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블나는 책과 사람_#2] 오세현 김종승 “우리는, 당신은 퍼스트무버다"
대기업 사업개발 리더들이 쓴 <<블록체인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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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고경태 2018년 8월2일 17:47
열불납니다. 아니 열블납니다. 불 말고 ‘블’입니다. ‘열심히 블록체인 블라블라’의 준말이라고 해둡시다. 블록체인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관해 뜨겁게, 또는 냉철하게 기록하고 조망한 책들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책의 주인공도 만납니다. 이름하여, 열블나는 책과 사람! 두번째 회는 정통 블록체인 도서 <<블록체인노믹스>>의 공동저자인 SK텔레콤 오세현(54) 전무와 김종승(45) 팀장입니다.

지난 7월9일 저녁 서울 종로2가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블록체인노믹스>>의 저자 오세현 전무(오른쪽)와 김종승 팀장. 둘 다 SK텔레콤에서 블록체인사업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 블록체인의 개념과 방법론에 관해 교과서적으로 기술한 이 책은 1만 부 넘게 판매됐다.


 
“어려워요.”

“드라이하다고 해주세요.”(웃음)

“둘 다 성격이 좀 빡빡해요.”(웃음)

어려운 책 한 권을 소개한다. ‘블록체인노믹스’라는 이름에서부터 뭔가 한 걸음 진도를 더 나간 포스가 느껴진다. “어렵다”는 평가에 저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뭐 문제 있어요? 우린 그래요”라는 식이다. 두 사람의 명함도 어렵다.

‘SK텔레콤 IoT/Data사업부 블록체인사업개발 Unit Unit장.’

‘SK텔레콤 IoT/Data사업부 블록체인사업개발 Unit Token X Hub TF 팀장.’

두 사람은 블록체인 업계의 최전선에서 신사업을 개척한다. 오세현 Unit장의 직급은 전무이사다. 대기업 블록체인 실무에 직접 관여하는 이들 중 고위직에 속한다.
“오서독스해요.”

“둘이 얼렁뚱땅하는 스타일은 못되니까.”

“신뢰를 주려면 재미없더라도….”(웃음)

오서독스한 책 한 권을 소개한다. ‘블록체인노믹스’라는 이름에서부터 학문적 자세가 느껴진다. 두 사람은 부인하지 않았다. “쉽고 캐주얼한 책들과는 다른 길을 갔다”고 했다. 블록체인 교과서를 자임하는 듯하다.

두 사람은 “기업 경영자나 관리자들에게 유용한 책을 쓰겠다”고 의기투합했다. 약 3개월의 집필기간 동안 예기치 않게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했다. 결과적으로 경영자 뿐 아니라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독자들의 손을 많이 탔다.

 

# 실용사례 풍부하면서 래디컬한 책


<<블록체인노믹스>>(한국경제신문, 2017년 11월 1쇄 발행)의 저자 오세현, 김종승 두 사람을 만났다. 7월9일 오후 6시 넘어 서울 종로2가역 근처의 한 스터디 카페에서 한시간반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엔 오후 3~4시 인터뷰 약속을 제안했다. 오 전무는 단칼에 거절했다. “업무시간이라 안돼요.” 이것이 ‘어려운 오서독스’다. ^^

 
어쩌다가 두 분이.

(이하 오) 지난해 4월 페북에서 블록체인 생태계에 관한 포스팅을 올렸는데….

(이하 김) 거기서 댓글을 주고받다가 “책 내면 좋겠다”고.

 

오세현 전무는 전도사다. 블록체인 전도사다. 블록체인 분야에서 한국은 퍼스트무버(선구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확신한다. 한국블록체인오픈포럼 의장에 이어 오픈블록체인산업협회 협회장 까지 맡게 된 배경이다. 지난해 초 여러 대기업을 돌며 고위 임원들에게 블록체인 메시지를 설파하다가 어떤 갈증을 느꼈다. 갈증은 책의 원동력이 됐다. 현장 경험은 실용사례를 풍부하게 해줬다. 인프라 기술로서 블록체인과 방법론을 기술한 책의 1부엔 오세현 전무의 그림자가 짙다.

김종승 팀장은 이론가다. 기술과 비즈니스 측면을 넘어 블록체인이 꾸며갈 사회경제적 모델에 관심이 많다. 당연히 거버넌스에 주목한다. 이 책을 래디컬하게 만든 힘이다. 블록체인에 관해 ‘근본적으로’ 생각하게끔 해준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독자가 있겠지만, 블록체인의 사회.경제적 함의까지 파헤치는 책은 처음이라고 반길 독자도 적지 않겠다. 사회경제질서 재구축 모델로서 블록체인을 기술한 책의 2부엔 김종승 팀장의 그림자가 짙다.

 
1부에 다양한 블록체인 도입 사례가 나옵니다. 블록체인을 도입한다는 게 뭘까요.

과거 중앙집중식으로 관리되던 것들을 이해관계자들 참여와 협력에 기반한 분산원장에 저장하고, 이를 위해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갖춘다는 거죠.

 
그게 꼭 블록체인이어야 하나요?

최상의 솔루션이 블록체인이라는 의미. 여러 주체들끼리 신원과 진본성 확인 등을 위해 협업해야 한다면 블록체인이 가장 효과적이죠. 신원 확인과 디지털 문서의 진본성 확인은 블록체인 이해의 출발점이기도 하고요.

 
“4차 산업혁명은 단지 프로파간다가 아니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기존의 관점이 뿌리부터 흔들린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관념들을 버려야 한다”고 쓰셨어요. 어떤 관념을 버려야 하나요.

4차 산업혁명을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로 보거나 수많은 응용기술의 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강조 설명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지능기술과 신뢰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해하자는 말이죠. 블록체인을 레거시(기존 기술)의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블록체인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는 문장이 세번이나 나와요.

어떤 사회에서는 만병통치약에 근접하겠죠. 가령 은행계좌 개설하는데 10일씩 걸리는 나라에서는. 의약품이 부족한 전쟁터에서 페니실린이 만병통치약이듯.

 
초연결, 초융합이라는 수사도 여러 번.

과거 IT산업이 가장 하기 힘들었던 작업이 합의 알고리듬에 기반한 확장성이죠. 블록체인은 그걸 제공해요. 이미 만들어진 걸 연결시켜주는 기능. 요런 부분은 만병통치약 측면이 있어요.

 
책 1부의 중요 키워드는 ‘범용기술’인데요.

블록체인은 단기적으로 붐업되는 ‘응용기술’이 아니거든요. 모든 요소들과 연결돼 경기파동을 촉진하는 장기적인 ‘범용기술’임을 부각시켰어요. 산업혁명은 범용기술 출현을 통해 시작되고 확산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암호화폐 생태계의 중심에 놓인 이더리움은 의미가크죠. 이더리움은 범용기술의 특징인 확산성, 개선성, 혁신 촉진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이더리움에 샤딩과 캐스퍼, 플라즈마와 같은 스캐러빌리티(Scalability, 확장성) 기술들이 적용되는 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거예요. 이 기술이 현실세계를 바꾸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블록체인은 탈중앙화가 핵심인데요. 중개 역할을 해온 제3자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블록체인 기술 도입이 확산하면 미들맨(중개인)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역할이 바뀐다고 봐요. 미들맨이 과거처럼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거나 정보 비대칭성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상황은 최소화되겠죠. 앞으로는 미들맨이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쪽으로 변한다고 봐요.

 
블록체인을 통한 자동화가 개인정보를 침해하고 국가에 의해 악용될 소지는 없을까요?

= 블록체인 상에서 개인정보 관리 방식은 기본적으로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어떠한 데이터를 공유하고, 공유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결정권을 개인이 가지게 되므로, 제3자에 의하여 악용될 소지는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 한국은 ICO를 가장 허용하는 국가?


오 전무님이 여러 대기업 돌며 얘기할 때 사장님들 반응은 어땠나요?

= 블록체인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본업에 충실하겠다, 그래도 혹시 글로벌에서 잘하는 사람들 있으면 소개해달라. 이런 식이었죠.

 
어떤 인터뷰에선가 “정주영식의 ‘하면 된다’ 정신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제가 만난 사장님들은 사실 본인이 퍼스트무버로 가야 하는 의사결정권자이고, 당신이 작정만 하면 뭔가 할 수 있는데 자꾸 선진사례를 달라는 요구를 접하면서 정주영씨 이야기가 그립더라고요. 벤치마킹보다는 실행이 중요합니다. 하면 된다, 해야만 한다! 우리가 일등 할 수 있다!

 
‘일등할 수 있다’는 근거는.

인공지능과 빅테이터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을 앞서기 어려워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출발은 축적된 데이터 자산인데 인구의 큰 격차로 인해 미국과 중국에 버금가는 디지털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블록체인은 기술과 비즈니스 차원에서 사전 요구조건이 많지 않아 자유롭죠. 인공지능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게 1980년대 초반인데, 부침을 겪는 동안 우리나라에선 장병탁 교수(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같은 분만 남아있어요.

게다가 한국은 블록체인의 컨센서스, 즉 합의 알고리즘에 해당하는 정치적 거버넌스까지 열려 있어요. 촛불시위를 보세요. 정치체제가 고착화된 중국과 비교해도.

 
암호화폐 거래량도 대단했죠. 김치 프리미엄.

투기적 수요가 있겠지만, 유동성 측면도 없지 않아요. 실제로 그렇게 투자할 만한 자금 기반이 있다는 거죠.

투기 하면 제 또래 이상 세대의 문제 같지만, 젊은 세대가 투자에 많이 참여했어요. 게임과도 관계가 있어요. 토큰 이코노미의 핵심인 인센티브 개념이 게임 시스템과 유사합니다. 게임하면서 자란 젊은이가 많은 나라. 젊은 친구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먼저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 가능성을 본 거죠.

초기 블록체인 시장을 오염시킨 투기 세력이 문제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투기판 이미지를 만들어 놨어요. 블록체인의 본질과 가치를 사람들이 편협한 시각으로 보게 하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이분법으로 나눠 보기도 해요.

지금 시점에선 어쩌면 암호화폐보다 암호토큰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요. 암호화폐를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코인으로만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죠. 토큰은 디지털화된 권리증명을 의미해요. 블록체인상에서 개발되는 탈중앙화 서비스들은 토큰이 인센티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토큰 없이는 블록체인 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없죠. 둘은 떨어질 수 없어요.

 
ICO(신규코인공개)에 관한 정부 정책은 어떻게 보세요.

제도가 아예 없으니 좋지 않죠. ICO를 하면 안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나라는 역설적으로 가장 허용하는 국가로도 볼 수 있어요. 법은 없고 엄포만 있는데 어떻게 막아요. 실제로 국내에서 ICO를 진행한 업체도 있어요.

ICO는 새로운 시장 메커니즘을 전제합니다. 기존 규제의 틀로 보자면 단순히 펀딩을 받기 위해 내재가치가 없는 코인을 파는 행위로만 해석되죠. 하지만 ICO가 지향하는 토큰 생태계는 훨씬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ICO에 대해 획일적으로 규제 여부에 대한 찬반 논의를 넘어 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토큰 생태계에서는 지속적인 토큰 사용자가 곧 투자자이며 토큰의 가치가 올라가면 다수의 사용자들에게 분배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 유형의 고정자산이 토큰화되면 사용권만 분리되어 쉽게 거래될 수 있습니다. 토큰은 기존 소유의 개념을 바꾸고, 분배의 혁신에 집중함으로써 기존 주주자본주의의 폐단과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블록체인 기술로 돈 벌겠다”면 환영 못 받아


책 2부는 블록체인이 꿈꾸는 사회를 이야기합니다.

블록체인은 중앙집중적 통제를 최소화한 사회를 지향하지만 그렇다고 알아서 놔두면 잘된다는 주의도 아니거든요. 블록체인의 근간에는 게임이론과 메커니즘 디자인이 깔려 있어요. 시장의 룰을 잘 디자인해서 각 주체가 자기 이해관계에 맞게 역할을 하고, 이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사회. 여기서 신뢰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수학적, 정치학적으로 풀어낸 게 블록체인이죠. 경제학에서는 메커니즘 디자인이라고 하고.

 
책 속에 나오는 ‘카탈락시’ (자율적이고 창발적인 시장경제)개념과 맞닿네요.

2012년에 앨빈 로스(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1951년생)가 ‘마켓 디자인’으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합니다. 그 기원을 추적해 가면 프리드리히 하이예크(1899~1992)가 얘기한 카탈락시에 근접해 있죠. 카탈락시는 원래 하이예크의 스승인 폰 미제스(1881~1973)가 쓴 개념이에요. 카탈락시는 다양한 개인들간 상호 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발적 질서를 의미합니다. 중앙의 권력이 질서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 자기 노력을 다할 수 있는 경제 메커니즘을 잘 만들어 돌아가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 현재에 적용하면 그 인센티브 구조가 비트코인인 셈이고요.

 
블록체인 책에서 복잡계 경제학 이론 언급한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책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찾아간다는 ‘균형이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경제주체들의 역동성을 강조한 복잡계 경제학에 기대어 블록체인의 미래를 기술한다)

전세계적으로 파급력이 큰 IEEE(전기전자학회,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가 블록체인 세미나를 서울에서 열었을 때 김종승 팀장이 복잡계 경제학을 중심으로 토큰이코노미 발표를 한 적도 있어요.

그 뒤 미국의 한 학계 인사가 발표자료 잘 봤다면서 복잡계 경제학 함께 연구하자는 메일을 보냈어요 저만의 생각이 아닌 걸 확인했어요. 블록체인에 관해 각각의 경제학파들 시각을 정리한 어느 외국 학회 자료를 굉장히 흥미롭게 본 적도 있는데, 이미 이 분야에 관한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거죠.

 
사회운동 진영에선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꼭 그렇지 않아요. 대표적으로 협동조합 운동 진영에서는 블록체인을 중요한 기술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생태계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중개자 없이 효율적으로 커뮤니티를 키워나간다는 점에서 협동조합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존 공유경제 서비스의 독점적 지위에 맞서 블록체인 기반의 새로운 공유경제 모델도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기업과는 무엇이 다를까요.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사회운동이든 블록체인은 결국 사회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하는 거죠. 기업이 과거처럼 독점해서 이윤을 극대화하겠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SK그룹 최태원 회장님은 어떤가요.

최 회장님은 인프라 공유 등 사회적 가치 쪽에 굉장히 드라이브를 걸고 계세요. 매출에 손상이 오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하시죠. 하반기에는 사회적 가치 확대에 우선을 둔 임원 평가 기준이 나올 거예요. 이러다 보니 ‘사회적 가치가 도대체 뭐냐’는 담론이 시작됐어요. ‘블록체인 기술로 돈을 이렇게 벌겠습니다’고 하면 환영 못 받는 분위기이고요.

 
SK텔레콤에서 준비하는 일을 소개해주신다면

남들이 절대 쫓아올 수 없는 걸 하는 거 아니고요.(웃음) 특별하지 않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럼에도 우리 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그게 뭔가요.

디지털 세상은 현실세계의 일부분만을 반영하죠. 현실세계의 일을 모바일로 전이할 때 뭔가 사람들의 문화나 습관에서 장애가 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맞춰주는 도구가 트러스트(신뢰)라고 봤어요. 트러스트라는 것은 온라인상에서 내가 나임을 확인시켜주고 내가 가지고 있는 권한까지 확인시켜주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가령 무인 점포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신용카드를 들고 갔을 때 사용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그랬을 때 달라지는 세상이 저의 모든 비즈니스모델과 매출의 근거가 되는 거죠. 그 플랫폼을 준비해요.

나를 증명하는 시스템이네요.

내가 나라는 사실 뿐 아니라 권한, 의사결정까지. 가령 부동산 거래를 할 때, 내가 나이고, 내가 집을 팔 권한을 가진 게 맞고, 내가 집을 팔려는 결정을 했다는 것까지 블록체인의 기본 요소로 해결할 수 있는 거죠.

대기업들이 개발중인 블록체인은 대부분 접근에 제한이 있고 암호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입니다. 오세현 전무님은 대기업이 다수 포함된 오픈블록체인산업협회 대표이시기도 하고.

2018년 4월 창립한 오픈블록체인산업협회는 퍼블릭과 프라이빗의 구분이 없어요. 생태계 활성화가 목적이므로 대기업 외에도 다수의 스타트업과 로펌, 교육기관, 정부 산하기관에서 참여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프라이빗 블록체인과 퍼블릭 블록체인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의 접근하지만 궁극적으로 신뢰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지향점은 동일합니다.

 
책 쓰면서 가장 영감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첫번째는 오세현 전무님.(웃음) 두번째는 미국 법학자 프리마베라 드 필리피입니다. 이 분 논문을 많이 읽었는데, 블록체인에 관해서 인스터튜셔널 테크놀러지(제도적 기술)라는 표현을 써요. 그 말에 감동을 받았어요. 필리피 박사는 블록체인이 지향하는 탈중앙화 논의를 ICT를 통한 기업 경영혁신 차원에서 사회경제 구조의 혁신에 대한 논의로 확장시켰거든요. 거버넌스 이슈를 포함해 사회경제 시스템 측면에서 블록체인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 거버넌스 논쟁이 쌓이고 쌓여야


미래는 블록체인일 수밖에 없나요?

아뇨. 그건 과한 표현. 블록체인이 기술적으로는 정말 많은 것을 바꾸긴 하겠죠. 하지만 뭐 갑자기 촛불시위 같은 게 사회를 흔들면 기술은 잽이 안되게 되고. 불현듯 남북통일이 돼 버려 블록체인 이슈가 낄 자리가 없게 될 수도 있고. 기술보다 사회가 우선이기 때문이죠.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 빗대 ‘프로토피아’(process+topia)라는 말을 썼어요. 정지상태가 아닌 운동상태로서.

프로토피아는 제가 처음 쓴 개념은 아니고 케빈 켈리가 <<인에비터블>>(The Inevitable)이라는 책에서 쓴 단어입니다. 사실 우리의 미래는 정해진 건 없고 계속 바뀌잖아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나 어떻게 진화할지 예측을 할 수 없고.

반면에 저는 빠르게 마구 번지는 것들이 무서워요. 우리사회 전체가 오래된 신뢰를 기반으로 품격 있게 발전하는 형태가 아닌 것 같아서. 새로운 사람들이 마구 등장해 그들이 쉽게 타이틀을 가져가는 게 무섭고. ICO 하는 분들 보면 저게 말이 되나 하는 시나리오를 갖고 추진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달나라를 사고 파는 토큰을 발행하는 다이아나(Diana) 프로젝트도 있던데.(웃음)

 
페이스북, 구글 등 기존 인터넷 시대의 강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요.

기존 디지털 자이언트들도 블록체인이 몰고올 변화를 예의주시하겠죠. 블록체인을 도입하든 도입하지 않든 그들의 지위가 단기간에 무너지겠어요? 다만 블록체인의 도입 범위는 보안 목적으로 분산원장을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것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탈중앙화 서비스(dApp)를 출시하는 것까지 다양하겠죠. 결국은 디지털 자이언트 vs 스타트업 대결 구도보다는 중앙화 시스템 vs 탈중앙화 시스템 진영 싸움으로 재편되지 않을까요?

 
앞으로의 블록체인 발전속도에 대한 전망을 하신다면.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비상임 이사는 “3년안에 블록체인 플랫폼의 시대가 온다”고.

자리를 제대로 잡으려면 부침이 있을 텐데, 20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몇 년 전 알파고에 흥분했지만 금방 식었잖아요. 그렇다고 끝은 아니고 계속 가겠죠.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예요. 저랑 김종승 팀장만 잘 해도 블록체인 시대가 3년 안에 올 것 같은데.(웃음) 저희가 잘하게 사방에서 놔두질 않네요.

사실 카카오페이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요. 하지만 블록체인 서비스라고 안 하죠. 보안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이니깐요. 그런 시도는 앞으로 계속 많아지겠죠.

 
네이버와 카카오도 하반기에 블록체인 서비스 발표를 해요.

저희 같은 대기업을 좀 더 빨리 가게 만들겠죠.

무수한 시도 중의 하나라고 봐요. 다만 아직 진짜 고수 개발자들이 막 달라붙는 시점은 안 온 듯해요. 블록체인은 거버넌스 문제이기 때문에 진짜 철저하게 논쟁이 쌓이고 쌓여서 뒷받침이 돼야 하거든요. 법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등등. 이제 시작입니다. 갈 길이 멀어요.

 

오세현 김종승의 열블 조각


1. 열블나는 번역


Cryptocurrency
= 암호통화

(<<블록체인노믹스>>에서는 ‘암호화폐’라 표현했지만 ‘암호통화’가 맞다. Currency는 ‘흐른다’는 라틴어에서 왔으므로 통화(유통화폐 流通貨幣)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

= 암호화폐

(직역하면 ‘암호통화’지만, 특정 국가에서 특정 기간 유통된다면 ‘화폐’로만 표현해도 좋다. 최근에는 Cryptocurrency보다는 Cryptoasset, 즉 암호자산이라는 단어도 많이 쓴다 ‘증권’의 성격 때문.)


2. 열블나는 정의


돈이란 무엇인가
= 가치의 척도.

(가치를 측정할 수 없으면 돈이라 부를 수 없다.)

= 채권-채무관계에 대한 사회적 구성물.

(돈은 상품이나 자산이 아닌 경제적 권리를 의미하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증표이기 때문.)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 모터 레고, 센서 레고, 바퀴 레고 등과 같이 모듈화돼 있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

=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눠가지는 규칙을 공동 관리하는 질서.

 

3. 열블나는 추리


사토시 나카모토는 누구냐
= 그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비트코인은 오픈소스이므로 소스 개발에 참여한 모두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생각.)

= 존 내쉬 또는 존 내쉬 사단.

(존 내쉬(1928~2015)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모델. 이상적 화폐에 대해 그가 언급한 내용 중 암호화 기반, 탈중앙화, 디지털, 초국가, 인플레이션 제로 등의 개념이 있었다. 비트코인의 핵심이 게임이론에 기반한 인센티브 메커니즘이라는 점에서 추론해볼 수 있다.)

 

4. 열블나는 추천


볼 만한 책
= 추천하고 싶은 책은 없다.

(구조가 심플하더라도 스마트 컨트렉트를 가상으로 구현해보는 프로젝트를 통해 배우는 편이 더 낫다. 가령 단톡방에서 모임날짜 정할 때 효과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도 리얼 컨센서스 알고리듬이며 블록체인 메커니즘의 일종.)

=
= <Blockchain and the Law>(2018. 4)

= <Radical Markets>(2018. 4)





(위의 책은 프리마베라 드 필리피(하버드대 로스쿨 연구원)와 애런 라이트(예시바 대학)의 공저. 아래 책은 에릭 포스너(시카고대 로스쿨 교수)와 글렌 웨일(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수석 연구원)의 공저. 둘 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블록체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 블록체인은 단지 소프트웨어 공학이 아니므로 법, 규제, 질서, 민주주의, 시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변화 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 모두 곧 번역본이 나올 예정)





오세현 :대학과 대학원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다. 인포섹과 인젠에서 보안 분야 업무를 경험했고, 동부그룹, IBM, KT에서 다년간 신사업 개발 부서를 거쳤다. 공학과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백그라운드가 책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2016년 ㈜SK에 오면서 블록체인이 어떤 미래사회를 만들 것이며, ICT 기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검토하면서 본격적으로 블록체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2017년 12월 SKC&C에서 SK텔레콤으로 건너와 블록체인사업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윤리경영과 지원시스템>>(공저, 21세기북스, 2006년)이 있다.

 

 

 

 

 

 

 

 

 김종승 : 과학철학 방법론으로 학부 졸업논문을 썼고 대학원에서 심리철학을 공부했다. 당시 철학과에는 컴퓨터 사이언스와 논리학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고 논리학/심리철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지도교수의 영향력 아래 C언어를 배우고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자연스럽게 졸업 후 IT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삼일회계법인, KT 전략기획실을 거쳐 2017년 1월 SK텔레콤에 입사한 뒤 IoT(사물인터넷) 조직에서 일하면서 블록체인 사업 발굴에 주력했다.

지은 책으로 <<앱경영시대가 온다>>(공저, 한국경제신문, 2011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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