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는 ‘디지털 위안화’…달러 기축통화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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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한겨레 기자
박현 한겨레 기자 2020년 1월10일 13:58

중국 기술전쟁 현장을 가다 ③ ‘디지털 금융’ 강국의 야심

디지털화폐 발행 시기만 남아
인민은행, 3년전 연구소 세워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지급 보증
작년 페북 ‘리브라’ 선언에 자극
세계 첫 디지털화폐 선점 노려

국제통화체제 대변화 기폭제 되나
국제적 통용여부가 관건이지만
금융계 ‘단기적으론 힘들다’ 대다수
중국경제 계속 확장해 미국 앞설 땐
디지털 위안화 파급력 무시 못해
‘일대일로’ 참여국 통용 우선할 듯

출처=한겨레


중국이 주요국 중앙은행으로는 세계 처음으로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는 시대를 올해 열 것으로 보인다. 알리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가 일상생활에서 보편화한 데 힘입어,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조만간 국가가 보증하는 디지털화폐까지 발행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디지털화폐 발행은 지난 수십년간 유지돼온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금융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 금융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인민은행은 디지털화폐 발행을 위한 준비작업을 거의 마치고 시기를 조율 중이다. 탕젠웨이 중국 교통은행 발전연구부 부총경리는 “인민은행은 2017년 선전에 디지털화폐연구소를 세우고 무역금융 블록체인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현재 디지털화폐 관련 특허 출원건수가 74건에 이른다”며 “세계 최초로 국가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상하이 금융권 인사는 “지난해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내놓겠다고 한 데 더 자극받아 발행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검토 중인 디지털화폐는 법정화폐의 디지털 버전을 내놓겠다는 구상이다. 비트코인 같은 민간 발행의 가상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매우 높고 법정화폐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신력이 떨어지는 반면에, 디지털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지급 보증을 한다는 점에서 신뢰성이 매우 높아 현재 여러 나라에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올해 신년사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관련해 연구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전문인력을 보강하는 한편, 국제기구에서의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다른 국가보다 디지털화폐를 앞서 내놓음으로써 시장 선점효과를 누리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표=한겨레


상하이에서 만난 중국 금융계 인사들은 디지털화폐의 이점으로 현금화폐를 대체함으로써 위조 방지, 자금세탁이나 탈세와 같은 지하자금의 양성화를 꾀할 수 있는데다, 자금거래와 국제송금이 매우 저렴하고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현재 대부분의 금융거래는 다단계 네트워크를 거쳐 결제가 이뤄지는 만큼 계좌 간 자금이동 절차가 마무리되는 데 2~3일이 소요되지만 단일 네트워크상에서 관리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금융거래 결제 업무가 순식간에 처리될 수 있다. 인민은행은 리브라가 발행돼 중국에 침투하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집행이 어려워지고 미국계 기업이 중국인들의 거래 명세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항할 필요성도 절감한 것으로 알려진다. 인민은행과의 공동 태스크포스에 관여한 한 중국 금융계 인사는 “인민은행은 4대 국유은행에 디지털화폐를 발행하고, 이들 기관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이를 공급하는 쌍층적 운영방식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국제금융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중국의 디지털화폐 발행이 70년 이상 유지돼온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국제통화체제의 대변화를 이끌 기폭제가 될 가능성 때문이다. 현재의 국제금융체제는 미국 달러의 유출입에 따라 신흥국의 금융이 불안정해지며, 위기 시 신흥국의 외채 부담을 가중하는 등의 부작용을 지적받고 있다. 국제금융계의 주류라 할 수 있는 마크 카니 영국 중앙은행 총재도 지난해 8월 미국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디지털화폐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쪽은 리브라 발행이나 디지털화폐 발행에 대해 기득권 상실을 우려한 탓인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히 혁명적이라고 불릴 정도의 이런 새로운 영역에 중국이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 위해선 중국의 디지털화폐가 국제적으로 통용돼야 하는데, 중국 금융계 인사들도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상하이 금융권 한 인사는 “무엇보다도 국제결제에 사용되는 화폐는 이를 보증하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하고, 안정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현재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중국이 수년째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했지만, 현재 국제 결제에서 사용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상하이 사회과학원 산하 국제금융화폐연구센터 저우위 소장도 “미국 경제규모가 영국을 넘어서고서도 70년이 흘러서야 달러 국제화 수준이 파운드를 넘어섰다”며 “그렇기 때문에 위안화의 국제화는 느린 과정일 것이고, 중국 경제 확대가 아직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0년, 20년 뒤라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중국 경제가 지속해서 확장해 미국을 앞설 경우 결제 통화도 바뀌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디지털화폐의 신속성과 경제성이 그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명한 금융학자인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기술이 기존의 미디어·정치·비즈니스 작동 방식을 혼란에 빠뜨린 것처럼, 달러를 지렛대로 삼은 미국의 광범위한 국익 추구 능력을 지속 불가능하게 만들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며 “서방국가들은 더 늦기 전에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들과의 국제송금이나 무역결제에 이 디지털화폐를 통용하는 방안을 복안으로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전략은 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포괄하는 거대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일대일로 관련 사업은 60여개국에서 진행 중인데, 지난해 4월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고위급 회담에 37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중국은 당시 17개 국가와 국경 간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인민은행과의 공동 태스크포스에 관여한 인사는 “중국은 일대일로를 잇는 국가들에 인프라 건설뿐만 아니라 금융지원도 해주고 있다. 국경 간 전자상거래와 대금 결제에 중국 디지털화폐를 사용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이나 서방국가들이 중국의 디지털화폐를 결제에 사용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은 단시일 내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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