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OS BP 1년…한국, 정치력 부족으로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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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모
박근모 2019년 7월3일 17:00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한국 EOS BP의 용두사미와 그들의 원망섞인 하소연을 들으면서 플라톤의 경구를 떠올렸다. 철저히 정치적인, 그리고 정치적이어야 하는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그들은 왜 정치를 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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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eos.io


 

지난해 여름 EOS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3세대 블록체인의 대표주자, 약 1년간 ICO 모금액 약 70만 이더(약 2870억원) 등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EOS는 그해 6월 3일 BP 선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메인넷이 가동됐다. 그리고 1년. 국내 EOS BP 성적표를 보자.
전 세계 EOS(이오스) 커뮤니티 참여자 대상으로 블록프로듀서(BP) 선거 진행.
전 세계 약 89개 팀이 BP 첫 선거 참여.
국내에서 5개 팀, 공약 발표와 함께 BP 도전.
국내 EOS BP 중 이오시스(EOSYS), 최고 성적 15위 기록.
그 외에 이오서울(EOSeoul) 18위·노드원(NodeOne) 26위·아크로이오스(ACROEOS) 52위.

현재 전 세계 EOS BP 상위 21위 안에 국내 EOS BP '0'.
EOS BP 보상을 받을 수 있는 90위 안에는 노드원(60위)과 이오시스(62위)만이 존재.

국내 EOS BP들은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공약을 내걸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오스 타워 설립을 추진해 이오스 생태계 확산에 나서겠다'거나 'EOS 기반 결제 플랫폼을 선보이겠다'는 등 저마다 개성이 돋보였다. 하지만 불과 1년만에 하위권으로 밀려나고 수익성이 악화됐다. BP 운영을 계속할지를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 1. EOS 가격 부진


국내 EOS BP들에게 원인을 묻자, 공통적으로 EOS 가격 부진에 따른 수익 악화를 주원인으로 꼽았다.

실제 EOS 가격은 반토막이 났다. 암호화폐 통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EOS BP 선거가 진행된 지난해 6월3일 EOS 가격은 14.81달러(약 1만7100원)를 기록했다. 이후 EOS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같은 해 12월12일에는 10분의 1인 1.86달러(약 2151원)로 쪼그라들었다. 현재는 7달러(약 8090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EOS 가격 부진이 국내 EOS BP에게 끼친 영향을 알려면, EOS 블록체인의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EOS는 위임지분증명(DPoS, Delegated Proof of Stake)이라는 합의 알고리듬을 사용한다. 위임지분증명은 비트코인·이더리움의 작업증명(PoW, Proof of Work)과 달리, 블록 생성 권한을 위임받은 소수의 대표자(대표 노드)가 블록 생성 작업을 진행한다. EOS는 권한을 위임받은 총 21명의 대표자를 BP(블록프로듀서)라고 부른다. BP들은 EOS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블록을 생성하는 대가로 매일 일정 수량의 EOS를 보상받는다.

EOS 블록체인을 살펴볼 수 있는 블록스아이오(bloks.io)를 보면, 1위부터 21위까지의 BP는 매일 대략 700 EOS 내외를 보상받는다. 예비 BP인 22위부터 90위까지는 100~300 EOS를 득표 수에 따라 차등적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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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원이 국내 EOS BP 중 가장 높은 순위인 60위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블록스아이오


 

BP의 보상 규모는 당연히 EOS 가격에 비례한다. 국내 EOS BP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 중인 노드원은 현재 매일 139 EOS를 보상받고 있다. 선거가 막 시작한 작년이었다면, 1 EOS 가격이 14.81달러였으니 매일 약 2058달러(약 238만원)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1 EOS는 7달러다. 보상받는 금액도 절반에 불과한 973달러(약 112만원)에 그친다. 운영 환경은 그대로인데, 수입이 줄어든 셈이다. 그만큼 BP는 EOS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국내 한 BP 관계자에 따르면, 메인BP나 백업BP에 뽑히면 블록체인 네트워크 유지를 위해 매달 1천만원 이상을 써야 한다. BP는 블록을 생성하고,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안정적으로 유지·관리해야할 의무를 가진다. BP 순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컴퓨팅 파워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제공해 기여를 해야한다.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일례로 30위권 안에 포함된 BP는 대략 1500만원 전후, 메인BP인 21위권 안에 포함되면 수천만원을 네트워크 유지비에 사용해야 한다. 여기에 팀을 꾸리기 위한 인건비와 마케팅 비용 등이 별도의 부대비용으로 추가된다. 예컨대 5인 이하의 소규모 BP라고 해도 매달 BP 운영을 하려면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국내 BP 중 백업BP에 포함돼 보상을 받는 BP는 노드원과 이오시스밖에 없다. 나머지 국내 BP는 보상받는 것 하나없이 막대한 비용만 쓰고 있는 셈이다.
"EOS BP 선거 이후 하락장이 왔다. 이 때문에 많은 BP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BP만으로는 팀을 운영할만한 이익을 거두기 힘들다. BP를 하면서 별도의 수익 사업이 있어야만 팀 운영이 가능한 상황이다." - 안태준 아크로이오스 매니저

 

원인 2. 정치력 부족


하지만 단순히 돈 문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게 있다. BP가 된다는 것은 EOS 블록체인 네트워크와 커뮤니티의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보상금은 오히려 부수적이다.

EOS BP를 뽑는 방식은 이같은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수결이다. 누가 더 많은 EOS 보유자들의 표를 얻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국내 EOS BP가 하위권으로 밀린 1차적 원인은 EOS 가격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득표를 못 했기 때문이다.

표를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EOS 커뮤니티와 소통하고 접촉하면서 매력을 호소해야 한다. 표가 많은 집단을 상대로 협상도 해야 한다. 바로 정치다.

국내 BP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노드원의 류한석 대표는 국내 타 BP들은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만 신경썼을 뿐 정치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내부에서는 치열하게 표를 둘러싼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 BP들은 ‘파벌 싸움’이라며 부정적인 도장을 찍어버리거 회피하다보니 EOS 세계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EOS 세계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류 대표는 최근 캄보디아의 BP와 합병에 성공했다.
"블록체인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도구라고 생각한다. 고래들과 거래소, 개미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다. 이러한 이해관계를 맞춰나가기 위한 합의 과정이 투표다. 결국 EOS 세상에서 다양한 이해 관계를 만족시키고, 원하는 목표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표를 얻기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 노드원은 중국계 고래, 서구권의 리버테리언(libertarian, 자유의지론자)의 표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다." - 류한석 노드원 대표

 

원인 3. 중국


국내 BP들 사이에서는 유독 중국 BP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가 심하다. 중국계 고래(암호화폐 대량 보유자)와 거래소들이 판을 치면서 국내 BP의 입지가 너무 좁아졌다는 것이다.

실제 대표적인 중국계 고래 리샤오라이(李笑来)는 지난해 EOS BP 선거 시작과 함께 자신의 보유량을 바탕으로 선거에 적극 개입했다. 또한 후오비, 빅원(Big.ONE), 오케이코인 등 중국계 거래소뿐 아니라 앤트풀 등 암호화폐 채굴 업체도 BP 선거에 뛰어들었다. 블록스아이오의 BP 순위를 살펴보면 5위 내에 4명이 중국계 BP다. 메인 BP인 21위 내에는 15명이 중국계다.

이오시스를 운영하는 체인파트너스의 표철민 대표는 이 때문에 국내 BP들이 하위권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표 대표는 "EOS 생태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현재 중국계 BP들의 담합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 BP들은 중국계 담합 서클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순위가 밀린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BP 중 1위부터 5위까지 순위. 출처=블록스아이오

그러나 중국계 고래와 거래소의 담합 자체를 국내 EOS BP의 부진의 원인이라고 하기는 어폐가 있어보인다. 상위 BP 가운데는 EOS 선거 초기 한국과 상황이 비슷했거나 더 안 좋았던 일본이나 미국, 우크라이나 등의 팀들이 여전히 포진해있다.

더욱이 EOS BP 선거는 국가대항전이 아니다. EOS를 보유한 이들은 국적과 무관하게 투표권을 갖는다. 국적과 사용언어가 일부 집단을 묶는 요소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 BP 목록에서도 투표자의 이름을 보면 BP의 소재지와는 무관한 이름이 많다. 일본 소재 BP에 중남미 이름이 보이는 식이다.

지난해 7월 EOS 재단인 블록원(Block.one)이 보유하고 있는 1억 개의 EOS를 대표 노드 선거에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탈중앙화 논쟁 탓에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블록원의 선거 개입은 한 나라에 치우치지 않는 BP 구성을 실현할 수 있다. 오히려 정치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인 셈이다.

 

원인 4. 낮은 투표율


국내 BP 후보의 활동이 아무리 활발하더라도, 아무리 전세계를 상대로 정치력을 발휘하더라도, 국내 EOS 커뮤니티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투표에 나서지 않는다면,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 특히 간발의 표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선거에서라면, 안방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전 세계 BP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오스후오비풀은 1억 5500만 득표로 전체 EOS 발행량의 2.005%를 차지한다. 상위 21위 내 BP 역시 1.7% 내외를 득표하고 있다. 국내 BP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 중인 노드원이 0.64%를 차지하고 있다. 넘볼 수 없는 수준의 격차는 아니다. 적은 표차로 순위가 갈릴 수 있는 조건이다.

국내 EOS BP 업계에 따르면 EOS 총발행량의 약 10%가 우리나라 개인 사용자 지갑이나 거래소에 보관 중이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하지만 BP 투표 참여는 미미한 수준이다. 개인 지갑에서 이뤄진 투표는 찾기 힘들고, 거래소는 투표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제라도 국내 거래소에 보관된 EOS 물량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19일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은 자체 보유한 EOS를 한국 기반 프록시에 지원해 국내 BP 영향력 확대에 기여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BP들은 일제히 환영했다. 후오비, 빅원 등 중국계 거래소들이 해왔듯이 빗썸 보유 EOS를 국내 BP에 투표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빗썸의 운영사 비티씨코리아닷컴의 감사보고서(4월11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빗썸이 자체 보유한 EOS는 182만3732개, 회원 위탁 물량은 5428만1836개로 총 5610만5568개이다. 빗썸이 자체 보유한 EOS 물량은 전체 EOS의 0.7% 수준이고, 회원 위탁 물량을 모두 위임 받으면 전세계 EOS 5.6%에 이른다. 자체 보유량도 만만치 않지만, 회원 보유량을 업고 대리투표에 나선다면 커뮤니티의 지각이 흔들릴 규모다.
"늦어도 올해 안에 국내 EOS BP 투표를 시작할 계획이다. 먼저, 회사 보유분으로 투표 참여를 진행하게 된다. 이후 빗썸 이용 고객 중에서 투표 참여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EOS 투표 참여 도구도 제공할 계획이다" - 빗썸 관계자

이상옥 덱시오스(DEXEOS) 최고전략책임자(CSO)는 빗썸도 투표 참여로 부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윈윈(wIn-win)'이라고 설명했다. 덱시오스는 이번에 새롭게 국내 EOS BP 참여를 선언했다.
"빗썸의 EOS BP 투표 참여로 전 세계 EOS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EOS BP 중에서는 EOS 네트워크나 생태계 확산에 크게 기여한 팀도 있다. 하지만 일부 특정 세력끼리의 투표로 한국 BP들이 외면받았다. 그런 점에서 빗썸의 국내 BP를 대상으로 한 투표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 이상옥 덱시오스 C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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