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비트코인, 나쁜 비트코인
[편집장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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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재
유신재 2019년 10월24일 08:30


비트코인이 범죄에 이용된 사례가 하나 더 늘었다.

한국과 미국 등 32개국의 공조수사로 사상 최대 규모의 아동 성착취 영상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와 이용자 337명이 붙잡혔다. 이들은 비트코인을 이용해 영상을 사고팔았다. 아마도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비트코인이 아니었으면 이런 국제적인 사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크웹의 불법 사이트에 결제솔루션을 제공할 금융기관이 있을 리 없고, 고스란히 신원이 노출되는 은행계좌나 신용카드로 불법 동영상을 구입할 사람도 없을 테니 말이다.

범죄자들의 발목을 잡은 것도 비트코인이었다. 비트코인은 익명성을 보장하지만 모든 거래 내역은 블록체인에 기록돼 누구나 볼 수 있다. 체이널리시스라는 미국의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 기업이 웰컴투비디오에서 들고난 비트코인 거래를 모두 추적했고, 고객신원확인(KYC) 제도를 갖춘 각국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해당 거래자의 신원을 수사기관에 제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12개 국가에서 범죄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고, 23명의 학대받는 아이들이 구출됐다. 암호화폐 산업이 발전하면서 국내에도 이같은 암호화폐 추적 기술을 갖춘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암호화폐를 이용해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트코인이 가능케 한 국제적인 범죄와 비트코인이 가능케 한 국제적인 공조수사는 아동 성착취 영상물 제작, 유통, 소비라는 역겨운 범죄를 여러 국가들이 어떻게 처벌하는지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웰컴투비디오에서 영상을 내려받은 미국의 이용자들은 대부분 최소 5년, 최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거나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징역형에 더해 우리나라의 보호관찰과 비슷한 의무가석방도 최소 5년 이상 받게 된다. 미국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이 같은 중형을 예상한 범죄자 2명이 수사를 받는 도중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다. 영국의 한 이용자는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웰컴투비디오의 원산지이자 가장 많은 이용자가 붙잡힌 한국의 사정은 크게 다르다. 이 사건의 주범인 사이트 운영자 손아무개(23)는 지난해 체포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그는 곧 출소를 앞두고 있다. 223명에 이르는 한국인 이용자들은 대부분 수백만원 수준의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는 데 그쳤다.

이쯤 되면 불법 영상물로 돈을 벌려는 범죄자들이 한국으로 몰려와도 이상할 게 없을 지경이다. 첨단기법을 동원해 2년 넘게 이어진 국제 공조수사의 결말이 참 허무하고 부끄럽다. 이번 사건이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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