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이 '암호화폐 저주' 후회할 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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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6일(한국시각)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 모습. 사진 강대권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서 LA공항에 내렸을 때,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버크셔 주총 현장에서 만약 워런 버핏이 암호화폐에 대한 언급을 하면 관련된 소식을  전해달라는 메시지였다. 메시지 덕분에 주총 당일 아침까지 워런 버핏이 암호화폐에 대한 언급없이 조용히 지나가길 빌었지만, 총 5시간이 넘는 Q&A 세션이 끝나기 직전, 객석에서 한 주주가 버핏에게 암호화폐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런 거의 다 끝났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는 그 주주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LA공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를 흔히 ‘자본주의의 락페스티벌'이라고 부른다. 투자를 통해서 세계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른 워런 버핏을 지근거리에서 보기 위해, 그리고 버핏과 그의 평생 파트너인 찰리 멍거가 하루종일 직접 Q&A세션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성지순례를 하듯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들이 모여든다. 분위기는 그야말로 락페스티벌이다. 올해는 4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또다시 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행사장의 문이 열리기 몇 시간 전부터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락페스티벌이라는 말이 실감된다. 단순히 돈 많은 사업가가 아니라, 지혜로운 현인으로서 락스타와 같은 팬덤과 추종자를 전세계에 걸쳐 만들어내고, 88세의 나이에도 수만명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금전적인 측면을 넘어선 버핏의 또다른 성취일 것이다.


매년 주추총회에서 장시간 많은 질문과 답변이 진행되지만 주로 경영철학, 투자철학에 대한 관념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직면한 사회적 이슈가 언급되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예상(?)대로 이번 주주총회에서 암호화폐가 언급된 것은 암호화폐가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큰 이슈라는 것을 방증하는 사실일 것이다. 가치투자라는 다소 보수적인 투자방식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가 암호화폐에 대해서 그닥 긍정적인 입장은 아닐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현장에서 들은 두 현인의 암호화폐에 대한 평가는 예상보다도 훨씬 더 부정적이었다.


버핏은 암호화폐가 좋지 않은 결과로 끝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고, 암호화폐가 ‘사기꾼'들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버핏이 사용한 표현은 꽤나 어려운 단어인 “샬라탄 charlatan”인데, 사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기꾼이라고 번역되지만, 좀더 정확한 뉘앙스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도 ‘자신이 대단한 지식이나 기술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필자도 버핏처럼 암호화폐 전반에 긍정적이지는 않은 의견의 글을 기고하곤 했었는데, 필자 역시도 버핏이 말하는 ‘샬라탄’의 하나가 아닌가 뜨끔하기도 했다.


찰리 멍거는 버핏보다도 더 격한 단어를 사용했다. ‘똥덩이(Turds)’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멍거의 표현 전체를 인용하면, “어떤 사람들이 똥덩이를 거래하기 시작했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나도 빠질 수는 없지'라고 하는 꼴이다”라는 말이었다. 주주총회가 끝나고 보게된, 워런 버핏의 사전 인터뷰에서도 암호화폐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이 때에 버핏은 암호화폐에 대해 “쥐약입니다. 쥐약."이라고 말했다. 버핏과 멍거가 주주총회 내내 위트있는 농담을 던지고 편안한 표현을 사용하긴 하지만 쥐약, 똥덩이, 사기꾼 같은 격하고 부정적인 표현은 (적어도 필자가 제대로 들은 표현 중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에만 사용한 것 같다.


버핏과 멍거가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핵심 논거는 암호화폐가 “생산적인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 이를 개발하여 생산이나 주거, 판매를 위한 공간이 필요한 이로부터 임대나 분양 수익을 받을 수 있고, 주식을 보유하면 기업으로부터 배당을 받거나 프리미엄을 받고 매각할 수 있지만, 암호화폐는 아무런 생산적인 수익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버핏은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것은 금을 거래하는 것이나 우표수집과 같다고 언급했다. 버핏은 사실 금을 소유하는 것에도 부정적인 입장인데, 예수가 예루살렘에 나타난 시점에 금을 보유하고 여태까지 보유하고 있었다면 연평균 수익률은 0.2% 수준에 불과하다는 구체적인 예시도 들었다. 쓸모없는 암호화폐가 설사 금과 같은 존재라고 할지라도 그 보유를 정당화할 만한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였다.


버핏과 멍거의 이야기에 암호화폐 마니아들은 억울해하며 반론을 쏟아낼지도 모르겠다. 90살 전후의 노인들이라 그런지 역시 최신기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암호화폐를 보유하면 암호화폐 거래량이 늘거나, 암호화폐 기반의 블록체인을 플랫폼으로 사용하는 서비스가 활성화될 때 임대수익이나 배당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버핏과 멍거가 암호화폐의 세세한 부분들과 최근 논의되고 있는 쟁점들을 다 이해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번 주총 현장에서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초고성장에 성공한 기술 기업들에 투자하지 못한 자신들의 한계에 대한 언급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버핏과 멍거의 암호화폐에 대한 판단이 미래 기술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오는 단견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독자분들의 판단을 위해 첨언을 하자면, 가치투자라는 것은 어떤 자산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추가적인 수익에 기반하여 자산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야심찬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있지만, 거래소를 통한 투자(혹은 투기)의 대상이라는 점 외에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자산으로서의 기능을 아직 입증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가치투자 입장에서 암호화폐의 가치가 과장되었다고 판단하거나, 위험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가치투자의 사고방식상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버핏이 암호화폐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을 했다면 오히려 훨씬 더 큰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70년이 넘는 성공적인 투자경력을 갖고 있고, 9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글로벌기업의 경영자인, 세계에서 투자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버핏의 평가에는 확실히 무게감이 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버핏(오마하는 버핏이 살고있고 버크셔해서웨이의 본사가 있는 미국의 도시 이름이다.)이 이번에도 역시 또 옳을지, 아니면 그야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가 가치를 창출하는 자산으로 발전해 나갈지는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필자는 오마하에 날아갈 정도로 버핏의 팬이고 추종자이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확정적인 판단은 시간이 조금더 지나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치라는 관점에서는 암호화폐 기술이 현재까지 보여준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너무 많은 거래가 일어났던 것만큼은 확실하다고도 생각한다. 뭐, 필자의 생각이 어떻든, 버핏과 멍거의 말에서 똥덩이 같은 표현에 집중하기 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담담히 암호화폐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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