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백서 10주년, 실험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편집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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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재
유신재 2018년 11월22일 12:28


 

‘암호’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연상되는가? 나는 제일 먼저 군대가 떠오른다.

비트코인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에서 암호학(cryptography)이라는 분야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만나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암호학 분야의 선구자들은 내 상상과 달리 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가의 감시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암호기술을 통해 지켜내기 위해 감옥에 가는 걸 무릅쓰고 싸워온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 ‘사이퍼펑크’로 불리는 이들은 기술로 무장한 운동가이자 사상가들이다.

무엇보다 내 무식을 탓해야겠지만,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분단국가라는 환경도 암호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오해 혹은 선입견에 일조했을 터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본질이 ‘탈중앙화’에 있다는 말은 이제 누구나 한다. 그러나 똑같이 ‘탈중앙화’라는 말을 쓰면서도 사람마다 초점은 제법 다른 것 같다.

사이퍼펑크 계통의 근본주의자들이 탈중앙화를 말할 때 초점은 ‘검열 저항성’에 있다.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래를 추구한다. 사이퍼펑크의 대부로 꼽히는 티모시 메이가 1992년 발표한 ‘크립토 무정부주의자 선언’은 개인의 자유가 최고의 가치이기에 실크로드와 같은 다크웹을 통한 마약 거래, 조세회피, 심지어 청부살인 등 범죄행위까지 용인한다. 요즘 한창 암호화폐에 대해 고객파악제도(KYC)나 자금세탁방지(AML) 등을 적용하려는 시도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최근 만난 금융계의 한 유명인사는 내게 “세계에서 제대로 운영되는 중앙은행이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가 보기에 10여개를 제외한 나머지 중앙은행들은 독재자와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멋대로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변덕스럽거나 무능하거나 악의가 있는 중앙권력이 없는 비트코인이 민주주의와 법치가 자리잡지 못한 대다수 국가의 화폐 시스템을 대체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그가 말하는 ‘탈중앙화’의 초점은 불량 정부를 대체하는 새로운 권위에 있다.

누구나 화폐 혹은 토큰을 발행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전에 없던 보상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요즘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이쪽에 속한다. 4차 산업혁명, 국가경쟁력 등의 표현도 주로 이쪽에서 나온다. 비즈니스가 가장 우선인 이들은 암호화폐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10월31일 비트코인 백서가 공개된 지 10년이 됐다. 그동안 너무나도 이질적인 생각과 욕망을 가진 수많은 이들이 비트코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지금의 비트코인 생태계가 초기의 사상과 너무 멀어졌다는 비판이 있다. 연초 2000만원을 넘겼던 가격이 500만원대로 폭락한 것을 두고 이제 비트코인은 망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래서 10돌을 맞은 비트코인 실험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내 주제에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누가 답을 할 수 있을까?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 11월22일치와 인터넷한겨레에도 게재됐습니다.

**<코인데스크코리아>의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릴레이 기고에서 17명의 국내외 크립토 선구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1_김진화 코빗 공동창업자: 사토시 페이퍼 10년, 그리고 ‘래디컬 마켓’

#2_김재윤 디사이퍼 회장: 당신의 블록체인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3_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 이처럼 이과적 소양과 문과적 감성 모두 요구하는 게 또 있을까

#4_문영훈 논스 대표: 미래의 혁명가들이여, 논스로 오라!

#5_김종승 SKT 블록체인사업개발Unit Token X Hub TF장: 화폐 르네상스,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6_이송이 37coins 창업자: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세계평화’의 꿈은 현재진행형

#7_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 사토시, 비탈릭, 그리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자세

#8_이준행 고팍스 대표: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투명한 자본조달 구조 바꿔보자

#9_김휘상 해시드 CIO: 블록체인이 우리의 노동과 데이터 주권을 뒤바꿀 것이다

#10_찰리 슈렘 비트인스턴트 창업자: 베네수엘라, 터키 경제위기를 ‘남의 일’로 여기는 당신께

#11_아담 크렐렌스타인 심비온트 공동창업자: 사토시의 비전은 암호화폐보다 분산원장 기술에 녹아있다

#12_브루스 펜턴 애틀란틱 파이낸셜 CEO: 비트코인 백서는 헌법이다

#13_데이비드 슈와르츠 리플 CTO: 포드자동차 모델T 110주년,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14_샘슨 모우 블록스트림 CSO: 비트코인 백서는 ‘성경’이 아니다

#15_리처드 젠달 브라운 R3 CTO: ‘비트코인 미신’ 벗어나려면 백서 속 이 문장을 보라

#16_마이크 벨시 비트고 공동창립자: 우리는 더 나은 형태의 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17_티모시 메이: '사이퍼펑크의 전설'은 요즘 블록체인이 마음에 들지 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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