨터 부품을 미국 쪽에 파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실력 있는 개발자들의 몸값이 너무 비싸서 채용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배워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다."

-문과 출신이 30대 후반에 코딩을 배우는 게 늦지 않나.

"지금도 내가 코딩 전문가나 풀타임 개발자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코딩을 했던 경험이 이 분야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특히 파이선은 언어가 쉽고 배워서 적용하기가 수월하다. 겁 먹을 필요가 없다. 특히 블록체인은 문과와 이과 양쪽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특이한 기술이다. 알고리듬과 수학적 모델링에 사회적 가치를 담아야 하고, 철학적 이슈들이 제기된다. 두 분야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서울이더리움밋업이 2016년 8월부터 7개월간 중단됐다.

"커뮤니티 내에서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이것도 이더리움과 관련이 있는데, 2016년 6월에 다오(DAO) 해킹 사건(이더리움재단이 분산형자율조직을 개발하기 위해 발행한 다오 토큰에 취약점을 발견한 한 해커가 당시 기준으로 640억원 가량의 이더리움을 인출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의 해결책을 둘러싸고 이더리움 내부에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저와 한승환씨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렸다. 저는 하드포크를 해서라도 해커에게 코인이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한승환씨는 블록체인의 불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반대했다. 나는 커뮤니티 내부에서 서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게 블록체인의 사회적 가치 측면에서도 하드포크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의견이 대립되는 가운데 한승환씨가 당시 코스모스란 새로운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밋업을 조직했고, 그 활동에 주력하면서 서울이더리움밋업을 이끌어갈 동력이 사라졌다. 한동안 아쉬워만 하던 참에 2016년 후반 지금의 공동운영자인 정순형 온더 대표와 이준희씨를 만났다. 정순형 대표는 당시 대학원생으로 이더리움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었고, 전업으로 이더리움 개발을 하겠다고 나섰다. 모임을 이끌기에 적절한 분이라고 판단해 같이 운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더리움이 2017년에 투기적 관심과 함께 엄청난 조명을 받았다. 당시 어떤 느낌이었나.

“이더리움의 잠재력을 크게 봤던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는 것이 흥미롭긴 했다. 한국이 새로운 사회 변화에 구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관심이 주로 코인 가격과 트레이딩에 쏠리면서 이더리움에 관한 소식도 이게 코인 가격에 호재냐, 악재냐는 식으로만 소비됐다. 이더리움이 고민한 사회적 가치, 비전 등에 대한 조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단 안타까움이 있었다. 한국의 개발자들도 이더리움을 공부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응용프로그램을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보단 이미 이더리움은 떴으니 나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내 파이를 키워보겠다는 접근이 많아 보였다. 물론 이더리움을 뛰어는 플랫폼을 만들려는 시도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플랫폼만 만들려고 하면 비효율적이다. 플랫폼이 되려면 독자적인 보안모델, 노드 검증구조 등을 다 직접 구성해야 하고, 상당한 자원과 비용이 든다. 그럴 능력이 있는 팀들은 소수다. 응용프로그램을 만드는 노력이 활성화되기보다 플랫폼을 만드는 시도가 활발해진 것이 다소 아쉽다."

서울이더리움밋업은 그동안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역할도 했다. 다만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서울이더리움밋업이 투자를 권하는 모임이 되지 않도록 ICO 일정이 임박한 프로젝트는 소개하지 않고, 국내외 운영 주체를 투명하게 공개한 팀들에게만 발표의 기회를 준다. 지난해 7월 스마트 계약으로 암호화폐 입출금, 거래 등이 가능하게 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인 카이버네트워크가 서울이더리움밋업에서 발표를 하려고 했지만, 이 프로젝트가 국내 대행업체를 명확하게 밝히길 거부하자 해당 발표를 취소한 적도 있었다.

-서울이더리움밋업은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가.

"이더리움이 제시한 가치, 비전을 함께 고민하며 댑(Dapp) 개발이 활성화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이다. 국내 이더리움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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