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칼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암호화폐 언급을 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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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김병철 2020년 1월15일 07:00
은성수 금융위원장. 출처=금융위원회 제공

"미국에선 피델리티가, 독일에선 은행들이 암호화폐 사업을 한다는데요. 한국에선 암호화폐가 금융투자상품이 되기엔 아직 이르다고 보세요?"

지난 10일 '4차산업혁명시대-금융혁명의 시작' 토론회 축사를 하러 국회 도서관에서 막 도착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은 위원장은 멈칫하더니, 예상하지 못한 질문은 받은 듯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별다른 답을 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는 은 위원장을 뒤따라 가며 다시 물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데이터 3법만 생각하고"라고만 짧게 말했습니다.

그의 대답에 앞뒤 맥락을 붙여 보면 "(그 질문에 대해서는 별다른)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할말이 없습니다. 오늘 행사에 오면서는 축사에 들어갈) 데이터 3법만 생각하고"가 된다.

이 말은 듣자 머릿속에 몇가지 추측이 떠올랐습니다.

암호화폐=금융상품?


금융위원장은 한국 금융산업을 총괄하는 장관급 자리입니다. 은 위원장은 1983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30여년 넘게 재경부, 기재부, 청와대에서 줄곧 금융정책을 다뤄왔습니다. 웬만한 금융 관련 질문에는 막힘없이 답할 수 있는 전문가라는 얘기죠. 그런 그가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라고 말한 건, 암호화폐가 금융상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는 게 아닐까요?

가격에 미칠 영향


질문을 계속하자 은 위원장을 보좌하는 금융위 관계자가 저를 가로막았습니다. 그는 "기사가 나오면 가격이 움직이잖아요. 죄송합니다."라며 질문을 막았습니다. 금융위원장이 암호화폐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하면 비트코인 등 가격이 출렁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2018년 1월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의 '거래소 폐쇄' 발언이 떠올랐습니다.

앞서 제 질문에 나온 것처럼 일부 선진국은 암호화폐가 미래 금융산업의 한 분야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제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주 금융당국은 2015년 요건이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는 비트라이선스 제도를 만들어 암호화폐를 제도권에 집어넣었습니다. 미국의 거대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는 2019년 11월 암호화폐 거래와 수탁 사업을 위해 이 라이선스를 받았습니다.

독일은 은행이 암호화폐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은행법을 개정했고, 슈투트가르트 증권거래소는 증권법 규제 하에 디지털자산 거래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당국의 승인을 받고 ICO(암호화폐공개)를 할 수 있는 ICO 비자 제도를 만들었고요.

금융위원회가 선진국 동향을 파악하고 있지만, 워낙 투기 열풍에 데였던 터라 조심스러운 걸까요?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있는 걸 까요? 부디 전자이길 희망합니다.

다행히 최근 금융위원회 관계자로부터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위원장님이 (암호화폐를) 모르지 않아요. 관련 책도 읽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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