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어쩌다 블록체인에 빠지셨나요?
[인터뷰]블록체인법학회 주도하는 이정엽 대전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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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김병철 2018년 8월22일 11:42
오는 24일 블록체인법학회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창립총회를 연다. 블록체인 법과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현직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업계 전문가 등이 모여 학회를 구성하는 건 처음이다.

현재 150여명의 정회원으로 구성된 블록체인법학회는 창립과 동시에 12개의 연구 프로젝트를 공개할 계획이다. 이 연구에는 임일혁 대전지법 부장판사, 김욱준 수원지검 부장검사, 홍은표 대법원 재판연구관, 박성준 동국대 교수(블록체인연구센터장),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 등이 참여한다.

코인데스크코리아는 지난 20일 블록체인법학회 창립을 주도하는 이정엽 대전지법 부장판사를 만나 그의 고민과 학회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는 "블록체인 관련한 법과 제도가 너무 없다. 이걸 협업으로 디자인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 학회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법학회 창립을 주도하는 이정엽 대전지법 부장판사. 사진 김병철 기자.
블록체인법학회 창립을 주도하는 이정엽 대전지법 부장판사. 사진 김병철 기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학회


-블록체인 기술이 법에 가로막혀 있다고 보시나요?
"저는 가로막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것도 없는 거지. 형법, 다단계법(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외환거래법 등 현행 법률에 저촉되지 않고, 자유롭게 블록체인 기반 기술을 발전시키고 조직을 창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나 특례법이 없는 상황인 거죠.

 

해외 송금 수수료가 60조원이라는데, 리플(Ripple)이 그걸 없애겠다고 나온 거예요. 명백한 규정 위반임에도, 이런 건 특례로 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입법이 돼야 공무원은 봐줄 수 있는 거죠.

 

제 생각에는 정부에 계신 분들 중에 (블록체인에 대한) 공부가 많이 된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찬반이 갈리는 문제 지점 자체가 없어요. 앞으로 블록체인법학회에 가면 이런 이슈가 있고 찬반 양론이 있는데 '연구자들은 이쪽을 지지하고 있구나'를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블록체인법학회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블록체인은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조직과 전혀 다른 형태예요. 중앙기관이 없음에도 굴러가는 조직이죠. 학회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려고 해요. 원래는 대표자도 없고 운영위원회만 만들려고 했는데, 법인은 대표자가 있어야 한다는 법 때문에 어쩔 수 없더라고요.

 

(블록체인의 철학은) 이렇게 기존 법률과 어긋나는 게 너무 많아요. 블록체인 기본법만 만들어서 되는 게 아니라 상법, 형법 다 조금씩 바꿔야 해요. 아니면 다 걸리거든요.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네트워크에서 보상을 받는 것과 같은 블록체인 기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게 법률적으로도 자유로워야 하는 것도 중요해요"

-블록체인 기술 기반 학회라는 건 뭔가요?
"연구자들이 연구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대중에게 계속 피드백을 받을 거예요.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연구자의 평판이나 연구 성과를 점수화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정회원은 연구에 10~100점을 줄 수 있고, 일반회원 1~10점까지 줄 수 있는 거죠. 평가를 점수화하면 어떤 형식으로든 나중에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을 거예요.

 

이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위변조가 안되면, 연구 성과물에 대해 평가하는 기본 단위를 유통하거나 거래할 수 있는 시기가 나중에는 올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학회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 학계는 유명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이 얼마나 많이 피인용되느냐로 동료 평가(peer review)를 받는 셈이에요. 정교하지 않죠. 연구결과에 대한 동료 평가를 점수화하는 우리 학회가 진일보한 조직이죠.

 

다른 학회는 오프라인에서 발표하고 토론하고 그걸 책으로 내는 건데요. 저희는 온라인 중심이라 외국 연구원도 협업할 수 있어요. 지금은 검색이 안되니까 (학계에서) 누가 연구를 하더라도 발표되기 전까지 몰라요. 근데 저희는 현재 연구 중인 것과 연구 결과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죠.

 

아직 블록체인 법률 제도에만 집중한 전문가 집단은 전 세계적으로 없어요. 섣부르지만 블록체인 연구의 세계적인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네트워크가 커지고 예를 들어 전 세계 연구자 1만 명이 모인다고 하면, 블록체인 모델링이 완성되면 다른 분야 모든 학술단체의 플랫폼이 될 수도 있어요. 가슴 뛰지 않아요? 하하하."

기존에 없던 새로운 자본의 탄생


-어쩌다가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제가 개인정보 문제를 많이 다뤘어요. 정보가 자원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그 말 뜻을 잘 모르는 분이 많아요. 자원은 누구 소유라는 걸 분명히 하면 자본화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자원은 부동산, 채권, 원자재였잖아요. 이제는 이 사람의 평판, 능력, 좋아요 개수가 토큰화돼서 자본화되는 거예요. 전통적인 자본과 다른, 새로운 자본이 나오는 거죠.

 

(블록체인을 통해서) 내 명성을 토큰화해서 팔거나 이전할 수가 있어요. 그게 저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 포스트 자본주의라고 생각해요.

 

잠자던 자본이 일어나고 엄청난 속도로 유통되면, 전통적인 나라는 그런 자본을 가진 나라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이쪽에 어마어마한 자본이 모이는 거예요."

-말씀하신 포스트 자본주의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이런 진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조직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어요. 저는 이런 사상적 흐름을 ‘블록체이니즘’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블록체인하면 자꾸 기술 얘기만 하는데 자본주의, 민주주의도 걸려있어요. 블록체인 연구가 법학, 경제학 혹은 컴퓨터공학에 국한되지 않다는 얘기에요.

 

중앙기관이 없는데 개인들 사이에 협업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죠. 평가 알고리듬을 다수결로 만들어야 하는데, 단순 다수결도 안되고 어떤 게 공정한지 평가가 들어가야 해요."

-그런 변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지금 약간 수평적 조직들이 떠오르고 있거든요. 옛날에는 그게 안됐었어요. 업무 평가수단도 없었고 수직으로 권력관계로 지시하지 않으면 안됐어요. 그런데 (이젠 블록체인으로) 블록체인법학회도 평가하잖아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서 연구 프로젝트 평가를 토큰으로 받으면 직급 상관없이 평가받고 그게 연봉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직급이 없어지고 능력으로 평가하는 수평적인 조직이 될 수 있는 거죠."


거래소는 'G마켓'이 아니다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모든 금융투자상품의 역사는 거래소의 역사'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적어도 암호화폐 상장을 거래소에 맡기면 안된다고 봐요. 상장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신뢰를 획득하지 못했어요.

 

한국거래소도 공기업이지만 상장 요건을 심사해서 상장시키잖아요. 정부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한국거래소 직원은 친인척 통한 거래도 못하고 주식 투자도 못해요. 위반하면 강력한 형사적 제재를 받고요.

 

근데 지금 암호화폐 거래소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너무 돈 벌기 쉬운 거예요. 상장할 때 돈 받고, 그 돈으로 코인 조작을 한다고 생각해요. 직원이 상장 일정을 아는 것 자체가 주식시장에선 말이 안되거든요. 그런 걸 안할 거라는 신뢰가 없다고 봐요."

-그러면 일본이나 미국처럼 거래소 인가제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그렇죠. 사실 은행 역사를 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미국 민간은행 연합체인데 지금은 공적기관으로 올라갔잖아요. 미국은 그런 경험이 있어요.

 

거래소는 상당히 공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봐요.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을 매칭해주는 일종의 시장이에요. 지마켓, 옥션처럼 코인 팔아서 수익내는 곳이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 돼왔죠.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정부에서 빨리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런데 정부에 있는 분들도 사실 연구가 안돼서 막연히 비난만 할 수는 없어요. 민간의 전문가들이 충분히 연구해서, 정부 분들이 제도를 디자인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학회를 만든 거예요."

아래는 블록체인법학회 창립총회 직후 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연구 주제다.

1. 암호화폐, 암호자산 거래소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2. 블록체인법학회 보상체계 연구
3. 블록체인과 시민사회
4. 블록체인의 회계상 인식 및 과세부과 방안 연구
5. 콘텐츠 제작권에서의 블록체인 활용
6. 블록체인 - 프로그래머블 이코노미를 위한 도구
7. 스마트컨트랙트의 민사법적 쟁점
8. 블록체인 기본법 제정 연구
9. 외부성의 내부화 도구로서의 블록체인 혁신
10. 블록체인과 형사법
11. 규제샌드박스를 통한 블록체인 활성화 방안연구
12. 블록체인법학회 온라인 플랫폼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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