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평가부터 퇴근 없는 채팅방 관리까지, 속앓이하는 커뮤니티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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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연
한수연 2019년 2월27일 07:00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커뮤니티매니저(CM)로 일하는 A씨. 그는 얼마 전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그가 관리하는 커뮤니티 단체 채팅방에 프로젝트 소식을 올리자 누군가 바로 남성 성기가 발기하는 짧은 동영상(움짤)을 올린 것이다. 주로 토큰 투자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단체 채팅방은 A씨의 주요 업무 공간 중 하나다. 일터에서 일어난 성희롱. 채팅방을 관리하는 CM은 여럿이지만, 이런 일은 유독 여성인 A씨에게만 일어났다.

A씨는 해당 영상을 올린 사람이 누군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채팅방에 참여하는 수백, 수천 명 멤버가 모두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A씨는 본인 사진을 메신저 프로필로 설정하고 활동한다. 한 회사의 대표가 신뢰를 주고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익명으로 활동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A씨 뿐만 아니라 기자가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통해 취재한 CM들은 모두 메신저 프로필로 본인 사진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 CM들은 모두 A씨와 어슷비슷한 경험을 고충으로 꼽았다.

일상적인 외모평가에 성희롱까지…"당연히 감수해야 할 문제 아냐"


기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 커뮤니티 단체 채팅방에서 1분 사이 오간 대화를 순서대로 재구성한 것. (관리자 메시지 이외 메시지는 실제 메시지)
기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 커뮤니티 단체 채팅방에서 1분 사이 오간 대화를 순서대로 재구성한 것.


 

여러 CM, 특히 여성 CM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일상적인 외모 평가, 나아가 심한 경우 성희롱을 겪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프로젝트와 커뮤니티 내부에서 너무도 쉽게 사소화돼 직접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크립토 커뮤니티는 남초인 경우가 많고 매우 폭력적이다. 특히 텔레그램 채팅방에 야한 짤이 많이 올라온다"라며 "내가 채팅방에서 이야기하면 장난을 치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여성 CM B씨는 "단체 채팅방에 하도 음란 콘텐츠가 많이 올라와 이를 자동으로 삭제하는 봇(bot)을 삽입했다. 봇 개발자를 찾아가서 상업적으로 쓰지 않겠다고 설득해 설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봇 설치 이후 단체 채팅방의 성인 콘텐츠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 메시지(DM)로 오는 메시지까지 막을 수는 없다. B씨는 "일을 하며 개인 메시지로 선정적인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 대부분 19금 이미지들"이라고 말했다. B씨는 선정적인 메시지를 캡처해두긴 하지만 채팅방을 나가는것 외에 별다른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B씨는 "이런 일은 주로 여성 CM이 겪기 때문에 프로필에 회사 로고를 걸고 여자지만 일부러 남자 이름으로 활동하는 CM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외모 평가는 더욱 흔하다. A씨는 "채팅방에 회사 소식을 알리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내 프로필을 보고 '예쁘다', '안 예쁜데?' 등 평가가 이어진다"라며 "'예쁘다', '미녀' 같은 말을 들으면 상대방이 칭찬을 의도한 것일지라도 매우 불쾌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프로젝트의 CM 역할과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겸해온 류혜림씨 역시 같은 고충을 이야기했다. 류씨는 "외모나 성적인 이야기같이 프로젝트와 상관없는 말을 많이 듣는다"라며 "1대 1 문의로 사는 곳을 묻거나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본다"라고 말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한 명의 직업인이 아니라 성애적 존재로 호출되는 상황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류씨와 함께 CM 업무를 했던 이재원씨는 "나나 또 다른 남자 CM은 외모 평가를 들은 적이 없다. 이런 이슈는 여성인 류 매니저가 타깃이 돼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그는 "CM으로 일하며 겪는 다른 문제들보다 이 문제가 더 심각하다"라고 덧붙였다.

류씨는 “이런 일을 내가 CM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 네가 담당인데. 커뮤니티 관리하려면 감수해야 해’라는 말을 들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외모 이야기를 불쾌하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칭찬의 외피를 입었을지라도 결국 외모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고,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업무에 대한 평가가 아닌 외모 평가를 받은 것에 모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24시 돌아가는 익명 커뮤니티…퇴근은 했지만 일은 계속된다


CM들은 퇴근 없이 이어지는 업무 환경도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커뮤니티 단체 채팅방은 플랫폼 성격상 익명성을 가진 다수가 24시간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잠들지 않는 대화의 장'이다. 이를 관리해야 하는 CM들은 '퇴근은 했지만 일은 계속되는' 업무 환경에 놓였다.

메신저 중독
이미지=Getty Images Bank


 

A씨는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잠잘 때까지, 심지어 새벽에도 중간중간 깨서 채팅방을 확인한다. 악몽도 채팅방을 관리하는 걸로 꾼다”라며 “업무 시간을 초과해 일해야 할 뿐 아니라 스트레스도 크다”라고 말했다.

A씨는 “커뮤니티에 잘못된 정보로 인한 소동이 생겼을 때 이를 실시간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라며 “밤 11시에 회사의 전화를 받고 채팅방을 관리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류혜림씨는 “커뮤니티 채팅방에서 나오는 질문에 24시간 응답해야 한다고 계약서에 쓰여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항시 응답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B씨는 “스캠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답변이 느려서도 안 되고 정말 밤낮없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라며 “어떤 의문이 생겼을 때, 빨리 답변하지 않으면 상상력이 동원된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씨는 또 최근 암호화폐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프로젝트를 향한 비난이 늘었다면서 “그 모든 화살을 모두 내가 받아낸다”라며 “개인적으로 욕설하는 사람들도 많아 멘탈이 많이 흔들렸다”라고 말했다.

류혜림씨 역시 "익명으로 운영되다 보니 근거 없는 비난이나 욕설이 엄청 많다. 우리가 욕받이다”라며 “이를 제지하고 분위기를 정리하다 보면 하루 종일 신경 쓰인다. 1분이라도 보고 있지 않으면 뭐라도 터져 있을까 봐 불안하다”라고 했다.

이미지=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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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프로젝트의 한국 커뮤니티를 맡고 있는 김진우씨는 “지켜본 바로는 (CM 대다수가) ICO 직전부터 마무리되는 시기에 24시간, 주말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더라”라며 “투자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다만 지금까지는 CM의 업무가 채팅방 관리에 치중했었는데 앞으로는 덜 그럴 것 같다. CM이 해야 할 업무는 굉장히 다양하다”라고 덧붙였다.

CM들은 이같은 문제 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업계 전반의 젠더 감수성과 CM 업무에 대한 이해도 및 인식이 높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A씨는 “맨날 커뮤니티가 중요하다면서도 CM이라고 하면 얕잡아보는 업계 분위기가 있다. CM을 그저 질문에 상냥하게 답하는 젊은 여자 정도로 생각해서 그렇다”라며 “하지만 CM은 프로젝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커뮤니케이션 스킬, 위기관리 능력을 가지고 프로젝트의 기반을 다지는 사람이다. 프로젝트의 안과 밖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재원씨는 “일단 CM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업무에 맞게 대우도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B씨는 “외부에서는 CM을 그냥 고객 서비스 센터 직원같이 여긴다. 하지만 CM은 암호화폐 시장 전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에 대한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이해도를 파악해 각 레벨에 맞춰 이야기하는 역할을 한다”라며 “이에 대한 이해도가 생겨야 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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