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가들은 암호화폐 거래 양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DAXPO 부산 2019 성황리 개최 / 세계 각국 산업·정책 전문가들 암호화폐 제도화 위해 머리 맞대 / “FATF, 대규모 암시장 원치 않아” 금융기관-암호화폐 관계 개선 기대 / “국가경제 활력 위한 정부 정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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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김병철 2019년 9월24일 08:00
코인데스크코리아와 부산광역시는 지난 3일 부산 해운대 파크하얏트 호텔에서 '디지털자산거래소박람회(DAXPO·댁스포) 2019'를 공동개최했다. 왼쪽부터 미국 디지털상공회의소 에이미 다빈 김 수석정책관, 로저 윌킨스 전 FATF 의장,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출처=이정아/한겨레
코인데스크코리아와 부산광역시는 지난 3일 부산 해운대 파크하얏트 호텔에서 '디지털자산거래소박람회(DAXPO·댁스포) 2019'를 공동개최했다. 왼쪽부터 미국 디지털상공회의소 에이미 다빈 김 수석정책관, 로저 윌킨스 전 FATF 의장,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출처=이정아/한겨레


2009년 세상에 나온 비트코인은 민간의 화폐(또는 자산)다.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0원에서 1천만원까지 올랐고, 이더리움 등 수천개의 암호화폐가 뒤따라 나왔다. 이젠 한국의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한곳의 하루 거래액만 1천억원이 넘는다. 더 이상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가상의 산업은 아니라는 얘기다. 암호화폐는 산업을 형성하면서 서서히 제도권으로 진입하고 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이하 방지기구)가 지난 6월 암호화폐에 대한 자금세탁방지 국제기준을 발표하고, 이를 주요 20개국(G20) 정상이 추인하면서 논의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지난 3일 블록체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코리아와 부산광역시가 부산 해운대 파크하얏트 호텔에서 ‘디지털자산거래소박람회(DAXPO·댁스포) 2019’를 공동개최했다. 방지기구의 국제기준이 나온 지 3개월 만에 열린 댁스포에선 각국의 업계 인사들, 정책 전문가 등이 모여 암호화폐 제도화를 논의했다. 2015~2016년 방지기구 의장을 지낸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 6월 G20 이후 암호화폐 자금세탁과 관련한 첫 세미나인 만큼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댁스포 토의 내용이 10월 방지기구 총회에서 가이드라인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지기구 목표는 암호화폐 양성화


방지기구의 기준은 암호화폐 거래소 등록제를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한국 등 37개 회원국은 거래소 등 가상자산 취급업소(VASP)에 대한 등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지기구의 기준을 반영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개정안 여러건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재 법외 영역에 있는 암호화폐 기업들은 금융기관에 준하는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지고, 금융당국의 감독 대상이 된다.

방지기구가 암호화폐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도입한 이유는 일부 우려와 달리 이 산업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방지기구에서 암호화폐 규제의 초석을 다진 로저 윌킨스 전 의장(2014~2015년)은 댁스포에서 방지기구의 애초 목표는 글로벌 규제 통일과 거래 양성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각국 규제 차이를 이용한 암호화폐 차익거래를 방지하는 게 방지기구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상화폐 거래가 완벽하게 음지화되는 걸 우려했다. 대규모 암시장이 조성되는 걸 막고 투명하게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6월 나온 방지기구의 기준에 대해서도 “미국 같은 나라가 만약 암호화폐를 금지하고 싶었다면, 그냥 금지시켰을 것이다. 이렇게 규제를 만든 것은 허용해나가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기준은 회원국 정부들이 동의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방지기구 주요국들이, 예컨대 한국과 일본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통과 못 했을 것이다. 암호화폐를 금지한 중국도 아마 받아들일 만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댁스포에 참여한 블록체인 업계는 대체로 암호화폐에 대한 국제기준이 처음으로 나온 것을 환영했다. 영국 암호화폐 거래정보 분석기업 일립틱의 권세민씨는 “암호화폐 업계와 은행이 좀 더 나은 관계를 맺는 데 방지기구의 권고안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금융기관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암호화폐 거래소와 상대하기를 거부했다. 그 결과 많은 암호화폐 거래소는 은행과 거래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방지기구의 권고가 규제 공백을 해소하면 암호화폐 기업이 은행과 더 수월하게 사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싱가포르 보안회사 웁살라시큐리티의 패트릭 김 대표도 “암호화폐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합법적인 사업을 추구하는 선의의 사업가들이나 개인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존재했다. 방지기구의 권고안이 나오면서 합법적인 암호화폐 산업의 방향성이 제시됐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수탁회사 사이바보(CYBAVO)의 로베르토 마차도 상품디렉터는 “규제는 업계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 규제가 일단 있어야 더 많은 이용자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업계 입장에선 규제 도입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암호화폐는 국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데, 암호화폐 기업은 소속 국가의 법제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의 정책 차이에 따라 일부 국가의 암호화폐 산업은 부흥하고, 일부는 위축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정부 리스크가 더 커진다는 얘기다. 이종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다른 나라는 블록체인이 글로벌 성장 산업으로 막대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걸 인식한다”며 “글로벌 경쟁에 뒤지지 않고 국가 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주도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시장 건전화를 위한 자율규제


댁스포에선 암호화폐 업계의 공동 대응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정부 정책이 확정되기 전에 업계가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자율규제를 통해 시장 건전성을 도모하자는 주장이다. 영국에 위치한 비영리단체 글로벌디지털금융(GDF)은 전세계 기업들과 함께 디지털 자산 업계의 행동강령(Code of Conduct)을 만들고 있다. 티아나 베이커테일러 집행이사는 “지난 1일 고객신원파악(KYC)과 자금세탁방지(AML), 증권형 토큰(STO), 스테이블코인 등 세 분야와 관련한 행동강령 조항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이런 노력은 방지기구의 기준에 포함된 여행규칙(Travel Rule)을 준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여행규칙은 자금세탁을 막기 위해 암호화폐 거래소 등 가상자산 취급업소가 송금자와 수신자의 정보를 보관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업계는 암호화폐 기술에는 적합하지 않은 전통 금융권의 규제를 그대로 가져왔다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뉴욕멜론은행, 스위프트(SWIFT) 출신으로 암호화폐 수탁사 온체인 커스토디언의 최고경영자(CEO)인 알렉산드레 케치는 “방지기구의 의도와 달리 암호화폐 전송을 음성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업계의 레그테크(규제기술) 기업들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만의 보안기업 쿨빗엑스(X)는 댁스포에서 고객신원파악,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보안 솔루션 ‘시그나 브리지’를 소개했다. 어우스마이 쿨빗엑스 대표는 이 서비스에 대해 “가상자산 취급업소가 고객정보를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암호화폐계의 스위프트”라며 “올해 4분기 중 전세계 주요 5개 거래소에서 파일럿 서비스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금세탁방지 솔루션 개발사 코인펌의 야쿠프 피욜레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고객정보를 규제기관과 공유할 수 있는 자금세탁방지 플랫폼을 이미 제공하고 있다. 아직 모든 규제를 만족하진 못하지만, 해결 방법은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댁스포에선 암호화폐 전송내역을 추적·분석하는 기업들의 발표도 있었다. 웁살라시큐리티는 3조원 규모의 다단계 암호화폐인 ‘플러스토큰’ 자금이 업비트, 빗썸 등 국내 거래소와 후오비, 바이낸스 등 중국계 거래소에서 세탁되고 있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또한 일립틱은 한국 거래소를 통해 다크웹 ‘유로건즈’에서 총기류를 구매한 사례를 공개했다. 권세민씨는 “암호화폐가 사람들 생각보다 불법거래에 많이 쓰이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불법적 행위를 위한 거래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이 기사는 24일치 한겨레 19면과 인터넷한겨레에도 보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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