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라는 암호화폐가 아니다. 그러나/그러므로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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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le Acheson
Noelle Acheson 2019년 7월9일 20:00
Libra Isn’t a Cryptocurrency. It’s a Glimpse of a New Asset Class
출처=셔터스톡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신원을 포함한 개인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그동안 숱한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페이스북이 만든 리브라 코인은 정작 자기의 신원, 정체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안정성이 높은 글로벌 암호화폐’로 정의하면서 세계 유수 언론들도 리브라를 ‘암호화폐’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리브라는 암호화폐가 아니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전 세계가 리브라의 탄생을 지켜보며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암호화폐 업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리브라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리브라의 사용과 규제 적용 방법이 달라진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리브라를 단순히 암호화폐로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리브라에 대한 정의는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증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름이 전부가 아니다


그럼 우선 리브라가 왜 암호화폐가 아닌지 살펴보자.

암호화폐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대체로 암호화폐로 구분되기 위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중앙의 권력이) 검열하기 어려워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암호화폐가 되려면 특정 이해관계자에 의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탈중앙화된 환경에서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 리브라는 아직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리브라연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탈중앙화된 조직으로 바꿔나가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탈중앙화를 예정대로 추진해나갈지 여부도 전적으로 리브라연합의 손에 달린 실정이다.

아울러 비트코인을 비롯한 유사 암호화폐의 가치가 기반이 되는 기술이나 시장의 합의, 수학적 산출에 의해 결정되는 것과 달리 리브라의 가치는 다수의 법정통화와 증권의 가치를 토대로 결정된다.

리브라와 기존 암호화폐의 유일한 공통점은 블록체인에서 구동된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리브라는 무엇인가? 표면적으로 본다면 법정통화나 실물자산과 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자산에 연동돼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스테이블코인’과 비슷하다. (일부 스테이블코인은 알고리듬을 기반으로 가치가 결정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현재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지불과 결제 업무를 위한 스테이블코인 개발 프로젝트가 다수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로 출시돼 유통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은 많지 않다. 이미 출시된 스테이블코인 중에서도 미국 달러에 연동되는 테더(USDT) 정도만 의미 있는 유통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고,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리브라 백서는 리브라가 “다수 국가의 은행 예치금과 정부가 발행하는 증권”에 동시 연동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증권’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주목하자. 증권의 가치에 연동되는 자산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증권이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리브라와 다른 스테이블코인의 차이가 드러난다. 결국 리브라는 특정 법정통화의 가치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라기 보다는 상장지수펀드(ETF)에 가깝다.

물론 단기 정부채는 그 특성상 증권보다는 화폐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스테이블코인 자체에 대한 규제 당국의 방침도 결정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크립토이볼브드(Crypto Evolved) 콘퍼런스에 참석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엘리자베스 베어드 차장은 스테이블코인을 무엇으로 규정해야 하는지 묻는 말에 딱 잘라 ‘증권’이라고 대답했다.

일부에서는 하나의 법정통화에 연동되는 기본적 형태의 스테이블코인마저도 결국은 약속어음처럼 언제든지 해당 법정통화로 교환할 수 있는 증권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SEC의 디지털자산 및 혁신 담당 고문 발레리 스체파닉은 지난주 열린 청문회에서 사실관계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은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라도 증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과 화폐


리브라 코인과 리브라 투자 토큰(Libra Investment Token)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리브라 투자 토큰은 증권이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리브라는 리브라 코인을 일컫는 것으로, 페이스북은 언젠가 리브라 코인이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사실상의 새로운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고 있다.

리브라 백서는 리브라를 통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리브라 프로젝트의 미션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화폐 개발을 통해 수십억 명이 사용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리브라가 사용하기 ‘쉽다’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또 증권을 ‘화폐’로 사용하는 게 가능할까?

과거 화폐는 자산의 가치를 표시하는 수단으로 시작했다. 금본위제 시절 미국 달러를 비롯한 국가 통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당시 각국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초 자산이었던 금은 어느 특정 주체가 통제하거나 발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리브라와는 출발지점 자체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리브라에 대한 정의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리브라를 증권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리브라가 공식적으로 하나의 증권으로 분류된다면 리브라를 거래하는 것은 곧 증권을 사고파는 행위가 되고, 그에 따른 자본 손익이 발생하게 된다.

다만 그 성격 자체는 스테이블코인과 같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수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리브라를 특정 통화로 교환할 때 리브라에 연동되는 다른 통화들의 가치는 그에 비례해 변동되기 때문이다. (리브라 자체가 한 국가의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이용하는 화폐 단위가 될 가능성은 작다.)

물론 앞으로 리브라와 법정통화를 교환할 때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손쉽게 계산해 주는 소프트웨어도 개발되겠지만, 이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장벽이 될 수 있다. 단순히 그 과정이 힘들고 비용이 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법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이라도 투자 수익에 대한 세금을 덜 내고 싶은 마음은 얼마든지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포장


이 모든 것이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포트폴리오 구성에는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공개된 리브라의 성격상 리브라를 포트폴리오에 포함한다고 해도 이전보다 확연히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고위험·고수익 투자보다 유동성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투자자들도 많기 때문에, 리브라 생태계가 자리를 잡아가면 대출이나 리브라를 담보로 이용하는 거래 등을 통해 안정적 수익을 기대할 수는 있다. 이는 물론 증권업계를 뒤흔들 만큼 큰 변화는 아니다.

사실 리브라 자체는 별다른 파급력을 지니지 않는다. 지금은 없지만, 오히려 미래에 등장하게 될 차세대 투자 자산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증권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개념은 매우 혁신적이며 잠재력이 풍부한 발상이다. 또 원칙적으로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해서 큰 수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기존 발행된 증권의 가치에 연동되는 배당금 지급 방식으로 신규 증권을 발행한다면 증권의 가치는 유지되면서 투자자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가치가 오를 때 증권의 가격이 오르는 대신 알고리듬을 통해 더 많은 증권이 발행·지급되며, 반대로 가치가 하락할 때는 기존 발행된 증권 중 일부가 소각된다.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증권의 가격은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보유 자산의 가치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증권을 결제 수단으로 이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재정적 문제들은 대부분의 금융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백오피스 역량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수의 통화와 정부채에 동시에 연동되는 새로운 종류의 증권 개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환율 변동으로 증권 발행인이 겪을 수 있는 손실 규모를 제한하는 맞춤형 증권을 생각해 보자. 많은 기업과 투자자들이 환율 변동 위험을 제거하는 환헤지(currency hedge)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면서 안정적 수익을 가져다주는 채권 기반 상품이 탄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제거하는 기능이 내재돼 금융시장이나 산업 공급망에서 사용할 수 있는 토큰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기대할 수 없던 것을 꿈꾸


금융 혁신이 네트워크 연결과 탈중앙화된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금융 시장은 언제나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고, 때로는 그 변화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의도치 않았던 결과가 나타났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리브라의 등장은 또 하나의 커다란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리브라가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리브라가 추구하는 금융 포용성 확대와 결제 절차 원활화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세계의 많은 기업이 고민해온 문제다. 리브라 자체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진 않더라도, 이번을 계기로 더욱 건설적인 논의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분야를 불문하고 새롭게 개발된 기술이 본래 의도한 목적대로 사용되는 경우는 매우 적다. 리브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본래 개발 취지에서는 벗어나지만, 분산원장 기술에 경제 철학과 능숙한 마케팅을 접목해 탄생한 리브라는 암호화폐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암호화폐와 증권형 토큰의 전반적 도입과 개발을 한층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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