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라로 불붙은 세계 디지털통화 패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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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김동환 2019년 10월22일 07:00
영국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 마크 카니 총재가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열린 ‘거대 기술기업과 금융의 미래’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카니 총재는 여러 국가의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묶은 글로벌 디지털 화폐를 제안했다. 출처=워싱턴/EPA 연합뉴스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Libra)를 둘러싸고 통화 패권을 향한 각국 정부의 경쟁 움직임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리브라연합, 디지털 화폐를 이용해 달러 패권을 약화시키려는 중국과 유럽이 얽혀 있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15일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자체 디지털 화폐(CBDC) 구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의 로버트 캐플런 총재도 16일 “디지털 화폐의 가능성과 대응방안 등을 놓고 연준 내에서 치열한 토론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준 내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준은 지난 9월까지만 해도 디지털 화폐 발행 가능성에 대해 ‘계획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혀왔다.

디지털 화폐 도입 필요성이 거론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나라 정부나 기관이 달러를 대체할 만한 화폐를 만들 경우, 미국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통화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행사하는 강력한 경제제제의 힘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서 나온다. 크리스토퍼 잔칼로 전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은 지난 15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디지털 화폐 발행에 대한 각국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으며, 미국이 뒤처지기 않기 위해서는 달러 디지털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현재 디지털 화폐 분야에서 가장 미국에 위협적인 대상은 중국 인민은행이 준비하고 있는 디지털 위안화다. 일단 중국 내 사용 인구만 14억명에 이른다.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아이티 기업의 핀테크 기술과 결합되면, 중국과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는 개발도상국 등에 빠른 속도로 전파될 수 있다. 중국은 2014년부터 미국과의 통화 패권 다툼을 염두에 두고 디지털 화폐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지도 상당하다. 위안화 세계화를 위해 이미 2018년 3월, 상하이 선물거래소에서 위안화 표시 원유선물도 출시한 바 있다.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도 상당한 위협이다. 2019년 1분기 기준 월간 페이스북 실사용자는 24억명에 이른다. 다만 아직 미국에 다행인 점은 리브라 프로젝트의 주체인 페이스북이 자국 기업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국내 규제 등을 활용해 리브라 프로젝트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현재 리브라연합이 공개한 리브라의 법정통화 바스켓(리브라는 복수의 통화와 채권으로 구성된 바스켓에 리브라의 가치를 연동한다는 계획이다)의 비율을 보면,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50%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40%인 것을 고려하면 일종의 ‘미국 우대’가 작용한 셈이다. 특별인출권 비율이 10% 정도인 위안화는 리브라 바스켓에는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하버드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니얼 퍼거슨은 <선데이 타임스> 기고에서 “중국의 디지털 위안이 미국의 달러 패권에 중대한 위협을 가할 수 있고, 리브라가 일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로권 국가들은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는 상황을 주시하면서도 사기업인 페이스북이 통화 발행의 주체가 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지난 9월 공동 성명을 내고 리브라에 대해 “국가 주권 침해”라며 “유럽은 리브라를 거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요 법정통화를 바스켓으로 묶어 안정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디지털 화폐를 만들겠다는 리브라의 발상 자체는 대체로 긍정하는 분위기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지난 17일 트위터를 통해 리브라 대응을 위해서 국가 간 결제 수단이 될 수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 중앙은행의 마크 카니 총재는 “여러 국가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들을 묶어 네트워크를 구성하자”며 ‘합성패권 통화’(Synthetic Hegemonic Currency)를 제안하기도 했다. 기축통화 패권이 달러에서 위안화 등 한 국가의 통화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리브라와 유사한 형태의 글로벌 디지털 화폐를 활용하는 것이 세계 경제의 안정성 측면에서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는 합성패권 통화를 만들어 국제무역과 지급결제에 활용하면 세계 경제의 달러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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