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암호화폐 규제는 왜 그토록 다를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Noelle Acheson
Noelle Acheson 2019년 2월10일 10:00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금융 당국이 처한 현실은 판이하게 다르다. 먼저 미국은 정부가 예산안 처리 문제로 셧다운되면서 사실상 규제 관련 업무도 한동안 마비됐다. 간신히 셧다운은 해제됐지만, 여전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탓에 암호화폐 규제에 관한 진지한 논의는 시작도 못하고 있다. 반면 유럽 금융 당국은 전혀 다른 종류의 난관에 부딪혔는데, 자본시장이 여전히 완전히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별로 다른 규제를 쏟아내며 엇박자를 거듭한 끝에 모든 게 완전히 꼬여버렸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이러한 여건 속에서 암호화페 규제에 관한 미국과 유럽의 접근 방식은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생각하면서도 암호화폐 산업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규제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하는 등 규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2017년 다섯 건에 불과했던 규제 집행 건수가 작년에는 무려 18건으로 세 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은 여전히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의사결정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벌써 수개월째 협의 중이다. 각종 위원회도 구성하고 여러 전문가들의 조언도 듣고 있지만, 의견수렴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심사숙고 과정이 너무 긴 나머지 암호화폐를 규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은 좀처럼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이달 초 유럽 은행감독청(EBA)과 유럽 증권시장감독청(ESMA)은 유럽연합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암호화폐 규제안을 마련하라고 각 금융당국에 요청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미국과 유럽이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른 것은 문화적 차이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영화에 비유해보면, 미국은 주로 블록버스터급의 액션 영화가 주류를 이루지만, 유럽은 인디 스타일의 철학적이고 사유적인 영화가 오히려 주류를 형성하는 것과 맥이 통한다. 하지만 암호화폐 규제를 둘러싼 문제는 문화적 차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은 법적인 구조부터 완전히 다르고 관습도 확연히 다르다. 특히 암호화폐 시장을 어떻게 규제할지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뜻을 모으고 규제를 조정하는 과정은 미국 정부가 풀어야 하는 숙제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근본적인 차이


유럽연합 법은 나폴레옹 법전, 곧 민법(civil law)을 기초로 한 성문법 형식을 따른다. 따라서 모든 법 집행은 미리 제정된 법이나 행정적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성문화된 법전이 모든 법체계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몇몇 규정은 필요 이상으로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때로는 신속한 해석이나 판결을 저해하기도 한다. 가능한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과 상황을 포괄하는 법을 제정하고, 법을 통해 시민을 교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관습법 체계를 따르는 미국에서는 판결 시 판사의 재량이 크게 작용하고, 때에 따라 법 조항 자체보다 판례가 더 우선시되기도 한다.

서른 개 가까운 회원국이 있는 유럽연합은 각 회원국의 요구사항을 모으고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미국보다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 당장 유럽연합이 결정한 사안은 각 회원국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당연히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준이 연기되거나 무산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 행정부에 해당하는 집행위원회의 권한이 약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회원국의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하면서 하향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암호화폐 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증권법만 보더라도, 유럽의 증권법은 대단히 지엽적이다. 자본시장 통합은 현재 유럽연합이 당면한 과제 중 가장 시급한 사안이지만, 이를 위한 노력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이후 유럽연합 위원회가 제출한 13개의 기본 입법안 중 채택된 것은 고작 3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 집행부의 임기가 당장 오는 5월에 종료되고, 브렉시트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자본시장 통합이 과연 회의에 안건으로나 오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관계는 유럽연합보다 훨씬 단순하다. 대법원 중심의 헌법 체계가 오랜 시간 유지된 덕분에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서로 권한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속도의 차이


미국 규제 당국은 암호화폐를 시급한 사안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몇 차례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관련 사안을 하나씩, 느릿느릿 처리하는 모습에 업계의 원성을 듣기도 한다. 그래도 앞서 살펴본 유럽연합 규제 당국보다는 미국 정부가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취하는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더욱이 미국의 자본시장 규모가 전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암호화폐 자산에 관해 증권거래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규제 조치를 취할지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유럽연합이 암호화폐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최근 유럽 증권시장감독청은 암호화폐와 관련된 정의와 각종 변수를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 유럽연합 회원국의 규제 기관을 대상으로 한 달 간 심층 설문조사를 했다. 유럽 국가들도 미국 등 주변국과의 암호화폐 규제 수준 차이를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각국 규제 기관은 제대로 된 해결책을 집행하는 일은 결국 자신들이 아니라 유럽연합 중앙의 소관이라고 답했다.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회원국들 간에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내 실질적인 암호화폐 규제를 세우고 집행하기까지는 갈 길이 무척 멀어 보인다.

유럽 일부 국가는 당국이 인가한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잠정적으로 허용할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개별 회원국의 시장은 너무 작고, 암호화폐 거래와 수탁 서비스를 관장하는 일원화된 규제가 없으므로 유럽에서의 토큰 발행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의 규제가 더욱 엄격해질 전망이다. 미등록 증권 발행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규제가 집행되고 있고, 암호화폐 자산이나 파생상품을 심사하는 기준도 더욱 강화되었다. 미국의 이러한 행보는 전 세계 많은 나라의 정책에 영향을 끼쳐 암호화폐 규제가 좀 더 보편적인 틀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적, 국가적 차이를 고려하면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전진하는 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유럽에는 여전히 시장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구조적으로 가로막는 걸림돌이 많다. 또 "암호화폐 친화 정책"을 과감히 도입하는 나라들은 유럽 안에서도 규모가 작은 나라들이 많다. 이러다 보니 안전하고 유동성이 높은 디지털 토큰 시장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 미국의 역할이 한층 증대될 전망이다. 미국의 결정과 규제 집행은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뚜렷한 선례를 남길 것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