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소는 고객과 함께 돈을 잃거나 벌어야 한다
[인터뷰] 지닉스 최경준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병철
김병철 2018년 10월8일 11:44
최경준 지닉스 대표. 사진=프레인 제공
최경준 지닉스 대표. 사진=프레인 제공


 
왜 암호화폐 거래소가 많아야 하나?
블록체인 시장이 커지면 거래소도 많아져야 할까?
'빗썸'이 10개나 있을 필요가 있을까?

이 질문은 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Zeniex)를 만든 최경준 대표가 창업하기 전에 스스로 물었던 것이다. 그의 결론은? 당연히 '앞으로 거래소는 더 많이 필요하다'로 났다. 실제로 코인마켓캡에 표시된 전세계 거래소는 4일 기준 1만4000여개가 넘는다.

최 대표는 2017년 말부터 준비해 지난 5월 지닉스를 열었다. 창업하면서 최 대표가 가장 고민한 건 블록체인 시장에서 거래소의 역할이다. 법정 기구로 한국에 하나뿐인 증권 거래소와 달리, 암호화폐 거래소는 한국에만 약 80여개(블록체인협회 추정)가 있다. 이름은 거래소지만 법적 지위와 목적은 꽤 다르다.

최 대표는 지난 9월21일 코인데스크코리아와 인터뷰에서 "거래소라는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증권 거래소 같은 곳이 아니라, 사실상 투자를 권유하는 투자자문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래소가 특정 암호화폐를 상장하는 행위가 투자 권유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그는 2000여개가 넘는 암호화폐 중 투자 가치가 있는 걸 선별해 진열대에 배치하는 게 거래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최 대표는 "증권거래소와 다르게 암호화폐 거래소는 주관적 기준으로 상장한다. 그렇다면 이게 새로운 형태의 투자 운용, 자문 플랫폼이 되는 셈이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 이미지=지닉스 제공

금융권을 나와 크립토에 뛰어든 이유


거래소=투자자문사.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 대표가 거래소를 창업한 건 매우 자연스럽다. 그는 2017년말까지 미국계 사모펀드(PEF)에서 운용역으로 일했다. 금융권 출신인 그에게 거래소는 암호화폐 시장의 투자자문사인 것이다.

최 대표는 "블록체인에 뛰어들기 전에 다녔던 하인스(Hines)는 미국계 부동산 사모펀드다. 론스타가 세계 20위 규모면 하인스는 5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왜 금융권을 나와 '사기꾼 취급'을 받는 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들었을까.

일단 그를 움직이게 한 건 위기감이었다. 그는 "2017년에 시장이 열리는 걸 보면서, 앞으로 암호화폐가 자산화되고 금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그게 펀드매니저의 역할을 많이 약화시킬 것이라고 봤다"고 털어놨다.

암호화폐 시대에는 투자자와 투자대상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미들맨'(펀드매니저)의 자리가 점점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는 "암호화폐는 지금까지 가장 효율적 자산인 주식보다 확장성도 크고, 쪼갤 수 있고, 기능도 더 많고, 전 세계 어디든 보낼 수 있다. 나는 블록체인이 투표, 물류보다는 금융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에 뛰어든 데는 최 대표가 베이징대학(금융 전공) 출신인 점도 관련이 있다. 정현우 TTC프로토콜 대표, 김성구 넥서스원 대표 등도 베이징대 출신이다. 그는 "블록체인 시장에서 중국이 매우 앞서 있고 투자를 많이 한다. 중국에서 한국 파트너를 찾으니 자연스럽게 베이징대학 출신이 교두보를 놓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닉스도 중국 보안업체 '치후360'의 투자를 받아 만든 한중 합작 거래소다.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 펀드 토큰'


지난 9월 지닉스는 자신의 거래소에 아주 특이한 토큰을 상장했다. 암호화폐 펀드를 토큰화한 'ZXG'다. 이 암호화폐 펀드는 중국의 벤처캐피털 제네시스가 발행하고 운용한다. 지닉스는 이 펀드를 토큰화해 거래소에 상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ZXG라는 이름은 '지닉스X제네시스'의 약자다.

중국은 암호화폐 거래와 ICO를 모두 금지하고 있어, 제네시스는 영국령 케이맨제도에서 ZXG 암호화폐 펀드를 발행했다. 2017년 9월 한국 정부가 ICO를 금지해, 한국 기업들이 스위스와 싱가포르에서 ICO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

ZXG 소개. 이미지=지닉스 웹사이트 캡처
ZXG 소개. 이미지=지닉스 웹사이트 캡처


 

ZXG 공모 규모는 1000 ETH이며, 운용 기간은 1년이다. 제네시스 등은 이렇게 모은 자금의 약 80%를 ICO 등에 투자하고, 20%를 암호화폐 거래에 투자할 계획이다. 지닉스는 “거래소에서 ZXG를 사는 것만으로 쉽게 암호화폐 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 공모 참여자들은 만기 전에도 팔 수 있어 자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지닉스가 '암호화폐 펀드 토큰'을 상장한 건, 거래소의 역할은 투자 권유라는 최 대표의 생각과 맥이 닿아있다. 그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유망 ICO는 개인 투자자에게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ZXG를 통해 거래소에서 누구나 안정적이고 쉽게 암호화폐 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닉스가 세계 최초라고 밝힌 것처럼 신문물인 ZXG에는 여러 쟁점이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정의도 안 내려진 상태에서 나온 새로운 개념의 상품이라 향후 법적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이미지=Getty Images Bank


 

쟁점별로 따져보면 일단 ZXG는 지닉스 홈페이지에서 모금했으니 자본시장법상 '공모펀드'(49명 이하에게 투자 권유했다면 사모펀드)로 볼 수 있다. 유사수신행위 여부는, 원금보장을 하지 않았고 원화가 아닌 이더를 모았으니(아직 해석에 논란이 있지만)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리스크는 ZXG가 자본시장법상 '증권'으로 분류될 가능성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금융투자상품으로 취급돼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지 않으면 자본시장법 위반이 된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증권형으로 분류되지 않을 것이라는 외부 법률자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펀디엑스같이 대놓고 이자를 지급하는 암호화폐도 있다. 펀디엑스는 증권형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도 많은 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만약 증권형이 규제받으면 이미 있는 암호화폐부터 조짐이 보일 텐데 규제 초점은 아직 상당히 멀리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설령 증권형으로 분류되더라도, 10억원 미만 규모인 ZXG는 '유가증권 신고의무'가 적용되지 않는 '소액공모'에 해당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기업의 소규모 자금조달을 위한 제도인 소액공모는 증권신고서 대신 간소화된 공시 서류만을 금융위에 제출하면 된다.

다만 안찬식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ZXG에 대해 "성질만 보면 수익증권(유가증권)으로 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소액공모라는 게 자본시장법상 일정 의무(증권신고서 제출)가 면제되는 것이지, 유가증권이 아니라는 판단을 받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경준 지닉스 대표. 사진=프레인 제공
최경준 지닉스 대표. 사진=프레인 제공


 

"거래소는 투자자문사가 돼야 한다"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논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상장 수수료(Fee)다. 상장하는 조건으로 거래소가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받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는 "지닉스는 다른 거래소의 20~50분의 1 정도만 마케팅 비용으로 받고 있다. 상장 전후로 홍보 비용이 나가는데, 암호화폐를 발행한 쪽에서 이용자를 끌고 오거나 그 마케팅을 직접한다면 아예 안 받거나 조금만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상장 수수료가 거래소의 수익모델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수료가 많거나 비합리적인 수준이라면 결국 좋은 프로젝트를 몰아내는 꼴이 된다. 요즘은 아예 안 받거나 우리처럼 마케팅비만 받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경쟁과 시장 원리로 정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닉스의 상장 기준은 어떨까. 여기도 투자 권유라는 지닉스의 철학이 담겨 있다. 임원진이 블라인드 처리된 다른 거래소와 다르게 지닉스는 임원들이 상장에 직접 개입한다. 임원들이 암호화폐를 신중히 골라 투자자에게 추천한다는 의미다.

최 대표는 "기존 투자자문사나 투자펀드는 그들의 셀렉션에 책임을 진다. 3조원치 투자라면 기관이 2조7000억원을 낼 때 펀드매니저가 회삿돈과 자기 펀드로 3000억원을 넣는다. 그리고 운용 성과에 자기도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장의 본질이 투자 셀렉션에 있다면, 임원진 뿐만 아니라 거래소가 상장으로 업사이드, 다운사이드를 함께 겪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지금 거래소 형태는 임원진은 빠져서 상장하고, 투자자가 잃든 따든 간에 거래소는 돈을 버는 구조다. 거래소와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건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첫 스텝을 임원들이 적극적으로 상장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봤다. 이후로는 투자자문사처럼 실제 거래소와 임원의 돈도 넣을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통 금융권에 있지만 크립토 금융권에 없는 게 '유통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라고 말했다. 그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좋게 보면 가격이 떨어질 때 밑에서 받쳐주는 큰 매수 세력이기도 하다. 그게 없으니 암호화폐 가격에 바닥이 없다"고 말했다. 거래소가 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닉스가 생각하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역할은 분명 생경하면서도 신선한 개념이다. 그렇게 괜찮은 모델이라면 외국도 그렇고 다른 거래소는 왜 안 하는 걸까. 그에게 물어보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글쎄요. 우리가 실패하면 알게 되지 않을까. 아 이래서 안 했구나.(웃음) 하지만 난 이게 암호화폐 시장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제대로 성숙하지 않은 기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안 했으면 누군가가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