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시장' 어거는 차기 대통령이 누군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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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근
송인근 2020년 8월11일 06:00

2018년 코인데스크코리아 창간과 함께 코인데스크의 영문 기사를 우리말로 번역해 소개하는 일을 맡게 됐다. 사실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내용을 이해하고 번역하려고 블록체인 공부를 했고, 특히 이 기술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이용 사례(use case)를 열심히 찾았다.

그때 흥미롭게 접했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어거였다. 블록체인은 낯설었지만, 어거의 기반이 되는 예측시장에 대해선 조금 알았기 때문에 관심이 갔다. 그랬던 어거(Augur)가 돌아왔다. 탈중앙화 베팅 거래소, 이더리움 예측시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어거가 오랜 침묵을 깨고 새 버전을 출시한 것이다.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은 말 그대로 어떤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예측을 시장에서 거래하게 하고,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데 많이 쓰이는데, 예측시장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으시겠습니까?”라는 여론조사 식 질문 대신 “이번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한다. 조 바이든의 당선 확률을 70%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50%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보상을 받는 바이든 코인을 더 비싼 값을 주고 산다.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표본을 잘못 정하면 결과가 왜곡될 수 있는 반면, 예측시장은 내 생각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나 여론을 최대한 고려해 참여하기 때문에 표본의 대표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건 돈을 잃지 않으려면 최대한 정확하고 솔직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트럼프를 좋아해도 트럼프가 도저히 이번 선거에서 이길 것 같지 않으면, 트럼프 코인을 시장 가격보다 웃돈 주고 사봤자 결국 내 손해다.

아이오와 전자시장(Iowa Electronic Market, IEM)은 1988년부터 대선에 예측시장을 활용해온 미국의 대표적인 예측시장인데, 2008년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의 치열했던 민주당 경선 결과를 여론조사보다 두 달이나 먼저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아이오와 전자시장의 2020년 대선 예측은 약 7:3으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우세하다. 선거 결과 당선되면 1달러를 받을 수 있는 각 후보의 당선 코인이 바이든은 70센트에, 트럼프는 30센트에 거래된다는 뜻이다.

예측시장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당장 어거만 해도 우려했던 대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 예측시장이 만들어져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누가 몇 날 몇 시 전에 살해된다”는 예측시장을 만들고 살해된다는 쪽에 많은 돈을 건다면, 사실상 누구든 이 사람을 죽여 달라는 공개 살인 청부나 다름없다. 당연히 범죄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예측의 결과에 합의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조 바이든이 현재 분위기를 이어가 선거에서 이겼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백악관에서 안 나가겠다고 버티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두루뭉술한 표현 대신 “선거인단의 과반(270명 이상)을 확보한다” 혹은 “2021년 1월20일에 임기를 시작한다”와 같이 정확한 표현을 쓰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 수는 있지만, 여전히 논란은 남는다.

그래서 어거의 새 버전에는 시장 자체가 ‘유효하지 않음(invalid)’에도 베팅할 수 있다. 즉, 결과를 합의하기 어려워 파투가 나는 데 베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에서 지고도 우편 투표를 못 믿겠으니 일일이 검표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백악관에서 못 나간다고 우길 것 같다면, 그래서 대통령 당선 결과를 확정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새로 출시된 어거에서는 ‘파투’에 돈을 걸 수 있다.

한국에서도 선거 예측에 예측시장을 활용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 선거법은 선거 예측에 사행성을 조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최대 500달러까지 돈을 걸 수 있던 아이오와 전자시장과 달리 한국에서 시험한 예측시장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상화폐를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고 예측시장을 운영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결과가 정확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 돈 잃는 것도 아닌데, 내가 좋아하는 후보가 당선된다는 데 올인하자’고 생각하는 사람을 막을 유인책이 부족했다. 어거의 새 버전이 성공적으로 사용자를 모은다면 국내에서 ‘내 돈’을 걸고 예측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당국이 어떻게 판단할지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물론 예측시장이 여론조사보다 압도적으로 정확했던 것은 전혀 아니다.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는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 전문가가 틀렸다. 예측시장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누가 정확히 맞출지, 그 후보군에 어거를 포함하는 것도 미국 대선 관전 포인트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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