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호황 시대 막내린다
옵티머스 ‘폰지형 사기’에 좌초한 금융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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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한겨레 기자
박현 한겨레 기자 2020년 8월9일 08:00

ㄱ(63)씨는 올해 2월 엔에이치(NH)투자증권 투자상담사(PB)로부터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사모펀드 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계좌는 연 이율이 1%밖에 안되지만 여기에 투자하면 연 2.8%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공기관 채권에 투자하니 전혀 손실 볼 일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그는 3억원을 투자했다.

올해 6월 언론에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가 환매중단된다는 얘기를 듣고 증권사 담당자에게 어느 채권에 투자했는지 확인도 해봤다. ‘2억-37호 평택해양수산청. 1억-45호 국민행복주택(LH공사사업), 부산광역시, 한국토지주택공사.’ 담당자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고 안심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를 보니 모두 거짓말이었다. 

옵티머스 사모펀드 피해자에게 한 증권사 담당자가 문자메시지로 보내준 투자내역. 출처=한겨레
옵티머스 사모펀드 피해자에게 한 증권사 담당자가 문자메시지로 보내준 투자내역. 출처=한겨레

ㄱ씨 사례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사실상 사기를 저질렀음을 보여준다. 옵티머스는 2018년 5월께부터 공공기관 채권에 투자금의 95% 이상을 투자한다고 홍보해 5100억원에 이르는 돈을 끌어모았으나 정작 공공기관 채권에는 한푼도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사를 담당했던 금감원 관계자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 사실은 없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투자한 사람들의 돈으로 앞서 투자한 사람에게 수익금을 돌려주는 이른바 ‘폰지형 사기’ 행각을 2년 가까이 해온 셈이다.

실제로 옵티머스의 펀드 설정액은 이런 수법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설정액은 2017년 말 825억원에서 2018년 말 2284억원으로 2.8배가 증가했고, 다시 2019년 말에는 4198억원으로 다시 1.8배 증가했다. 사기가 드러나지 않는 한 수익금을 돌려줄 수 있는 증가 추세다. 고객 돈이 계속 들어올 수만 있다면 사기는 계속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 말 라임 사태가 터지면서 돌려막기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감원이 라임과 비슷한 투자기법을 사용하는 펀드들에 대한 일제점검을 시작하면서 덜미가 잡힌 것이다. 이들은 금감원이 지난 6월15일 현장검사 사전통지를 하자 사흘 뒤인 6월18일 환매중단을 선언했다.

옵티머스의 사기 행각은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0년 미국에서 벌어졌던 찰스 폰지의 사기 수법을 빼닮았다. 폰지는 당시 국제우표반신쿠폰((IRC·만국우편연합 가입국 어디서나 우표로 교환해 답신할 수 있게 해주는 쿠폰) 사업으로 45일에 수익률 50%, 90일에 원금의 2배를 돌려주겠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우편요금이 싼 이탈리아에서 쿠폰을 사서 미국에서 현금으로 바꾸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처음 몇달간 약속된 수익금이 지급되자 입소문이 퍼지면서 투자자가 몰려들어 그는 큰 돈을 버는 듯했다. 투자자가 약 1만5천명에 이르렀고, 보스턴에선 지역 경찰의 70%가 투자를 했다. 그러나 사업 시작 반년여가 지난 그해 7월 지역 언론의 탐사보도로 실체가 드러나면서 덜미를 잡혔다. 알고 보니, 그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사기를 저지른 것이었다. 사기 피해액은 당시 돈으로 2천만달러(현재 약 1억9300만달러, 한국 돈 약 2300억원)에 달했는데, 경찰이 잡힐 때 그의 사무실엔 우표와 우편쿠폰이 61달러어치밖에 없었다.

옵티머스는 사기 피해액이 5100억원으로 두배 이상 많고, 공공기관 매출채권에는 한푼도 투자하지 않았으니 폰지보다도 더 죄질이 무거워 보인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한겨레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한겨레

옵티머스의 사기는 사모펀드 시장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투자자 1166명(개인 982명, 법인 184곳)은 리스크가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지도 않은 채 가입했다. 옵티머스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 6곳도 운용사의 상품 구조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고객을 유혹하고, 이후엔 펀드가 제대로 운용되는지 감시 역할도 포기했다.

그런데 옵티머스한테 사기를 당한 건 비단 투자자와 증권사에 그치지 않는다. 모험자본을 공급해 금융혁신을 일으키겠다며 대대적인 사모펀드 육성책을 펴온 금융당국도 이번 사태를 비켜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물론이고 현 정부 들어서고 사모펀드 육성책을 펴왔고, 이에 따라 사모펀드에 대한 관리감독이 느슨해져 이번 사태를 사실상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하반기 국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손실 사건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사모펀드 사태가 이 정도일 줄은 금융당국도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디엘에프는 기초자산인 독일 국채금리가 마이너스로 가는 등 국제 금융 환경이 급변한 점도 작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임에 이어 옵티머스까지 터지면서 금융당국도 더이상 변명을 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운용사가 선의를 갖고 운용을 하다가 잘못돼 일시적으로 환매연기가 벌어지는 것은 자본시장에서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두 사건에서 벌어진 사기와 횡령 등 범죄 행위는 이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라임과 옵티머스의 폰지형 사기가 정부의 사모펀드 육성정책을 사실상 좌초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2015년 자본시장 육성과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명분 아래 대대적인 사모펀드 규제완화를 했다. 일반 투자자의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낮추고, 운용사들 진입 장벽도 사실상 허물었다. 이 규제완화를 계기로 사모펀드는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사모펀드 설정액(설정원본 기준)은 2014년 173조원에서 2015년 200조원을 넘더니 지난해 말에는 412조원으로 400조원대에 들어섰다. 올해 7월말 현재 424조원이다. 다만, 이는 장부가격이고, 이를 시가로 평가하면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반면에 공모펀드는 2015년 221조원으로 사모펀드보다 많았으나 2016년에 사모펀드에 추월당했으며, 현재(7월말 기준)는 273조원으로 사모펀드의 64%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4년여간의 사모펀드 호황 시대는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우선 펀드 판매의 주요 창구인 은행들이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 실제로 주요 은행들은 일련의 사모펀드 사고를 계기로 더이상 고위험 사모펀드는 취급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한 은행 임원은 “잘못 팔았다가 경영진까지 제재 대상에 오르는데 이런 상품을 왜 팔겠냐”고 말했다.

여기에다 사모펀드 사고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크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라임이나 옵티머스 같은 사례가 또 있냐는 질문에 “솔직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2015년 말 이후 금융감독의 사각지대로 방치돼온 터라 감독당국에서도 부실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외국의 부동산(호텔·상가·인프라 등)에 투자된 해외 사모펀드까지 부실화될 경우 사태는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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