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 기부를 더 아름답게 하리라
[인터뷰] 그라운드X 에코·소셜임팩트 팀 이종건 디렉터, 강보라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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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정인선 2019년 6월3일 16:00
기부에는 흔히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기부하는 사람도, 기부받는 사람도 저마다 그 아름다움을 주고받는다.

아름다움이 실현되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SK그룹의 사회공헌재단인 행복나눔재단이 운영하는 ‘행복얼라이언스’를 보자. 물품을 기부하는 기업 및 기관이 40여곳이다. 이 물품을 아동, 노인, 여성,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을 지원하는 다양한 기관에 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행복얼라이언스는 수혜자들의 필요에 따라 ‘행복상자’에 물품을 나눠담는다. 결국 기업과 기관들이 감사하게도 수백가지 물품을 기부한 뒤에도, 누군가는 모두 뜯어내야 하고, 누군가는 품목별로 분류해야 하고, 누군가는 다시 상자를 꾸리고, 누군가는 이를 날라 전달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라운드X와 프리즈밍은 SK행복나눔재단의 '행복상자' 사업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출처=그라운드X


대개 기부 물품 처리 과정은 수작업으로 관리되어 왔다. 각 비영리단체 담당자들이 엑셀 표를 만들어 기부 물품의 공급과 수요 데이터를 직접 관리했다. 문제는 유통기한이었다. 기부자에서 재단으로, 다시 수작업을 거쳐 기관으로, 마침내 수혜자의 손 안에 기부 물품이 전해졌을 땐, 이미 일부 물품의 유통기한이 지나 있는 일이 잦았다. 서류 작업도 문제였다. 거래명세서와 기부물품 수령증, 기부영수증 등 행정 문서에 누락되거나 잘못 기재되는 경우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신뢰였다. 한국모금가협회가 지난해 실시한 ‘기부문화 인식 실태조사를 통한 기부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를 보면, 최근 1년간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의 56.8%가 기부금 사용 내역을 모른다고 답했다. 최근 1년간 기부 경험이 없는 사람 가운데 61.5%는 “기부 요청한 시설(기관·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 기부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행정안전부 의뢰로 지난해 10~12월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1052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와 비영리 스타트업 ‘프리즈밍’ 그리고 SK 행복나눔재단은 이 지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지난 4월 현물 기부 관리 및 추적 시스템을 만들어 ‘보다 효율적인 아름다움의 실현’을 꾀했다.

이 실험을 이끄는 그라운드X 에코·소셜임팩트팀의 이종건 디렉터와 강보라 매니저는 지난달 29일 코인데스크코리아를 만나, 자신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공급망 관리 시스템(SCM, supply chain management)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많다는 데 착안했다고 밝혔다.

프리즈밍은 기부자와 중간지원기관, 그리고 현물을 수령하는 수혜기관이 현물 이동 관련 정보를 분산장부에 올려 각 단계를 추적하고 관리하는 블록체인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라운드X의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이 바탕이 됐다. 각 기관이 입력한 기부 시점, 기부량, 세부 내역 자료는 행복상자를 패키징하는데 기초 자료로 쓰인다. 수혜 기관도 행복상자가 언제 왔는지,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했는지를 기록한다.

출처=그라운드X


시범 사업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블록체인 기반 추적 시스템은 효율성을 입증한 것으로 보인다. 재단이 지속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기부 분야의 실무자들이 실제 자기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걸 실감한다면 블록체인 기술이 실제로 쓰일 가능성이 더 높을 거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새로운 파일럿 프로그램을 구성하기보다 비영리단체들이 이미 진행하던 사업, 그 중에서도 매년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에 블록체인 기술을 더하는 방식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 이종건 그라운드X 에코·소셜임팩트팀 디렉터

코인은 기부 확산을 위한 인센티브가 될 수 있을까


이와는 별도로, 그라운드X는 지난 5월부터 비영리단체 ‘아름다운재단’, 소셜벤처 ‘닛픽’과 더불어 두번째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기부 확산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블록체인의 토큰을 활용하면 기부자에게 보다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단, 국내 규제를 감안해 암호화폐 보상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대신 대체불가능토큰(NFT, non fungible token)을 활용하기로 했다.

소셜벤처 닛픽은 시민들이 불편함 경험을 제보하면 한 건당 100원 상당의 포인트를 지급해, 음료, 도서 등 교환권을 구매할 수 있는 모바일 앱 '불편함'을 개발·운영 중이었다. 그라운드X와 닛픽은 클레이튼 기반 '소셜 이노베이터 토큰(Social Innovator Token)'으로 불편함 앱의 기존 보상 체계를 보완했다. 이용자에게 불편 사례 1개당 10개의 토큰을 제공해, 닉네임 변경권 및 레벨업권을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이용자의 레벨과 닉네임 정보는 대체불가능토큰에 기록했다. 강보라 매니저는 "반복적인 악성 제보 등을 줄이기 위해 레벨업 및 닉네임 변경 횟수에 제한을 둘 필요가 있었는데, 블록체인 기술로 이를 보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닛픽이 개발한 불편 제보 및 보상 어플리케이션 '불편함'. 출처=그라운드X


그라운드X와 닛픽은 클레이튼 기반으로 발행한 소셜 이노베이터 토큰으로 이용자들이 레벨업 및 닉네임 변경 권한을 구매하도록 해, 닛픽의 기존 보상 체계를 보완했다. 출처='불편함' 앱 캡쳐


이에 더해 그라운드X와 닛픽은 비영리단체 아름다운재단과 4주간 기부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용자가 불편함 앱에서 아름다운재단이 제안하는 특정 키워드에 대한 불편 사례를 제보하면, 닛픽은 수집한 데이터를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한다. 그라운드X도 데이터 건수만큼 금액을 책정해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한다. 3사는 5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2주간 '치매', '고아'등에 대한 이용자들의 경험을 수집했다. 닛픽이 수집한 데이터는 아름다운재단이 기존에 진행하던 치매 노인 및 고아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에 활용할 계획이다.

강보라 매니저는 "이용자들에게 불편 사례 제보를 통한 기부에 참여하고 보상을 받는 경험을 제공해, '프로불편러'가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두번째 파일럿 프로그램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충분히 투명한 기부 사회에서 블록체인이 찾아야 할 역할은


그라운드X는 이번 기부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비영리기관 12곳의 문을 두드렸다. 반년여에 걸쳐 대면 인터뷰와 전화 인터뷰, 설문조사, 집담회 등을 통해 실무자들의 고민을 들었다. 한 분야의 고질적 문제를 새로운 기술이 단박에 해결할 수 있다는 쉬운 접근을 피하기 위해서다.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가설도 세우지 않았다.

비영리기관들의 가장 큰 고민은, 기부자 수와 기부금 총량의 감소였다. 왜 줄어들까? 이종건 디렉터는 “비영리기관들은 공통적으로 기부자들에게 적절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영리기관들은 어떤 정보가 기부자에게 전달돼야 할 적절한 정보인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현실은 통계 수치보다 복잡했다. 강보라 매니저는 “다들 ‘여기서 어떻게 더 투명해져야 하나’라고 이야기 할 만큼, 이미 너무나 투명하게 모든 걸 관리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모두가 기부금 이용 내용을 추적해 본인들이 소속된 조직의 신뢰도와 투명한 이미지를 높이고 싶다는 막연한 그림을 갖고왔다. ‘블록체인과 기부’ 하면 누구나 떠올릴 만한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건 이미 다들 너무 잘 하고 있단 걸 발견했다. ‘여기서 어떻게 더 투명해 질 수 있지?’하는 질문까지 나왔다. 그런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과, 그 정보를 기부자에게 잘 전달하고 있는 건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적절한 투명성의 정도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수혜자가 물을 사먹는지 학용품을 사 쓰는지까지 기부자가 궁금해 하는 게 정말 맞느냐는 거다.” - 강보라 그라운드X 에코·소셜임팩트 팀 매니저

무조건 투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갇히기보다, 무얼 위해 어디까지 투명해져야 하는지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종건 디렉터는 "기부는 단순히 기부자가 돈이나 물품을 주는 데서 시작해 수혜자가 그것을 전달받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기부 물품의 전달 과정을 촘촘히 추적하고, 기부 자체를 확산시키는 프로젝트에 뛰어들게 된 배경이다.

(사진 왼쪽부터) 그라운드X 에코·소셜임팩트 팀 강보라 매니저, 이종건 디렉터. 출처=정인선/코인데스크코리아


그라운드X측은 "블록체인 기술이 특정 분야가 가진 오래된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열쇠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첫번째 파일럿 프로그램의 경우, 블록체인에 올라온 데이터와 실제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는 '오라클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강보라 매니저는 "현재로서는 물품 전달 관련 데이터를 수혜 기관이 직접 입력해야 해 이같은 한계가 있지만, 향후 사물인터넷(IoT)이나 QR코드를 비롯한 다른 기술을 통해 보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의 계열사인 그라운드X가 블록체인 사업을 한다고 하면, '블록체인이 모바일을 비롯한 기존 기술을 대체할 거라고 보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그라운드X는 블록체인이 기존 기술을 모두 뒤엎을 대체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될 것이다. 과거 네이버의 '해피빈'과 카카오의 '같이가치'가 웹과 모바일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기부에 참여하는 간편한 방법을 제공해 문턱을 낮춰 줬다면, 블록체인 기술은 또 어떤 방식으로 숟가락을 얹을 수 있을지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다." -이종건 그라운드X 에코·소셜임팩트 팀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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