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암호화폐 경계하는 건 당연...그런데 독일은 왜?
공공분야 블록체인 현장 르포_#5: 독일 정부가 암호화폐를 대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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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산
전명산 2018년 10월26일 15:35
암호화폐가 호환·마마보다 무서웠던 걸까?

2017년 5월 10일, 보스코인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ICO를 마치고 몇 개월 후 한국 정부는 ICO 전면 금지를 선언했다. 증권성 토큰을 포함해 모든 유형의 ICO를 불법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ICO를 금지한 이후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정부는 다소 부정적인 신호를 보낼 뿐, 공식적으로는 침묵해왔다. 다행히 11월에는 ICO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를 제공한다고 하니, 퍼블릭 블록체인 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다.

 

정부와 암호화폐 산업의 부부싸움?


지금까지 한국의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산업을 둘러싼 정부와 관련 업계의 현황을 비유하자면, 부부싸움 후 각자의 방에 틀어박힌 부부의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까?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며 마음속에 불만을 잔뜩 품고는 씩씩거리면서 ‘저쪽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무슨 소리가 들리나’ 귀를 곤두세우며 상대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쓰고 있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며, 또 말을 걸어오면 2차전을 해야 할지 화해의 몸짓을 내밀어야 할지 고민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정부는 ‘너는 왜 그렇게 위험하고 비윤리적인 사업을 하려고 하느냐’라고 비난해 왔고, 관련 업계는 ‘왜 시대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낡은 방식으로 규제만 고집하느냐’고 계속 반문해 왔다. 물론 필자는 후자의 입장이다. 동시에 정부의 태도가 이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뛰는 규제 당국 위에 나는 블록체인 산업 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을 둘러싸고 각국의 규제 당국, 특히 한국의 규제 당국이 처한 상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먼저, 각 나라의 규제 당국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규제 당국의 담당자들이 이 새로운 산업에 대해 별로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 담당자가 공부를 하려고 노력하긴 한다. 그러나 IT 산업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심지어 개발자들조차도 블록체인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기에, 웬만큼 공부해서는 이 영역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시장이 변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시장과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서 간신히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뭔지 이해했는데, 시장에서는 아예 증권을 코인으로 발행하겠다느니, 부동산 소유권을 토큰으로 변환해 유동화하겠다느니,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가 가진 급격한 변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 가치 고정 코인)을 만들겠다느니 하고 있다. ICO를 규제하는 사이에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를 공개하는 IEO라는 새로운 방식이 나왔다. 또 거래소를 어떻게 규제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거래소 자신들이 자체 코인을 발표하고, 해당 코인으로 수익을 공유하여 신규 유입자를 유치하는 새로운 전략을 쓰고 있다. 급기야 라인이나 카카오톡 같은 성공한 벤처들도 자체 코인을 발행하고 나섰다. 이처럼 하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이 시장에서는 그 다음 단계의 파괴적 혁신이 진행되고 있으니, 규제와 현실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관료 조직과 상극인 탈중앙화 정신


두 번째, 블록체인에 내재한 철학 자체가 기존의 중앙 집권식 관료제와는 다른 분산(Distribution)과 탈중앙화(Decentralization)를 지향하기 때문에, 수직적인 구조의 전통 관료 조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기술이 낯설고 심지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블록체인 진영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조직 혹은 시스템의 모델은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이다. 이 모델의 기본 원리는 소프트웨어로 구현되어 자동적이고 강제적으로 작동하는 규약(protocol)만 존재하고 정부, 규제, 중앙 관리와 같은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보조적인 장치로 존재한다. 따라서 규제 당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 기술 자체에 대해 본능적으로 정서적 반감을 품을 수도 있다.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 것 같은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록체인이 이러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사실이다. 시장의 안전성을 감독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술의 등장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퍼블릭 블록체인과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선별 대응해야 한다는 정부 당국의 사고 밑바닥에는, 단순히 토큰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지도 모르는 기술에 대한 반감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기존 시스템 넘보는 블록체인이 주는 두려움


세 번째,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의 작동 범위는 개별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다. 근대 사회 이후 정부의 역할은 각 국가의 영토적 경계가 명확하고, 각 국가에 속한 시민들의 신원 정보가 명확하게 정의된 상태에서 해당 영토와 시민들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경제 시스템 역시 국가 간 경계가 명확히 정해진 상태에서 작동해 왔다.

그런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은 그 기반 자체가 글로벌이다. 즉 개별 국가의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규제 혹은 관리가 이전만큼 잘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이 ICO 금지를 표방하며 억압 정책을 내세우자 한국발 프로젝트들 수백 개가 스위스, 몰타, 지브롤터, 싱가포르, 홍콩 등으로 나가서 ICO를 진행한 게 대표적 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예 법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확인하자며 한국에서 ICO를 진행하겠다고 공언한 프로젝트도 등장했다. 이처럼 이 산업은 개별 국가가 막을 수 없고 개별 국가 내에서 완벽하게 규제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규제 당국 입장에서는 국가가 규제하고자 해도 쉽게 규제되지 않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네 번째, 기존 IT 스타트업들은 이미 존재하는 경제 게임 안에서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만들어왔기에,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모델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파괴적’이라고까지 표현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반면 블록체인 기반 스타트업들은 현존하는 경제의 작동 법칙(룰) 자체를 실험 대상, 비즈니스 대상으로 삼는다. 즉 자신들이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든 인식하지 못하고 있든, 이들이 하는 작업은 전혀 새로운 규칙을 가진 경제 시스템을 설계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작동시키려는 일이다.

또 기존 스타트업들은 이미 존재하는 법정 화폐 시스템과 금융 시스템을 이용하는 이용자의 입장이었지, 화폐 시스템이나 금융 시스템 자체를 직접 다루는 비즈니스를 만들진 않았다. 반면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스스로 독자적인 경제시스템을 만들고 그 경제 시스템 내에서 작동하는 독자적인 암호화폐를 도입하고 있다.

기존에는 국가의 독점 영역이던 경제 시스템 자체, 화폐 시스템 자체가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 대상이 된 것이다. 한 국가의 경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시스템이 자칫 오작동할 경우 경제 시스템 자체에 균열이 생긴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와 같은 파괴적인 산업의 등장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욕망과 욕심이 몰려드는 블록체인 산업


다섯 번째, 스타트업들이 자산 혹은 화폐를 직접 다루는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이 산업에 너무나 많은 욕망과 욕심들이 몰려들고 있다. 실제로 이 산업 영역에는 온갖 다단계 조직들과 사기성 프로젝트들이 판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많게는 하루에 수십 퍼센트 넘게 가치가 변동하는 시장, 그리고 이 위험한 게임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개인들을 보고 있자면,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사행성과 사기, 가격조작과 같은 부정적인 요인들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현업에 있는 필자조차도 좋은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를 분별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도 아슬아슬한데, 경제 시스템의 안전성과 윤리성을 책임져야 하는 규제 당국의 눈에 이 현상이 곱게 보일 리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 산업을 규제 일변도로 몰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정부 당국도 인지한 것 같다. 산업 자체가 이미 글로벌 트렌드를 형성했고, 실물 경제와의 접점을 하나씩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7일 통계청에서 ‘블록체인기술 산업 세부 분류’ 안을 고지한 것이나, 최근 유영민 과학기술부 장관이 블록체인 컨퍼런스에 참석해 축사를 한 일, 그리고 마침내 정부가 11월 내에 ICO 관련 정책을 발표하겠다고 한 것은, 이 산업을 무시하거나 혹은 단순히 억압하는 정책으로 일관할 수 없다는 것을 정부가 인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는 기다리며 지켜보는 중


사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작년 말과 올해 초의 강경 발언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의 진행 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더 이상의 강경 발언이 나오지 않았으며, 간헐적인 경고음 정도만 나왔을 뿐이다. 정부의 의도였건 아니건, 우연이었건 필연이었건 정부는 큰 틀에서 ‘지켜보며 관찰하기(Wait and See)’ 정책을 실행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최근의 거래소 벤처기업 제외 정책은, 제외 범위에 속하는 다른 산업이 유흥주점업이나 사행성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당황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산업 자체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지키려는 의지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당장 눈에 띄는 것은 ICO에 적극적인 나라들이다. 몰타와 필리핀은 합법적으로 ICO를 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보다 먼저 스위스와 싱가포르는 ICO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각각 수백 개 이상의 회사 혹은 재단을 유치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지브롤터, 홍콩, 에스토니아, 프랑스, 태국, 버뮤다 등도 ICO 산업 유치에 적극적이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도 동참했다. 이 반대편에는 ICO를 억제하거나 금지하고 있는 중국, 한국, 인도 등의 나라들이 있다. 언론에는 주로 이 두 대립적인 행보가 보도된다.

 

합리적이고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독일 정부


그런데 조용하고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필자가 직접 확인한 독일의 경우 상당히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6월 29일, 한국 기자단이 독일 블록체인연방협회(Blockchain Bundesverband)를 방문, 플로리안 그라츠(Florian Glatz) 협회장과 요하임 로캄프(Joachim Lohkamp) 이사를 각각 만나서 독일의 스타트업과 블록체인 산업 문화, 독일 현지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진행 현황, 정부의 블록체인 정책, 정부 및 정치권과 블록체인연방협회의 협력 방식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독일 블록체인연방협회는 2017년 6월 29일 독일 의회 산하에 설립된 민관협력기구다. 우연히도 우리가 방문한 날은 마침 이 협회가 출범한 지 딱 1년 째 되는 날이었다. 한국엔 수십 개의 블록체인 관련 협회와 단체들이 난립하고 있지만, 독일은 단 하나의 협회만 존재한다. 이 협회에는 IOTA, Slock-it, Gnosis, Parity 등 독일 기반의 유명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과 더불어 주요 정당들도 참여 중이다.

2017년 6월 29일, 플로리안 그라츠(Florian Glatz) 협회장이 소개한 독일 블록체인연방협회 창립식 장면. 사진=전명산


우리가 요하임 로캄프 이사를 만나 한참 설명을 듣던 중 동행한 기자가 독일의 ICO 규제에 관해 물었을 때, 그의 반응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규제요? 뭐요?’

그가 말을 못 알아들었다기보다는 왜 이 대목에서 왜 기자들이 규제에 대해 질문을 하는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한참 독일의 정부, 의회 그리고 블록체인 업체들이 어떻게 협업하고 있는지 설명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ICO를 전면 금지한 한국의 상황을 부연 설명하자 그제야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다. 한국의 상황이 독일에서는 대단히 낯선 풍경이었던 것 같았다.

요하임 로캄프와 플로리안 그라츠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 블록체인연방협회는 주에 2~3회씩 의회, 정당, 정부의 블록체인 담당자들을 만나서 설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이유는, 블록체인 산업은 현재 아주 초기 단계고 정부에는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기에, 제대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이 먼저 해당 기술과 산업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단 블록체인 기술만이 아니다. 독일은 새로운 것이 나왔을 때 먼저 이것이 무엇인지, 이것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규제하기 전에 먼저 토론을 한다고 했다. 명확하게 이해를 해야 합리적인 규제 방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독일은 연방 의회, 독일 정부의 경제부, 내무부, 교육부 그리고 메르켈 수상 직속 부서 등에 블록체인을 전담하는 담당자를 두고 수시로 협회와 소통하고 있다. 주요 정당들도 블록체인 전담자를 두고 협회와 수시로 소통한다. 플로리안 그라츠는 “정부와 의회가 굉장히 열려 있고 잘 보조하고 지원해 주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독일 정부의 암호화폐 정책을 설명하고 있는 플로리안 그라츠(Florian Glatz) 독일 블록체인연방협회장. 사진=전명산


 

독일에서 ICO를 하는 것 역시 합법이다. 이미 독일의 금융감독청인 바핀(BaFin)에서는 토큰의 유형을 유틸리티 토큰(Utility token)과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으로 구분하고 이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 바핀은 유틸리티 토큰과 증권형 토큰을 구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독일에서 증권형 토큰 발행이 쉬운 이유


특이한 점은 독일은 증권형 토큰을 발행하기가 더 쉽다는 점이다. 미국, 싱가포르, 스위스 등은 증권형 토큰에 대해 증권법을 적용해 강력하게 규제하는 반면 독일에서 증권형 토큰은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규제도 아주 간단하다. 증권형 토큰은 증권법을 따르지 않고, 증권법의 상위 법을 따르게 되어 있다고 한다.

반면 유틸리티 토큰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일종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실제 유틸리티 토큰으로 작동하는지 검증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유틸리티 토큰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 개발을 해서 검증을 받아야 하는 등 일정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 아마도 유틸리티 토큰은 발행 이후 특별한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실제로 유틸리티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장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합리적인 환경 덕분에, 독일 정부가 공개적으로 ICO 산업에 러브콜을 보내지 않아도, 독일, 특히 베를린은 유럽에서 블록체인 산업의 메카 중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대부분 국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 산업의 메커니즘을 학습하고 있다. 이미 2016년 5월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절히 규제하기 위한 결의안을 투표하고, ‘불간섭 원칙(hands-off approach)’을 채택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또한 정부가 선제적 규제(preemptive regulations)보다는 ‘세심한 모니터링(precautionary monitoring)’을 할 수 있도록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섣부르게 먼저 규제하는 것보다 지켜보면서 부정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긍정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겠다는 생각이다.

 

해를 끼치지 않으면 금지하지 않는다


물론 독일 혹은 유럽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은 아주 다르다. 먼저 독일은 블록체인 산업이 한국보다 수년 먼저 시작되었다. 베를린은 이더리움 프로젝트가 시작된 곳이고, 또한 세계에서 가장 먼저 비트코인으로 맥주를 팔기 시작한 가게가 있다. 정부에서 처음으로 허가를 받았고 정부의 규제를 받는 거래소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곳도 독일이다.

또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ICO에는 다단계와 같이 지저분한 참여자들이 많지 않다. 한국처럼 ICO 참여 및 암호화폐 투자 광풍이 폭발적으로 불지도 않았다. 한국과 다르게 정부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기에 비교적 무난한 환경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나 새로운 산업을 대할 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금지하지 않는다’는 가이드(Do no Harm)와, ‘상황을 지켜보고 이해하고 판단하겠다’는 전략(Wait and See)이 작동하고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비트코인으로 맥주를 먹을 수 있었던 베를린의 카페 Room 77. 사진=전명산


 

새로운 산업은 언제나 모호하다.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을 만들어내고, 또한 이미 존재하는 영역에서는 기존 산업의 룰을 벗어나 새로운 룰을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은 기존 산업의 이해관계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산업은 산업 전체를 재편하면서 기존 산업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기존 산업의 이해관계자들과 충돌이 일어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결국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가, 어떤 것이 더 사회에 이득을 제공하는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경쟁의 결과에 따라 보다 효율적이거나 보다 사용자 친화적인 산업이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기존의 관행과 규제를 근거 삼아 기존 산업을 대변하기 시작하는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관행과 규제로 기존 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다만 새로운 산업이 자리 잡을 공간 자체가 사라질 뿐이다. 그 결과는 글로벌 경쟁력의 상실이고 산업 전체의 낙후다.

우리 정부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1년 넘게 지켜보는 태도(Wait and See)를 견지해왔다. 그사이 많은 정책 담당자들과 블록체인 업계의 전문가들이 수시로 만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정부나 국회 역시 이 기술과 산업을 이해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 들었다. 이해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다행이다. 11월에 나오는 가이드가 설령 ICO를 금지하는 방안일지라도, 이해하고 나오는 정책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정책은 그 근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산업에 대한 정책은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방향으로 설계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11월, 정부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 본다.

 





전명산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을 중퇴했다. 블로그 기반 미디어인 미디어몹의 기획팀장, SK 커뮤니케이션즈 R&D 연구소 팀장, 스타트업 대표 등 20년간 IT산업 영역에서 일을 했다. 현재는 한국 첫 블록체인 프로젝트 BOScoin의 CSO로 재직 중이다. 2012년에는 원시사회부터 21세기까지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분석한 ‘국가에서 마을로’를 출판했다. 2017년에는 블록체인 기술의 사회적 의미를 분석한 ‘블록체인 거번먼트’ 한글본을, 2018년에 이 책의 영문본인 <Blockchain Government>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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