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비트코인 발언? '중국특색 블록체인' 기조는 바뀐 적이 없다
시진핑의 ‘블록체인 드라이브’, 중국이 구상하는 미래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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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김외현 2019년 11월19일 15:00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4일 "블록체인 기술 및 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가속화해야 한다"며 대대적인 정책 드라이브를 걸면서 전세계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의 이목이 중국의 구상에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한 시 주석. 출처=한겨레 자료


 

불과 한 달 전의 일인데도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블록체인과 중국’ 하면 시진핑 국가주석이 블록체인 관련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한 발언만 기억나지만, 직전까지는 달랐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둘러싼 많은 이야깃거리에서 중국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가 중심이었다. 페이스북이 구상을 내놓은 암호화폐 ‘리브라’와 날마다 비교됐고, 중국의 중앙은행이 다른 나라보다 앞서 디지털화폐를 내놓는다면 그 성공 배경은 어떤 것일지 다양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당시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과연 중국이 탈중앙, 개방, 투명 등의 성격을 모두 갖춘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시 주석의 발언(10월24일)보다 두 달 전인 8월23일 헤이룽장성 이춘에서 열린 민간행사 ‘중국금융 40인 포럼’에서 무창춘 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장은 인민은행의 이른바 ‘디지털화폐/전자지불’(DC/EP) 계획을 소개하면서 ‘기술 중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인민은행-시중은행’과 ‘시중은행-이용자’의 2중 공급·관리 구조로 구성되는 디지털화폐에서, 무 소장은 인민은행-시중은행 단계에서는 어느 특정 기술을 사용하기보다 블록체인, 중앙화 시스템, 디지털은행, 모바일 지불 등 다양한 환경에 모두 쓰일 수 있는 범용적 중립성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중은행-이용자 단계에서 사용하는 기술은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이 붙었다. 예시로 든 것은 처리 속도였다. 지난해 알리바바의 대규모 할인 행사인 광군제 때 초당 결제가 9만2771건을 기록했는데, 처리 속도가 초당 1천건을 목표로 하는 리브라는 물론, 비트코인(7건), 이더리움(10~20건) 등 순수 블록체인 시스템으로는 “소매급 수요의 높은 동시 처리 성능을 실현할 수 없다”고 했다. 무 소장은 또 인민은행의 사회적 책임, 거시경제 관리 보증, 통화량 과다 공급 방지, 통화정책 유지 등을 위해 ‘중앙화’ 시스템을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정도면 사실상 ‘탈중앙화’ 블록체인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배격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인민은행의 디지털화폐는 결코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블록체인에 부정적인 듯했다.

그러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10월23일(미국시각) 구글 양자컴퓨터 개발 소식에 7500달러선을 내주며 무너지던 비트코인 가격이 시 주석의 발언이 공개된 10월25일(중국시각) 1만달러를 넘어서는 등 전세계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했다. 시 주석은 이날 블록체인 기술 및 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가속화해야 한다면서 “중국이 블록체인 기술 융합, 기술 확장, 산업 세분화 등 계기를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발언 공개 이튿날인 26일 중국의 입법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암호법’을 통과시켰다.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되는 이 법은 중국 정부가 암호화 관련 산업을 어떻게 보호하고 장려해야 할지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뒤이어 중국 정부와 민간기업은 블록체인 관련 정책과 사업 계획을 일제히 쏟아냈다.

과연 중국이 변했나? 갑자기?


잇따른 중국발 소식에 들썩이는 세계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중국이 서구권, 특히 미국과의 경쟁을 의식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시 주석의 발언을 보면, 그는 “블록체인을 핵심 기술 자주 혁신의 주요 돌파구로 삼아, 주된 공격 방향을 명확히 해서 투입 자원을 늘리고, 주요 핵심 기술 다수를 점령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주’ ‘공격’ ‘점령’ 등의 표현에서 보듯이, 미-중 무역전쟁 등 서구권과의 대결 구도에서 신기술 선점으로 역전을 꾀한다는 느낌을 준다. 지난 4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린 시평의 제목은 ‘블록체인, 앞차 추월할 돌파구’였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 등 제조업 분야의 핵심 기술 개발 필요성을 안팎으로 강조하다가 미국에 무역전쟁의 빌미를 준 바 있다.

이 같은 관점은 미국, 특히 암호화폐 리브라를 추진하는 페이스북에서 나오는 반응과도 맞아떨어진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시 주석의 발언 하루 전인 10월23일 리브라를 주제로 한 미 하원 청문회에 참석했다. 저커버그는 “우리가 논쟁을 하는 동안 세계 다른 나라들이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비슷한 아이디어를 론칭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혁신하지 않는다면, 금융 분야에서 우리의 주도적 지위는 보장받을 수 없다”고 했다. 페이스북이 노골적으로 ‘미-중 경쟁’ 프레임을 자극했고, 중국이 이 프레임에 따라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행보는 꽤 차분하고 착실하게 진행돼왔다고 보는 게 맞아 보인다.

시 주석은 이미 1년 반 전인 지난해 5월28일 중국과학원·중국공정원 원사 회의에서 “21세기 들어 글로벌 과학기술 혁신이 글로벌 경제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면서, 블록체인, 인공지능, 양자정보, 이동통신, 물류망 등이 새 시대 정보기술의 총아라고 언급했다. 국무원(행정부)이 2015년 제시한 13차 5개년 계획(2016~2020년)에서도 중국은 블록체인을 ‘전략적 최선진 기술’로 규정해 진흥을 추진하기로 했다. 블록체인 기술도 검토했다는 디지털화폐의 첫 구상이 이뤄진 것도 2014년이라고 인민은행은 밝히고 있다.

암호화폐는 용인 않는다, 꾸준히


블록체인 진흥 기조와는 대조적으로 암호화폐 산업에 혹독한 매질을 꾸준히 해온 것도 사실이다.

지난주 상하이시 인민은행은 산하 구 단위에서 암호화폐 거래, 발행, 플랫폼 홍보 등이 적발되면 보고하고 퇴출시키라는 공문을 보냈다. ‘블록체인 진흥’ 분위기를 틈탄 암호화폐 업계의 ‘사기 진작’을 차단한 것이다. 사실 중국 내 암호화폐 거래는 번잡스럽긴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국외로 옮겨간 중국계 거래소 일부가 중국인들에게 암호화폐 간 거래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른 한편에선 지하시장처럼 개인 간에 이뤄지는 장외거래(OTC)가 활성화돼 있다. 규제 당국의 손이 여기까지 미치기는 힘들었는데, 이번에 인민은행이 단속을 주문한 셈이다.

시 주석 발언 뒤 주가가 급등했던 블록체인 관련 기업이 실제 기술을 보유했는지 조사를 받는 등 투기성 행위에 대한 단속도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3조원 규모의 암호화폐 다단계 사기였던 ‘플러스토큰’처럼 심각한 사기 사건을 잇따라 겪은 뒤 암호화폐 공개(ICO) 금지 등 강경책을 펼쳐왔다. 그러니 기업들도 조심스럽다. 최대 쇼핑몰 알리바바가 지난 11일 연중 최대 할인 기간인 광군제를 맞아 제휴를 통한 암호화폐 포인트 적립 이벤트를 했다가 금세 직접적인 관련성을 부인하고 나섰다.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국제적인 규제 흐름에서도 중국은 예외가 아니다. 올해 업계의 가장 큰 화제는 암호화폐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VASP)에 자금 송·수신자 정보 확인과 저장 의무를 규정하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권고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중국은 지난 7월부터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의 회장국을 맡고 있다. 부패 자금의 국외 유출에 골머리를 썩는 중국 당국이 이 같은 조처를 마다할 리 없다.




시진핑 주석의 ‘블록체인 산업 육성’ 발언은 최고지도부인 당 정치국(25명) 집체학습에서 나왔다. 집체학습은 전문가 초청 등을 통해 세계 발전 추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도모하는 자리다. 출처=CCTV 화면 갈무리






블록체인 육성책도, 암호화폐 차단책도 큰 변화는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시 주석 발언 이후 암호화폐 채굴 분야는 확연히 변했다. 지난 4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비트코인 채굴업을 ‘중단·권고 산업’ 목록 초안에 포함해 전세계 암호화폐 업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는데, 시 주석 발언 엿새 뒤인 10월30일 발표된 최종안에서는 빠졌다. 중국엔 비트메인, 카난크리에이티브, 마이크로비티(BT) 등 주요 채굴 관련 기업들이 포진해 있고, 값싼 전력이 풍부한 쓰촨성은 세계 최대 규모의 비트코인 채굴량을 자랑한다.

다만, 앞서 ‘중단 권고’에도 중국 내 채굴 업계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단순한 권고안이었기 때문이다. 외국 이전을 고려한다는 기업들이 있었지만, 규제보다는 극심한 국내 경쟁이 이유였다.

광둥성 광저우시가 블록체인 분야에 10억위안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고, ‘징진지’(수도권) 지역의 스마트시티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다는 등 각종 정책이 쏟아지는 것도 최고지도자의 ‘신호’에 부응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텐센트(인터넷), 차이나유니콤(통신), 앤트파이낸셜(핀테크), 징둥(전자상거래), 순펑(물류) 등 각 분야 대기업들이 각종 사업 분야에 블록체인 활용 방안을 발표한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맞춰 중국의 벤처캐피털 투자자들도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다시 눈길을 돌리는 분위기다. 중국의 블록체인 중심 벤처캐피털은 애초 채굴, 거래소 등 암호화폐 산업을 통해 형성됐다가 2018년 암호화폐 가격 폭락 후 90%가 시장을 떠났다. 그러나 분위기가 바뀌자 전문성과 성숙도를 갖춘 투자자들이 돌아오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 특색' 블록체인의 미래는?


시 주석의 블록체인 산업 진흥 발언은 최고지도부인 당 정치국(25명) 집체학습에서 나왔다. 집체학습은 전문가 초청 등을 통해 세계 발전 추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도모하는 자리다. 블록체인 관련 강연과 해설을 맡았던 천춘 저장대 교수는 직접 블록체인 기술기업을 창립한 인물이다. 결국 당 지도부에서 오랜 준비와 많은 이들의 검토를 거쳐 전략적으로 접근한 주제이고, 이를 통해 시 주석 이름으로 “진흥시켜야 한다”는 정제된 결론이 나온 셈이다. 누가 뭐래도 중국의 블록체인 산업 육성은 지난 몇 해 동안 이어진 면면한 흐름 속에서 최고지도부가 높은 관심을 보인 주제로 봐야 한다.

지금까지 중국 당국의 설명대로라면, 블록체인 기술, 이것과 구분된 암호화폐, 그 모두와 또 분리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모두 따로 노는 구조다. 그러나 우려하는 이들은 이 모두를 묶어서 걱정한다. 불투명하고 권위주의 성격을 비판받는 중국의 정치권력이 과도하게 실명화된 디지털화폐를 통해 모든 개인을 통제할 것이란 우려다. 그럴 때 암호화폐가 개인에게 숨통을 틔워줄 수 있지만 중국 당국은 블록체인을 진흥한다며 껍데기만 떠들썩할 뿐, 실제로는 탄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무창춘 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장은 지난 12일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 사용자 정보를 수집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용자의 구체적 개인정보까지 장악하려 해선 안 된다”며 “디지털 위안화도 익명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진흥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비슷한 맥락의 비판이 있다. 시 주석 발언 직후 관영 인민망은 블록체인에 공산당 입당 때의 마음가짐을 기록해 영원불변의 ‘초심’을 새기는 ‘롄상추신’(체인 위의 초심)이라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이는 2016년 시 주석이 당 창건 95주년 행사에서 했던 ‘부왕추신’(不忘初心·초심을 잊지 말라)이란 구호와 대구를 이루는 표현이다. 한쪽에서는 환영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다른 쪽에서는 “당이 코인이라도 발행하는 거냐”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중국의 한 법조계 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예전에 (시 주석이 발표한 신도시인) 슝안신구 관련 투자 상품이나 미-중 무역전쟁 이후 반도체 관련 투자 상품 때도 그랬는데, 고위층 인사가 한마디 할 때마다 다단계 판매와 주식 투기 광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사기에 당한다”며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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