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가 암호화폐를 만났다면
[편집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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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재
유신재 2018년 12월20일 08:00
유신재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피 케네디는 1920년대 월스트리트에서 큰 돈을 벌었다. 아직 주식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제가 마련되기 전, 온갖 가짜 정보와 시세조종, 내부자 거래가 판치던 시절이었다. 케네디는 지금 잣대로는 모두 불법인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와 시세조종에 빼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요즘 작전세력의 조상님이라 할 만하다. 1929년 대공황으로 주가가 폭락할 때에도 공매도로 더 큰 돈을 벌었다.(훗날 그는 구두닦이 소년이 주식 정보를 주는 것을 보고 발을 뺄 때가 됐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이후 완전히 무너진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주식시장 제도정비에 착수했다. 1934년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설립했고, 초대 의장으로 케네디를 임명했다. 우리나라였다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다’는 반발에 직면했을지도 모르겠다. 루즈벨트의 참모들은 케네디를 1순위로 추천한 이유로 “규제 대상 업계의 습성과 관행에 대한 지식”을 꼽았다. 케네디는 그런 기대에 훌륭하게 부응해 지금까지 8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미국 주식시장 규제의 틀을 완성했다.

2000년대 이후 미국 주식시장은 고빈도매매 트레이딩(HFT, High Frequency Trading) 회사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혼란을 맞았다. 남들보다 더 빠른 초고속 네트워크와 알고리듬 트레이딩 프로그램으로 무장한 이 회사들은 다른 투자자들의 주문 정보를 재빨리 입수하고 이 정보를 이용해 먼저 주문을 넣는 방법 등으로 시장을 교란시켰다. 급기야 2010년 5월 갑자기 주가지수가 일시적으로 최대 1000포인트 가까이 급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플래시크래시(flash crash)’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새로운 기술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캣(CAT, Consolidated Audit Trail)이라는 규제가 도입됐다. 미국 전역의 모든 증권거래소와 그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플랫폼의 모든 주식 거래 관련 정보를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 모으는 게 골자다. 2017년 1월, 이 시스템을 설계, 구축, 운용하는 업체로 테시스테크놀로지스(Thesys Technologies)라는 회사가 선정됐다. 흥미롭게도 이 회사는 원래 플래시크래시의 원인으로 지목된 고빈도매매 트레이딩을 하던 회사다. 또다시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셈이다.

암호화폐 관련 규제공백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서 자료를 수집해 분석하고 금융위원회와 국무조정실에서도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을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블록체인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트렌드가 바뀌어 업계 사람들도 허덕이며 쫓아가고 있다. 암호화폐 기업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멀리해서 과연 제대로 된 정책과 규제가 나올지 의문이다. 우리 못잖게 관치의 전통이 강한 일본도 지난 10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만든 자율규제기구(JVCEA)에 규제를 맡겼다. 우리 정부도 당장 생선을 맡기지는 못하더라도 고양이와 대화는 시작하고 볼 일이다.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 12월20일치와 인터넷한겨레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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