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없는 퍼블릭 블록체인: 기본소득의 가능성
공공분야 블록체인 현장 르포_#3: 독일의 자격증명 방식 퍼블릭 블록체인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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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산
전명산 2018년 9월14일 13:40
통상 블록체인은 크게는 퍼블릭 블록체인(Public Blockchain)과 프라이빗 블록체인(Private Blockchain)으로 구분된다. 더 자세하게 나누면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컨소시엄 블록체인(Consortium Blockchain)과 프리이빗 블록체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퍼블릭 블록체인은 암호화폐를 가지고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것으로, 사전적 정의는 허가 없이 아무나 참여할 수 있고 블록체인의 데이터에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블록체인을 의미하다.

통상 퍼블릭 블록체인은 해당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컴퓨터 자원을 해당 네트워크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제공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제공한다.  코인마켓캡과 같은 암호화폐 시장에 올라와 있는 대부분의 코인들은 퍼블릭 블록체인 구조이거나, 아직은 기술을 개발 중인 단계이지만 장기적으로 퍼블릭 블록체인을 구축하려는 프로젝트들, 그리고 블록체인을 직접 개발하지는 않지만 이더리움과 같은 플랫폼형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하는 토큰들이다. 또한 퍼블릭 블록체인은 그 특성상 블록체인에 기록된 데이터가 100% 공개된다. 누구나 블록체인에 접근해서 데이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통상 암호화폐가 없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개인 혹은 기관들이 독자적으로 자신들만의 블록체인을 운영하는 것으로, 해당 블록체인을 작동시키는 모든 자원을 바로 그 개인이나 기관이 제공하기 때문에 굳이 암호화폐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블록체인의 소유 주체가 명확한 것이다. 또한 해당 네트워크 참여하거나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 역시 해당 블록체인의 소유자가 100%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업이나 정부가 블록체인을 도입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기업이 오롯이 노드들을 지배할 수 있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대한 통제가 쉽고, 민감한 데이터를 외부에 유출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퍼블릭 블록체인보다 안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모든 노드들을 해당 블록체인의 소유자가 100%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소유자가 블록체인 데이터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먼 브라더스와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힌다면, 설령 그들이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데이터를 담았다고 하더라도 그 데이터에 손을 대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그나마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데이터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내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다. 그들 스스로 책임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라이빗 블록체인 위에서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애초 블록체인이 주목을 끈 이유는 그 아키텍쳐만으로도 데이터의 투명하고 안전한 관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즉 블록체인을 도입하면 해당 블록체인 상에 존재하는 디지털 데이터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블록체인 외부의 제 3자(TTP, trusted third party)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결국 데이터를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제 3자-국가(정부)-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공공 영역에서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퍼블릭 블록체인 프라이빗 블록체인 컨소시움 블록체인
소유 주체 소유권이 각 노드들에게 분산되어 있음 (분산 소유권) 기관 혹은 개인이 소유함 두개 이상의 기관 혹은 개인들이 소유권을 나누어 가짐
암호화폐 유무 인센티브 제공을 위해 암호화폐가 거의 필수적 소유 주체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 자원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센티브 구조가 필요 없음 소유 주체들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 자원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센티브 구조가 필요 없음
네트워크 참여 자격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참여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또한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됨 소유자가 허락하는 개인 혹은 기관 소유자들이 허락하는 개인 혹은 기관
최종 신뢰 보증자 블록체인 네트워크 그 자체 해당 블록체인을 소유한 기관 혹은 개인 해당 블록체인을 소유한 기관들 혹은 개인들

 

한편,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소유 주체를 조금 확장하여 복수의 개인 혹은 기관이 공동으로 블록체인을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은행권이 공동으로 ID를 관리하는 경우 해당 ID 시스템을 사용하는 모든 은행들이 하나의 블록체인을 만들고, 노드를 나누어서 운영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 구조는 여러 주체들이 하나의 블록체인에 각자 노드를 가지고 참여하기 때문에, 이 구조에서 데이터를 조작하려면 다른 주체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컨소시엄 블록체인에서는 하나의 주체가 자의적으로 데이터를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프라이빗 블록체인보다는 안전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신뢰성의 문제 혹은 데이터 조작 가능성의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투표 시스템을 만들어서 선관위와 법원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공동으로 관리한다고 할 때, 어떤 시점에 독재 정권이 들어서서 데이터를 조작하라고 총칼을 들이대는 경우 결국 데이터의 무결성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컨소시엄 블록체인에서도, 비록 수정 자체가 어려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제 3자를 신뢰해야 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소시엄 구조에서는 조작 가능성이 획기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블록체인 기반의 투표 시스템을 논의할 때 선관위와 더불어 선관위가 데이터를 조작하지 않는지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감시 노드 혹은 아예 선관위와 시민단체가 컨소시엄으로 노드를 운영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공공 영역의 블록체인을, 예컨대 블록체인 기반의 투표 시스템을 컨소시엄 블록체인으로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선거 데이터는 오로지 정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정부가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컨소시엄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시민단체들도 선관위와 동일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정보의 투명한 공개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진전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일까?

당장 시민단체가 어떤 자격으로 노드 운영에 참여하느냐, 그들의 대표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 다른 시민 단체가 아니고 하필 그 시민단체를 믿을 근거는 무엇이냐 하는 질문들이 나오면, 백 가지 대답을 할 수는 있어도 대답 자체가 옹색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모델에서도 역시 신뢰해야할 제 3자(시민단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공공 영역에서는 컨소시엄 블록체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전세계에서 진행되는 공공 영역의 블록체인을 나름 추적하고 조사해온 필자로서는 여전히 한쪽에 께름칙한 면이 남아 있었다. 달리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할 수 없기에 선택하게 되는 차선이랄까?

한국언론진흥재단 디플로마 과정에 참여한 기자들과 함께 독일 블록체인연방협회의 요하임 로캄프(Joachim Lohkamp) 이사를 만났을 때, 그는 공공 영역의 블록체인은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협회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독일 블록체인연방협회 요하임 로캄프 이사. 사진=허경주


 

지금까지 필자가 알고 있는 공공 영역의 프로젝트들은 거의 대부분 프라이빗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하기에, 공공 영역에서 퍼블릭 블록체인을 사용한다는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같이 간 기자들 역시 그 말이 의아했기에 그것이 개인의 의견인지 협회의 공식 의견인지 재차 질문이 있었고, 그는 이것이 협회의 공식 의견이라고 명확하게 확인해주었다. 이에 대해서는 독일 정부와도 어느 정도 교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어떤 구조의 블록체인이냐고 질문하니 그는 Proof of Authority(PoA, 자격 증명)를 언급했다. PoA란 인증 받은 개인들(Peer)이 노드 운영에 참여하는 구조로,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인 개빈 우드(Gavin Wood)와 패리티 테크놀로지(Parity Technologies)가 주창한 것이다. 즉 특정한 자격을 인증(Authority)받은 개인들에게 노드를 운영할 자격을 부여하고, 이들이 블록(데이터)을 생성하고 검증하도록 함으로써, 에너지 낭비가 심하고 속도가 느린 PoW(작업증명)의 단점과, 지분이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PoS(지분증명, Proof of Stake)나 DPoS(위임지분증명, Deligated Proof of Stake)의 단점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PoA의 핵심 컨셉은 해당 블록체인과 관련하여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일정한 자격을 검증받은 후 동등한 (peer) 권한을 가지고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것이다. PoW는 엄청난 연산을 수행함으로써,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과 더불어 결국은 막대한 연산 능력을 가진 자들이 네트워크를 장악하게 되는 단점을 가지고 있고, 이 단점 때문에 개인들(peer)의 독립적인 마이닝이 아니라 마이닝풀(Mining pool)로 리소스가 집중되었고, 또한 해시파워를 특정 국가(중국)로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PoS나 DPoS는 엄청난 계산을 하는 문제는 제거했지만, 결국은 지분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장악하여 최대의 수혜자가 된다는 단점이 있다. 즉 돈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좌지우지하며 자신들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금권정치를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DPoS의 대표주자인 EOS는 거대 지분을 가진 4개의 BP가 다른 17개의 BP 선정 및 투표를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에 반해 PoA는 그 권한을 커뮤니티 내에서 자격을 가진 개인에게 동등하게 배분함으로써, (요하임 로캄프의 말에 따르면) 커뮤니티가 블록체인을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격이 확인된다면 노드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실질적으로 동등한 권한을 가진 노드(peer)의 자격을 획득한다. 이러한 PoA는 사실 이미 프라이빗 혹은 컨소시엄 블록체인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컨소시엄 블록체인에서는 명확한 승인 과정을 거쳐 노드 운영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PoA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PoA 구조는 암호화폐로 작동하는 퍼블릭 블록체인에도 사용될 수 있다. PoA 구조의 퍼블릭 블로체인은 일정한 자격 요건을 두고 그 자격에 맞는 사람들이 참여해서 노드를 구성하고, 노드 운영에 참여하는 댓가로 해당 개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면 된다. 퍼블릭 블록체인 가운데 POA Network, Kovan, VeChain 등의 프로젝트들이 PoA를 실험하고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보스코인 역시 독자적인 탐색을 통해 PoA와 유사한 컨셉을 구체화했다. 보스코인은 KYC를 수행하고 10,000 BOS 이상을 시스템에 위탁한 사용자들, 즉 일정한 자격 요건을 만족하는 사용자들에게 멤버의 자격을 부여하고 노드 운영에 참여할 권한 및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의회 네트워크에 참여할 권한을 제공한다. 블록체인 위에서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1인 1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퍼블릭 블록체인에 사용한 PoA와 비슷한 구조로, 공공 영역 블록체인에서 일정한 자격 요건을 만족시키는 개인들이나 단체들을 모집해서 그들에게 노드 운영을 맡기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자격 기준은 아마도 필요에 따라 여러가지 기준들이 채택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을 뽑은 것처럼 무작위 추출을 기준으로 할 수도 있고, 노드 운영에 필요한 특정한 교육 이수를 자격 조건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투표 시스템을 운영한다면, 19세 이상의 성인 중 전과 기록이 없고 노드를 관리할 수 있는 컴퓨터 기본 소양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후, 그들에게 투표 시스템을 운영하는 노드(컴퓨터)를 지급하고 해당 노드를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필요하다면 여기에 적절하게 연령 안배, 성 안배, 지역 안배 등을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하임 로캄프는 ‘독일은 공공 영역의 블록체인을 퍼블릭 블록체인 구조로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직 그 부분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 부분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서, 해당 블록체인에서 다루는 데이터가 공개되면 안되는 민감한 정보인지 혹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이 더 좋은 데이터인지에 따라, 혹은 노드 운영자의 자격 요건을 구성하는 적절한 방안들이 얼마나 잘 짜여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리라. 다만 지금은 공공 영역의 블록체인은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성에 공감대가 있는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PoA 구조가 제시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조금만 더 상상을 해보자. 노드를 운영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비용이 들어간다. 이를 세분화하자면 컴퓨터(하드웨어) 구입 비용, 네트워크 사용 비용 그리고 부품 교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같은 유지보수 및 관리비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노드를 운영하는 것은 매일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컴퓨터가 이상 없이 작동하도록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작동에 이상이 없는지 모니터링하고 고장나면 수리하는 등 노드 운영을 맡은 개인들이 일정한 노력을 투여해야 한다. 암호화폐 기반의 퍼블릭 블록체인은 이 모든 보상을 해당 블록체인에서 작동하는 암호화폐로 지급한다. 공공 영역의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도 역시 하드웨어 구입 비용, 네트워크 사용 비용 및 관리비용 등을 누군가 내야하는데, 시스템 운영과 관련된 자원-하드웨어 비용, 네트워크 이용 비용, 관리 비용 등-을 정부가 제공한다면 이 블록체인은 암호화폐 없이도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즉 퍼블릭 블록체인을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인센티브를 정부가 제공한다면,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의 공공 서비스가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다시 해석해보면, 개인들이 정부 혹은 공동체의 핵심적인 자원 운영을 위임 받아 관리하고, 그 댓가로 개인들은 정부 혹은 공동체로부터 일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개인들이 공공 서비스를 작동시키는 인프라에 필요한 관리 노동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한 것이다. 기존에는 국가가 모든 사회 인프라를 직간접적으로 작동시키고 책임지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 사회 인프라를 작동시키는 작업에 개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간단하고 쉬운 사례로 투표시스템을 예로 들었지만, 네덜란드가 실험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 ID 관리 시스템은 현재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 테스트를 하고 있지만, 블록체인 상에서 개인정보를 하나도 다루지 않기 때문에 이 구조를 그대로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전환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아니, 논리적으로 추론하자면 네덜란드 정부는 어떤 이유로든 무너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향후 스마트 컨트랙트 기술이 고도화되고 블록체인 위에서 암호화된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다면 공공 영역의 서비스를 굳이 프라이빗이나 컨소시엄 블록체인 형태로 구축해야 할 이유가 점점 없어질 것이다. 그 시점이 되면 상당히 많은 영역의 행정 시스템, 관리 시스템을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시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개인들이 공공 서비스를 위한 퍼블릭 블록체인 인프라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이에 대해 보상을 받는 구조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공 영역 블록체인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의 핵심적인 인프라를 작동시키는 데 참여하는 개인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더 상상을 해보면, 이와 같은 구조 위에서 국가 기간망을 작동시키는 블록체인과 빅데이터와 AI를 작동시키는 컴퓨팅 파워-블록체인과 연동해서 작동하는 거대한 크라우드 컴퓨팅 자원-를 해당 공동체에 속한 평범한 개인들이 제공하고, 이를 통해 다수의 국민들이 소득을 얻는 것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미 노동의 많은 영역에서 인간은 AI와 빅데이터가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인간이 노동을 해서 소득을 얻고 그것으로 재화를 구매함으로써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는 순환구조로 작동해왔던 지금까지의 경제 생태계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AI와 빅데이터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를 사회에 재분배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블록체인은 우리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해줄 수 있다. 지금까지 기본 소득에 대해서 제기되는 가장 큰 비판 중 하나는 불로소득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들이 사회 인프라를 운영하는 데 참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일정한 수준의 기본 소득을 제공한다면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것은 기계가 일을 하고 사람이 관리하는 형태의 노동이기에,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는 보다 인간적인 노동 형태이다.

이처럼 블록체인은 기존에 공공서비스가 작동했던 방식을 바꾸면서 새로운 산업, 개인들의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참여가 어느 정도 규모로 형성되는 시점이 되면, 지금 도입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기본소득을 촉진하는 강력한 방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직접 해당 공동체에 필요한 필수 인프라를 작동시키는 데 참여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의 통합성과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물론 요하임 로캄프를 통해 잠깐 만나본 독일의 고민이 여기까지 나아간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PoA와 같은 블록체인 합의 모델에 기반한 공공 블록체인은 장기적으로 해당 커뮤니티에 필요한 블록체인을 커뮤니티 스스로 운영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이 바꾸어놓을 우리의 사회 모습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기존에 중앙화된 시스템은 거대한 자원들을 일시에 동원하고 정보를 수직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엄청난 생산성과 효율성을 확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생산성과 효율성 덕분에 탈중앙화된 상태로 존재했던 개인들, 소규모 커뮤니티들은 결국 국가로 대표되는 중앙화된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로 복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인류가 문명화 단계를 걸어온 수천년 동안 진행된 일이다. 그 생산성과 효율성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중앙화된 시스템 이외에 다른 사회의 밑그림을 쉽게 그리지 못했다. 중앙 집중화에 맞서 수천년 동안 소규모 그룹들이 진행해 왔던, 국가 권력으로부터 벗어난 소규모 공동체 운동, 국가와 정부를 없애고 싶어했던 무정부주의 운동 등이 그 가치와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운동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역사적으로 혁명에 성공했던 소비에트 공산당 역시 탈중앙화와 분산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대체제로 극단적으로 중앙화된 관료제 정보처리기계를 내세웠다. 그들의 혁명 동력은 탈중앙화, 탈권력화, 분산화였지만 실제 그들이 만들어낸 권력과 정치 시스템은 정반대의 극단적인 중앙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블록체인이 기술 레벨에서 탈중앙화와 분산화라는 아키텍쳐를 가능하게 함에 따라, 우리가 기존에 (다른 대안이 없기에) ‘마땅히 그래야 하리라’ 혹은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하고 당연시해왔던 중앙화된 시스템 구조 전체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탈중앙화된 상태에서 중앙화된 시스템만큼 생산성과 효율성을 확보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 경제 모델들이 등장하면서, 기존 중앙화된 시스템이 해왔던 역할, 중앙화된 시스템의 특징, 중앙화된 시스템이 지속할 수 있었던 사회적 기술적 조건들을 비교해서 조망하고 평가해볼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겨난 것이다. 게다가, 비록 충분히 현실화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그럴 듯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대안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블록체인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들여다보면 볼수록 새로운 영감을 제공한다. 수년간 블록체인을 공부하고 해당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필자가 아직까지도 블록체인을 보면서 흥분하고 있는 이유다.





전명산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을 중퇴했다. 블로그 기반 미디어인 미디어몹의 기획팀장, SK 커뮤니케이션즈 R&D 연구소 팀장, 스타트업 대표 등 20년간 IT산업 영역에서 일을 했다. 현재는 한국 첫 블록체인 프로젝트 BOScoin의 CSO로 재직 중이다. 2012년에는 원시사회부터 21세기까지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분석한 ‘국가에서 마을로’를 출판했다. 2017년에는 블록체인 기술의 사회적 의미를 분석한 ‘블록체인 거번먼트’ 한글본을, 2018년에 이 책의 영문본인 <Blockchain Government>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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